비타(VITA)라는 말의 원형은 라틴어에 있다고 한다. ‘삶’과 ‘생명’을 뜻한다. 광의의 의미로는 생활양식이나 먹고사는 문제 전반을 일컫기도 한다. 삶과 생명, 언제 들어도 퍽퍽한 말이다. 소설가 김훈은 아들에게 쓴 글에서 삶은 ‘돈’과 ‘밥’으로 정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을 살아간다는 건,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아는 일이니 그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거나 주접을 떨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에게 삶은 돈과 밥이었나보다.
2014년 4월, 돈과 밥이 엇갈렸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비타500’이라고 하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음료수 때문에 곤혹이다. 뭇사람들이 삶을 약간이나마 부드럽게 돌아가게 해보고자 주고받는 그 음료수 상자에 그는 다른 내용물, 돈을 받았다고 한다. 극렬 부인하고 있지만 의혹을 넘어서기 쉽지 않아 보인다. 여러 명의 증언이, 죽은 자의 기록이 그 상자의 구체성을 조여오고 있다. 그의 ‘비타’는 돈이었나보다.
스스로를 ‘일국의 총리’로 지칭하는 기개 넘치는 사내지만, 그는 이미 초라하다. 장담컨대, 그는 끝내 ‘비타500’을 ‘비타3000’이라고 읽는 조롱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삶은 총체적으로 돈 앞에 정당하지 못했고, 그가 먹었던 밥들은 야심을 향한 치기 어린 어리광의 행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값비싼 호텔에서 VIP 대접을 받으며 그가 받았던 밥상들은 한마디로 권력의 주접이었다.
1년째 밥을 넘기지 못하는 이들이 그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생각하면 분노마저 치민다. 유가족이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해야 하는 지경에서, 세월호 사건이 1주기를 맞았다. 맞다, 사건. 소설가 박민규는 세월호는 ‘참사’가 아닌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고 부르지 않고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세월호 사고와 사건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썼다. 한 눈 밝은 소설가의 통찰에 기대어 말해보자면, 국가가 일으킨 사건에 자식을 잃는 사고를 당한 이들이 1년째 내버려졌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 나선다. 지구 반대편 남미에서 그가 일으킬 경제적 ‘활력’이란 것이 또 얼마나 허장성세일지를 생각해보면 끔찍할 정도다. 모든 걸 내팽개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도 떠나는 대통령, 그렇다면 그의 ‘비타’는 무엇일까.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방황하는 대통령의 ‘생활양식’을 뭐라고 규정지어야 하는지, 또 그 생활양식의 당위가 도무지 증명되지 않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라는 거짓말 같은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자꾸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세어보게 되는 것이다.
비타500에 실제 돈을 채우는 동영상을 보았다. 3천만원이 다 들어가고도 한참 남았다. 문득, 이 모든 사태의 발발이 그 빈 공간에서 발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보았다. 성완종 전 회장은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인간적 비애를 길게 말했다. 충청을 매개로, 함께 밥을 먹으며, 돈을 주고받을 정도로 돈독했던 둘의 관계는 어쩌다 죽음의 파탄을 맞게 된 것일까. 죽은 자는 이미 말을 다 했으니, 이제 산 자가 자신을 증명해야 할 차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완구 총리마저 그 ‘비타500’에 생명을 걸었다. 모두의 삶처럼 그의 삶도 소중하다. 그리고 정당했으면 좋겠다. 이 총리가 ‘비타500’을 앞에 두고 지금 말해야 할 것은 생명이 아니다. 본인이 살아온 삶의 생활양식을 자가 부정하지 않는 것부터 말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밥도 넘기지 못하는 저 거리의 유가족들에게 그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비타500’일지 모른다. 비타500의 광고 문구는 ‘착한’이다.
김완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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