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베트남전쟁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졌다.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언젠가 베트남을 방문하고 싶었다. 그 꿈을 60대 중반에야 이뤘다. 베트남에는 50여 소수민족이 공존한다. 그중에서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살아가는 몽족, 꺼라오족 등 베트남 최북단 소수민족들의 삶을 살폈다.
3천m가 넘는 판씨빵산은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고 부른다. 서북부 지역 소수민족들은 판씨빵산 아래 여러 지역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의 삶을 살았다. 중국과 라오스의 박해를 피해 베트남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석회암으로 이뤄진 카르스트 지형의 높고 척박한 산 위의 땅을 개간했다. 그들은 ‘산의 사람’ ‘땅의 사람’ ‘자연의 사람’으로 자기 부족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유지하고 계승하며 살아간다. 평지에는 이미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해방전쟁 과정에서 호찌민 주석은 소수민족들의 삶을 존중했다. 그들의 문화와 교육도 인정했다. 물론 제국주의 프랑스와 미국 편에 서서 베트민(호찌민이 결성한 베트남 독립운동단체) 군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소수민족도 있었다. 그러나 하장성 동반 지역을 다스리던 묘족의 왕은 프랑스의 회유에도 호찌민과 손잡고 해방투쟁에 함께했고, 대부분의 소수민족도 호찌민과 함께 해방투쟁을 전개했다. 해방투쟁 과정에서 소수민족 여성들의 강인함도 힘이 됐다.
그 결과 베트남은 중국과 달리 소수민족을 포용·존중하는 ‘열린 정책’을 펼 수 있었다. 지금의 베트남은 ‘킨’이라고도 부르는 ‘비엣’족과 함께 소수민족들이 관용, 조화, 협력 그리고 다양성으로 이뤄진 나라가 됐다. 그 중심에는 ‘호 아저씨’라고 부르는 위대한 혁명가 호찌민 주석이 있었다.
하띤성(베트남)=사진·글 장영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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