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스포츠 칼럼 쓰니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후배에게 한마디…‘보는 스포츠’에 흠뻑 빠졌던 꼬마는 이제 ‘하는 스포츠’도 즐긴다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람들이 물었다. “원래 스포츠 (보기를) 좋아했어?” 심지어 어떤 후배는 말했다. “왠지 형이 스포츠 칼럼을 쓴다고 하니까 전문성이 떨어져 보여요.” 그가 “헤헤” 하고 웃었으면 농담이려니 했겠지만, 후배는 웃지도 않았다. 이렇게 신윤동욱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윤동욱의 스포츠 칼럼은 의외였나 보다.
‘스포츠 뉴스’로 인생을 배우다
누가 뭐래도,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스포츠 뉴스’에서 배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10대 초반부터 스포츠 뉴스를 기다리면서 콩닥콩닥거렸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 스포츠 뉴스는 경기 결과를 알려주는 가장 빠른 통로였다. 오늘 삼성전자 농구팀은 현대전자에 이겼을까, 한국 여자배구가 쿠바에 한 세트는 따냈을까, 조바심을 치면서 어서 9시 뉴스가 끝나고 스포츠 뉴스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세 번이면 두 번은 결과에 실망해 가슴이 답답해졌지만, 그래도 스포츠 중독을 끊을 수는 없었다. 결승골을 넣은 선수의 그토록 짜릿한 몸짓, 남의 승리에 저토록 순수하게 열광하는 관중을 보면서,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인생의 중요한 것을 배우기도 했다. 물론 치열한 몸싸움, 관중의 대거리를 보면서 인간의 본질도 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희로애락을 배웠던 것일까. 어쨌든 스포츠 뉴스 시청 시간으로, 대한민국 1%는 몰라도 10% 안에는 반드시 든다고 생각한다. 신문을 보아도, ‘초딩’ 때부터 스포츠면부터 펼치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1면부터 차분히 보자고 마음을 잡아도, 도저히 경기 결과가 궁금해 견디기 어렵다. 아직도 그렇다. 얼마 전 스포츠신문에서 일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스포츠신문을 집에서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이제는 스포츠신문이 집에 와도 보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도 출근길에 그 신문을 샅샅이 훑었다. ‘중·고딩’ 때처럼 열독한다. 이렇게 스포츠에 중독된 사람이 드물지 않아서, 비슷한 추억을 가진 독자의 ‘동지애적’ 메일도 가끔 받았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지만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이다. 이렇게 보는 스포츠도 즐거웠지만, 하는 스포츠의 즐거움을 따르지는 못한다. 서른이 넘어서 비로소 하는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았다. 그전에는 보는 스포츠는 좋아했지만, 하는 스포츠는 젬병이었다. 그러니 하기도 싫었다. 몸이 신호를 보내고 나서야 운동을 시작했다. 여기서 달리지 않으면 인생을 멈추게 된다는 남들이 보기엔 과장이지만 내게는 절박한 이유도 있었고, 몸을 만들어야 ‘팔리는’ 저간의 사정도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달린 거리가 앞서 30년 동안 달린 거리의 3배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의무로 시작한 운동이 어느새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심지어 중독 증세도 보이는데, 태엽을 감아야 시계가 움직이듯 1시간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견디기 힘들다.
일주일에 3번, 하루 30분의 감동
물론 스포츠 보기를 좋아한다고, 스포츠 하기를 못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선택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는 스포츠 보기와 하기는 적잖이 충돌한다. 예컨대 토요일 오후 3시, 수영을 하러 나서는데 문득 생각났다.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경기였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경기가 아니어서, 살짝 망설였지만 과감히 문을 열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중계를 보고 나면 수영장 문은 닫혀 있다. ‘불여일행’을 몰랐을 때에는 경기를 보았겠지만, 이제는 수영을 마치고 나서도 후회는 없었다. 세상은 ‘죽치고’ 중계나 보면서 스포츠를 소비하라고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기엔 인생이 너무나 짧다고 이제는 느낀다. 전에 기사에도 썼지만, “일주일에 3번 이상, 하루 30분 운동”(7330) 하라는 30초짜리 ‘스포츠 7330’ 광고를 보면서, 여기가 그래도 좋아졌다고 절감했다. ‘촌발’ 날리는 광고였지만, 메시지만으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영화 의 감동도 그리는 못 된다.
2006년 월드컵이 열린 독일에 취재를 갔을 때,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그라운드의 선수도, 경기장의 관중도 아니었다. 남들이 축구 경기를 보려고 경기장으로, 대형 화면이 설치된 광장으로 몰려들 때 유유자적 그들을 지나쳐 조깅하는 사람들이었다. 월드컵 따위야 아랑곳 없이 ‘마이 웨이’를 달리는 건각을 보면서,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진심으로 두손 두발 다 들어주었다. 1시간 더 일하는 대신에 1시간 노는 것이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하지만, 1시간 더 달리는 것은 급진적 저항이라고 믿는다. 오늘 헬스클럽에서 가벼운 아령을 들고도 쩔쩔매는 아저씨를 보았다. 초심자 아저씨가 내일도 운동을 계속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추신! 승현 오빠 보세요
마지막 추신. ‘스포츠 일러스트’를 시작할 때, 빨간 유니폼에 대한 ‘페티시’를 고백했다. 마지막도 빨간색으로 장식하고 싶었던 마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빨간색 유니폼의 대구 오리온스 김승현 오빠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쉽게 시즌이 막바지인 관계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로써 두 번째 ‘뺀찌’를 먹었다. 그래도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승현 오빠,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신윤동욱의 스포츠 일러스트’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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