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눈에 내가 위대한 승리자로 보이리라 기대한 건 아니야. 하지만 고깃덩어리로 보일 뿐이라니, 슬프지만 솔직하구나. 너를 본능에 충실한 존재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그게 동물을 바라보는 풍경의 출발점이겠지. 2016년 영국 런던동물원.
우리는 동물을 본다. 동물도 우리를 본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은 동물을 보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동물도 사람을 본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동물계의 절대 승자인 우리가 ‘나머지’를 바라보는 눈은, 우월적이고 일방적이며 통제적인 시선에 기반을 둔다. 마치 감옥의 죄수를 일점 시선에서 관찰하고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눈길을 닮았다 할까.
물론 일방통행로에도 샛길은 있다. 승자인 사람은 이따금 겸손하고, 무엇보다 호기심이 많으니까. 아울러 ‘무지의 인정’을 통해 근대과학의 기초를 쌓았으니까. 문학은 일찌감치 동물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세계를 담아왔다. 과학계와 산업계는 인간의 눈이 갖지 못한 동물 눈의 기상천외한 방식과 기능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 고심해왔다. 예컨대 수만 개의 겹눈으로 구성된 곤충 눈의 넓은 시야와 동작 감지 속도, 빛에 대한 감도를 연구해 광학장비를 개발하고 이를 교통안전 기술에 접목하는 식이다. 광시야각을 가졌으면서도 난반사를 차단할 수 있고, 관심 영역을 더 높은 해상도로 인식할 수 있다는 갑오징어의 눈도 이런 연구에 도움을 준다. 똑같은 응용기술로 안전장비를 개발하는 동시에 살상무기마저 개발한다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마흔 살이 다 돼 쓴 첫 소설이자 출세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동물 눈에 비친 인간세계의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묘사했다. 이름도 없고 어디서 났는지도 알 수 없는 ‘나’는 주인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유약하고 우울하며 쓸데없는 지식과 위선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비웃는다. 무엇보다 사람은 사치를 일삼는다. “날로 먹어도 되는 걸 일부러 삶아보기도 하고, 구워보기도 하고, 식초에 담그기도 하며, 된장에 찍어보기도 한다. 발이 네 개 있는데도 두 개밖에 쓰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사치다. 네 발로 빨리 갈 수 있으련만, 언제나 두 발로 걷고, 남은 두 발은 말린 대구포처럼 하릴없이 드리우고 있어 우습기만 하다.” 1905년 초판본 표지엔 사람 몸에 고양이 머리를 한 주인공이 사람모양 인형을 갖고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왕 암살 모의 혐의로 22년을 복역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박열은 이 소설을 풍자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시를 썼다고 알려졌다. 하늘을 보고 짖는 ‘나’는, 보잘것없는 개새끼지만, 높은 양반의 다리에 오줌을 갈긴다. 시의 주인공 개새끼는 고양이의 변주로 읽히지만, 제국주의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나쓰메 소세키를 향한 ‘소새끼’식 야유로도 읽힌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도 사람을 바라보는 동물의 관점이 흥미롭게 드러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는 동물의 관점일 뿐이다.
사람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방적인데도 사뭇 다양하다. 동물이 사람을 보는 시선엔 어떤 복잡함이 있을까. 모르겠다. 우매한 나는 간신히 사람이로소이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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