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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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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거나 길들여지거나

등록 2014-01-30 15:02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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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금융업의 출발점은, 실은 무역금융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돈을 꿔주고 비싼 이자를 뜯어가는 대금업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했으나, 그 자체만으로는 금융업과 거리가 꽤 멀다. 특히 서구의 경우 대금업은 중세까지는 공식적으로 금기시되었고, 한곳에 모여 사는 ‘이방인’인 유대인 몫이었다. 사회체제를 지탱하는 중심 영역이라기보다는 차별과 배제의 흔적이 뚜렷한 행위였던 셈이다.
변화의 싹은 다른 곳에서 자라났다. 서구인들의 발걸음이 신대륙으로 향하기 이전까지 가장 긴 무역 항로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잇는 뱃길이었다. 짐을 싣고 이탈리아 항구를 떠난 무역선이 네덜란드에 짐을 부린 뒤 돈을 거두거나 수입품을 되싣고 돌아오기까지 6개월이나 걸렸다. 그사이 풍랑 혹은 해적떼를 만나거나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엄청난 리스크다. 그 리스크를 줄이는 묘안으로 등장한 비밀병기가 바로 수출대금을 미리 현금으로 할인해 융통해주는 행위, 곧 금융업이다. 무역과 금융을 결합한 당대의 신흥세력은 수출어음(진성증권)을 자유로이 사고팔았고,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화폐’의 실질적 모태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금융은 태생부터 리스크 회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이후 금융업은 발전을 거듭해, 실물 경기 전체의 변동폭을 최대한 줄여주는 ‘고마운’ 존재로까지 격상됐다. 금융을 ‘산업의 실핏줄’이라 부르는 인식체계가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괴물’은 바로 우리 안에서 쑥쑥 자라고 있었다. 한 발짝씩 내딛던 금융화의 완결판, 금융 영역이 아예 경제의 주도권을 온전히 쥐어버린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금융은 그 자체가 리스크인 것으로 변신해버렸다. 되풀이되는 금융발 경제위기에서 우리는 그 실체를 똑똑히 목격한 바 있다. 일자리가 날아가고 살던 집을 비워야 하는 떠들썩한 경제위기만이 아니다. 최근 불거진 초대형 금융정보 유출 사건은 신용정보망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촘촘히 엮인 금융자본주의의 실핏줄이 자칫 우리 삶에 엄청난 해를 끼칠 수 있는 무기로도 한순간에 변할 수 있음을 일깨워줬다.
금융은 그 속성상 이익은 오로지 사유화하되 리스크는 되레 사회화시키는 존재다. 금융이 우리 삶에 ‘필요악’이라면, 해법은 여러 층위에 걸쳐 찾아져야 할 것이다. 큰 틀에서 금융기관 간 신용정보의 무분별한 공유를 막는 제도적 장치부터, 가장 밑바탕에선 화려한 보안설비 투자의 뒤편에 가려진, 하청과 외주, 파견으로 이어지는 국내 보안(SI) 분야의 못된 관행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일까지…. 나의 개인정보가 ‘공공재’인 참 희한한 세상에 우리 모두 적응하며 살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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