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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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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의 기록

등록 2014-04-29 16:35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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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했지만, 그가 들려준 얘기는 훨씬 충격적이었습니다. 트라우마 심리치유 전문가인 정혜신 박사는 이번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한국전쟁과 맞먹는 상흔을 남길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재앙적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참사는 과거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보다 훨씬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앞선 사고가 ‘벌어진 현장’을 뒤늦게 지켜봐야 했던 경우라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선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 선실에 갇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침혹한 장면을 사실상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까닭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속수무책’이란 단어가 이번만큼 가슴을 후벼팠던 기억은 없을 겁니다. 같은 또래 10대들이 받은 충격은 더 큰 듯합니다. 10대 몇 명과 나눈 카카오톡 채팅에서 그들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어른들이 가만있으라고 하면 반발심이 들 것 같다”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불안과 공포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때론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때론 비이성적 충동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번 참사의 여파를 가늠조차 하기 힘드네요.
사람들은 눈앞의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쳐도, 최첨단 선박과 해상 건조물을 만들어내는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에서 복원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낡은 배’가 자유로이 연안 항로를 운항하고 있다는 현실을. 안전 운항 여부를 감독하지도, 뭍으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는 바다인데 침몰해가는 배에서 승객들을 구조해내지도 못하는 현실을. 무엇보다, 자신을 ‘한국호 선장’이라 일컫던 대통령이 연일 경솔하고 험한 소리를 뱉어내며 저 혼자만 모든 책임으로부터 ‘탈출’해버리는 어이없는 현실을 말입니다. 외신으로부터 사실상 ‘조롱’받은 대통령의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두고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되묻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행정 수반이 누구죠?



은 제1009호를 세월호 참사 특집호로 만들었습니다. 일부 고정 연재물을 빼고 60쪽 분량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채운 ‘통권호’입니다. 참혹하고 가슴 답답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야 했던 기자들도, 눈 돌리고 싶은 현실과 다시 맞닥뜨려야 하는 독자들도 모두 불편하리라 생각됩니다. 단지 이번 사고가 안겨준 충격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낸, 우리 사회를 무참히 할퀴고 간 대재앙의 민낯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서였음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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