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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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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고는 싶고 죽이기는 싫고

등록 2023-12-08 19:24 수정 2023-12-15 12:39
낡고 낡은 서울 청계천 삼일아파트, 사람들이 거의 떠난 뒤에도 가난한 내 친구 둘은 눌러살았지. 옥상에 올라 바람을 쐬는데, 발밑에 네가 있더라. 살아 끊임없이 갉아먹었을 네가 죽어 갉아먹힌 모습은, 말하자면 순환이었지. 판잣집을 감추려고 병풍처럼 지었다는 아파트에 사람과 쥐가 참 오래도 함께 살았어. 오순도순 지낸 것은 아니었겠지만. 2003년 서울.

낡고 낡은 서울 청계천 삼일아파트, 사람들이 거의 떠난 뒤에도 가난한 내 친구 둘은 눌러살았지. 옥상에 올라 바람을 쐬는데, 발밑에 네가 있더라. 살아 끊임없이 갉아먹었을 네가 죽어 갉아먹힌 모습은, 말하자면 순환이었지. 판잣집을 감추려고 병풍처럼 지었다는 아파트에 사람과 쥐가 참 오래도 함께 살았어. 오순도순 지낸 것은 아니었겠지만. 2003년 서울.

어디에나 있다. 마치 개미처럼. 눈에 보이는 곳에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더욱 많다.

도시인과 쥐는 공존관계지만 둘이 눈맞춤하는 경우는 현실보다는 영화나 우화에서일 때가 많을지 모른다. 쥐의 눈을 보았는가. 검은콩처럼 작고 새카만, 그러면서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호기심 가득한 쥐의 눈망울을 마주친다면 당신은 잠시 생각을(특히 편견을) 멈출 수도 있다. 내가 저 녀석을 왜 미워했을까.

시골인에게 쥐는 더 직접적이며 적대적인 존재다. 겨우내 먹을 콩과 늙은호박 따위 먹거리를, 봄에 심을 씨앗을 아사리판으로 만들어놓는다. 콩은 사라지고, 똥이 수북한 창고에서 놈들이 싸질러놓은 시큼퀴퀴한 오줌 냄새를 맡으면 ‘내 오늘은 만사 제쳐두고 요놈의 쥐새끼들부터 요절내고 말리라’라는 분노가 차오른다. 하나 어찌 영리한지 놈들을 잡기란 쉽지 않다. 생쥐 제리에게 매번 당하고 마는 고양이 톰의 심경이 물밀듯 생긴다.

그러다가 한번은 잡고 말았다. 물정 모르는 아기 쥐가 제 죽을 덫인 줄도 모르고 먹이를 탐내다가 덜컥 갇혔다. 찍찍하는 그 소리가 소름 끼치는 비명이 아니라 산새 소리처럼 맑았다면 정신 나간 착각일까. 나는 쥐가 너무 귀여워서 틀덫을 들고 옆지기에게 달려갔다. 비명은 잠깐, 걱정이 날아왔다. 이제 어떡할 거야, 죽일 거야? 살릴 거야?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물론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 죽이기엔, 너무 작고 무척 예뻤다. 살려주면, 얼씨구나 내 집을 제집이라 여길지 몰랐다.

덫을 들고 뒷산에 올랐다. 녀석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네 이놈, 다시는 우리 집으로 오지 마라. 귀여워서 살려주는 줄 알아. 집에 돌아오자 질문이 날아왔다. 죽였어? 살려줬어? 응, 뒷산 먼 데 가서 살려줬어. 죽이기가 영 그렇더라. 옆지기는 나를 나무랐다. 그렇다고 살려주면 어떡해! 하지만 죽였다고 말하면 이렇게 혼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죽이면 어떡해!

쥐는 인간에게 오랜 세월 증오와 공포의 존재였다. 거대한 공룡마저 알을 훔쳐 먹는 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14세기 유럽인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은 다름 아닌 쥐벼룩이 옮긴 대재앙이었다. 전쟁도 그리 많은 사람을 죽이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쥐를 증오하면서도, 쥐의 떼죽음을 반기지는 않는다. 쥐의 떼죽음이 비극의 전조였음을 들려주는 동서고금의 옛이야기들은 그저 상상일까, 오랜 경험일까. 코로나 시대 마치 예언서처럼 다시 읽혔던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도 알제리 오랑시에 불어닥친 대재앙은 쥐들의 비명과 떼죽음으로 시작한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처음엔 쥐떼를 끌고 나중엔 아이들을 끌고 사라진다. 오랑시에 마침내 비극이 물러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무엇이었을까. 쥐들의 귀환이었다. 주인공 리유에게 노인이 달려와 외친다. “그놈들이 다시 나오고 있어. 쥐 말이야. 죽은 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놈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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