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내내 오락가락하던 비가 오후 4시께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잠시 주춤거리던 참가자들은 이내 빗속으로 달려나갔다. 오랜만에 되찾은 축제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지난 두 해 동안 코로나19 확산 탓에 온라인으로 진행한 성소수자들의 축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22년 7월16일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다시 열렸다. 올해 축제 슬로건은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다. “세상은 암울해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의 설명이다.
성소수자, 이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이 이날 오후 서울광장을 가득 채웠다.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가 마스크와 머리띠, 팔찌와 깃발 등 다양한 형태로 광장에 넘쳐났다. 광장에는 기관과 단체의 부스 72개도 들어섰다. 국가기관으로는 처음 공식 참가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주한 외국대사관의 부스가 눈에 띄었다. 글로벌 기업 이케아와 구글의 부스에는 기념품을 받으려는 줄이 길게 이어졌다.
광장 바깥 한쪽에선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규탄한다’는 보수 종교단체들의 반대집회가 열렸다. 광장 안에선 가톨릭앨라이 아르쿠스, 로뎀나무그늘교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종교단체들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참가자들의 곁을 지켰다. 한 수녀님은 무지개색 하트 스티커를 참가자들에게 붙여주며 “혐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스님은 오색실을 엮어 만든 팔찌를 참가자들의 팔에 채워줬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유럽, 오세아니아 등 여러 나라 외교관들의 지지·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골드버그 대사는 “우리는 인권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말했고, 동성 배우자와 함께 무대에 오른 필립 터너 뉴질랜드대사는 “성적 지향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응원했다. 각 나라 대사 12명이 무대에 올라 ‘모두를 위한 평등’을 강조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리고 무지개 바탕에 태극과 사괘가 그려진 태극기 등 여러 형태의 무지개를 앞세운 참가자들은 광장을 벗어나 거리로 나섰다. 한여름 소나기가 한껏 달궈진 아스팔트를 적시는 동안, 이들은 더 힘차게 깃발을 흔들며 거리를 걸었다.
사진·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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