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가 다시금 화두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 쪽이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점을 찾으려 나선 게 직접적 계기가 됐다. 주로 학자들의 연구 영역에만 머물러 있던 자유주의 담론이 현실정치 무대로 한 걸음 옮겨온 셈이다. 자유주의란 이념이 근대 이후 인류 발전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나 무게에 견줘, 그간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한국 사회가 정치세력이 내건 이념좌표보다는 기껏해야 대표적 인물의 행보에 따라 방향 없이 유동하는 모습을 보여온 현실과도 무관치 않을 게다. 보수 진영이 자유주의를 냉전반공주의나 시장자유주의와 한달음에 동일시해버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진보 진영이 자유주의에 애써 거리감을 두어온 역사적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최장집 이사장이 지난 6월19일 열린 창립 심포지엄에서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는 좌우 이데올로기 양극화 속에서 해체되고 실종되었다”는 평가를 내린 배경도 충분히 이해됨직하다.
하지만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우리는 이 땅 자유주의의 현주소를 생생히 증언해주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민낯’과 마주하는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겉보기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개념이 ‘해빙기’를 맞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2013년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란 이름값에 전혀 걸맞지 않은, 퇴행적 방향으로 마구 뒷걸음치는 형국이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대선에서 여권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에 나선 사실은 검찰 수사를 통해 이미 분명하게 밝혀졌다.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성을 지켜야 할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불법으로 선거 개입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국가기관의 ‘범죄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사에 나섰던 경찰 수장은 범죄행위와 관련한 증거를 인멸하느라 힘을 쏟았다. 국가기관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증거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더 큰 범죄임은 물론이다.
그 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더욱 가관이다. 여당과 국정원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범죄면을 이른바 ‘북방한계선(NLL) 발언 논란’ 쪽으로 애써 몰아가고 있다. 자기네들 입으로 사회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조롱했던 젊은 세대의 눈에조차 국가기관의 범죄를 가리려는 ‘꼼수’로 비치고 있음을 설마 모르는 걸까.
무릇 자유주의란 사적 이해의 전면적 충돌을 방지하고 개개인에 대한 인격적(personal) 물리력 행사라는 전근대적 봉건사회의 잔재를 없애는 과정에서 등장한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다. 국가와 공권력은, 사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발명품’에 가깝다.
국가와 국가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공권력을 통해 개개인의 자유로운 인간성 향유를 가로막는 모든 종류의 방해물을 없애는 대신, 국가의 역할과 임무, 공권력의 한계는 분명히 해두자는 게 자유주의의 뼈대다. 국가와 공권력이 ‘공공재’로서 갖는 효용은 딱 거기까지다.
자유주의 담론이 다시 꽃피는 2013년 한국 사회는 정작 국가와 공권력이 복잡한 사회문제의 재자이자, 자유를 향유할 개인적 권리의 수호자이기보다는, 오히려 개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왜곡하고 사회를 통제하는 교란자이자 훼방꾼임을 보여줄 뿐이다. 자유주의는 인류사에 등장한 이래 꾸준히 자기 변신을 통해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자유주의란 단어 앞에 그 어떤 수식어가 따라붙건 간에, 변치 않는 단 하나의 진리는 개인과 사회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폭력’에 대한 분명한 거부이자 저항이야말로 자유주의(자)만이 누릴 수 있는 신성한 권리이자 엄중한 의무라는 사실이다. 개인과 사회를 유린하는 자유주의의 ‘적’들에 분명하게 맞서는 싸움이야말로, 2013년 이 땅의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올라서야 할 시험대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