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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먹는 건지 국수를 먹는 건지

등록 2008-07-04 00:00 수정 2020-05-03 04:25

비가 오면 먹고 싶은 음식… 전형적인 부침개부터 생전 처음 듣는 짜이까지 ‘장마 3종 세트’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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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군은 여럿이 모여 멀리 갈 때면 항상 도마와 칼을 챙기는 사나이다. 요리의 절반은 재료. 식재료가 썰리는 느낌이 좋아야 요리가 잘되기 때문에, 도마와 칼은 필수품이란다. 검은 뿔테안경에 덥수룩한 헤어스타일, 네이비색 면티셔츠를 고수하는 M군이 심드렁하게 배낭에 챙겨넣는 도마는 나무 도마. 이유는 싱겁다. “나무 도마에서 잘라야 재료가 썰리는 소리가 제격”이기 때문. 어쨌든, M군과 함께라면, 밤새 알코올에 절여져 쓰린 위벽을 MSG(인공화학조미료) 가득한 라면 국물로 달래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함께 경기 양평으로 멤버십 트레이닝을 간 다음날 아침, 비가 내렸다. 평소라면 구경하기 힘든 통유리 창문 너머로 빗물이 후드득 떨어지고, 구성원들은 모두 쓰린 위벽을 달래줄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 등장한 것은 전날 고기를 구워먹다 남은 단호박과 팽이버섯, 굳이 아무도 필요 없다는데 챙겨온 된장을 융합한 된장국이었다. 단호박이 뭉근하게 익은 된장국은 마치 ‘프렌치 어니언 수프’의 한국식 변종처럼 걸쭉한 채로 위벽을 감싸안았다. 된장 냄새는 의외로 빗소리와 잘 어울렸다.

M군의 장마철 추천 음식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M군은 “물국수”라고 답했다.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소면을 넣어 삶은 뒤 소금간을 한 맑은 국수. 김·유부·파 등이 들어가는 잔치국수에서 양념을 몽땅 뺐다. 투명해야 비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홍수 같은 국물에 빗물 같은 면발이 가득 담겨 있다. 빗소리와 같이 먹으면 비를 먹는 건지 국수를 먹는 건지 모르겠다.” M군은 마치 장자가 된 양 말했다.

요리교실 ‘라자냐의 키친’을 운영하는 강선옥씨는 ‘장마 전용 부침개’를 추천했다. M군과 비슷한 차분한 목소리다. “비가 올 땐 입맛이 축 처지잖아요. 그럴 때, 정신이 바짝 나는 맵고 바삭한 부침개가 입맛을 돋워요.” 강씨의 장마 부침개에는 채소만 들어간다. 바지락 등 해물은 여름에 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피한다. 핵심은 제철 채소. 애호박은 여름에 단맛이 좋다. 하우스가 아닌 텃밭에서 일군 깻잎도 여름에 딸 수 있다. 향긋함도 이때 최고다. 애호박은 채를 썰고, 깻잎은 송송 썰어 부추와 섞는다. 포인트는 코끝이 찡하게 매운 청양고추. 남은 것은 바삭함. 바삭함을 위해서는 밀가루 중에서도 박력분을 사용한다(부침가루에는 갖가지 첨가물이 들어가니 피하는 게 좋다). 빵을 만들 때 주로 쓰이는 박력분으로 부침개를 하면 흔히 쓰는 가정용 밀가루보다 바삭하게 구워진다. 강씨는 아쉽다는 듯 “그래도 비 올 땐 감자탕에 소주가 제격”이라고 조용히 덧붙였다.

카투니스트 신마님은 눅눅한 집안에 이국의 향기를 들여볼 것을 권한다. “비가 오면 몸에 한기가 돌잖아요. 뜨끈한 국물로 몸을 녹여주는 게 좋은데, 팔팔 끓인 따끈한 우유에 향신료들을 넣고 꿀을 듬뿍 넣은 짜이 한 잔을 마시면 온몸이 적당히 노곤해져요.” 짜이는 인도의 아침을 여는 인도 전통차다. 우유를 끓이면서 정향(클로브), 소두구(카르다몸), 회향풀 씨앗(펜넬시드), 생강, 계피 등을 입맛과 취향에 따라 섞어 넣으면 된다. 짜이가 끓으면서 집 안에 향기가 녹아든다. 순하고 무난한 맛의 짜이를 만들려면 우유 1ℓ에 정향, 소두구, 회향풀 씨앗을 티스푼으로 반씩 넣고, 생강과 계피는 3분의 1티스푼을 넣는다. 먹을 때마다 향신료의 양을 조절하면서 자신만의 짜이 배합을 만들어나가면 좋다. “내 취향의 짜이를 만드는 것도 울적하고 심심한 장마철에 시간 때우기로 딱”이라는 것. 하나 더. 만들다가, “이게 딱 내 맛이야”라고 하면 그 배합으로 향신료 배합물을 많이 만들어둔 뒤에 ‘신마님 짜이’ ‘M군 짜이’라고 이름표를 붙여두면 짜이를 상용화할 수 있다. 짜이에 들어가는 향신료는 조금 큰 슈퍼에 갖춰져 있는 기본 향신료라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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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짜이 한 잔, 물국수 한 그릇, 바삭하고 맵싸한 야채전까지. 3인이 추천한 장마 3종 세트와 함께라면 ‘장마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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