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1109억 낭비 ‘세운상가 보행로 철거 계획’ 재검토한다

오세훈의 개발주의 ‘손바닥 뒤집기’ 행정…시민 반대 부딪혀 재검토
등록 2025-01-17 21:58 수정 2025-01-18 14:34
2024년 9월29일 오후 시민들이 철거를 앞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를 걷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2024년 9월29일 오후 시민들이 철거를 앞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를 걷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1109억원을 들여 만든 서울 세운상가 공중보행로의 존폐가 안갯속이다. 이 공중보행로는 세운상가, 삼풍상가, 인현·진양상가 등 7개 상가를 잇는 길이 1㎞의 보행로다. 2016년 착공해 2022년 전 구간이 개통됐다. 개통 3년도 안 된 시점에 철거가 논의됐다.

개통 3년도 안 된 시점에 철거 논의

애초 보행로 철거 결정은 2024년 12월26일에 열린 제6차 서울시 도시재생위원회에서 이뤄졌다. 이날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1㎞ 구간 중 삼풍상가와 피제이(PJ)호텔 양쪽 250m의 보행로를 철거하는 내용이 담긴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활성화계획 변경안’이 원안 가결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25년 상반기 삼풍상가에서 피제이호텔로 연결되는 250m 구간을 우선 철거하고 세운상가 등 상가 건물과 연결된 나머지 구간은 세운지구 재정비촉진계획에 따른 상가군 공원화 사업과 연계해 단계적으로 철거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보행로 통행량이 계획 당시 예측치의 11%에 불과하고 “보행로가 세운상가 일대 지역 재생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철거 이유로 들었다.

서울시는 보행로가 개통된 그해 철거 운명을 예고했다. 오세훈 시장은 2022년 4월 세운상가를 방문해 상가를 철거하고 고밀도 개발을 한 뒤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당시 오 시장은 보행로에 대해 “공중보행로가 이제 겨우 완성돼 활용이 임박했지만, 철거돼야 할 운명”이라며 “계획을 실현하려면 공중보행로가 대못이 될 수밖에 없고, 대못은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세운상가 구역은 박 전 시장의 ‘도시재생’과 오 시장의 ‘도시개발’이 충돌하는 사업지다. 오 시장은 서울시장 재임 당시인 2006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2009년에는 세운상가군을 철거하고, 주변 8개 구역 통합개발을 하는 재정비촉진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후 취임한 박 전 시장은 2014년 세운상가군 철거계획을 취소하고, 도시재생 중심으로 계획을 바꿨다. 그다음 해에는 세운상가와 진양상가 등을 잇는 공중보행길 설치 계획 등을 담은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보행로는 세운상가 일대를 보존하는 도시재생사업의 하나였다.

쇠퇴한 세운상가 일대를 다시 살리기 위해 세운 보행로를 개통 3년 만에 철거한 결정에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나왔다. 아울러 보행로를 개통한 뒤 활성화 방안이 부족했고 시민 의견 청취도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정책위원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세운상가 보행로에 대한 활성화 대책이 있었는지 따져야 할 것이고 노후화되기 전에 보행로를 서둘러 철거할 만큼 위험성이 있었는지 다시 짚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철거 논의 전에 활성화 대책 먼저 세워봐야”

비판 여론이 커지자 서울시는 지난 16일 설명자료를 내어 “공중보행로 철거와 관련해 그간 제기된 시민, 주민, 의회, 전문가 등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거 시기를 조정한다”며 “삼풍상가 공원화 사업 시기와 연계해 (공중보행로를)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허윤희 한겨레 기자 yhher@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