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틴픽핀차이 마을에는 303가구 2천여 명의 로힝야족이 모여 산다. 버마(미얀마) 서부 최대 항구인 시트웨에서 16km 떨어진 마을에는 나무로 지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집들은 불법 건축물이고, 그들에겐 신분증이 없다. 시트웨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검문소는 로힝야족이 시내로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2012년 로힝야 무슬림과 라킨주 불교도 사이 종파 폭력 사건은 로힝야 탄압의 시발점이다. 특히 나지 마을에선 사상자 31명이 발생했다. 이후 버마 정부는 검문소 안쪽 로힝야 마을 사람들을 외곽과 난민캠프로 강제 이주시켰고, 카틴픽핀차이 마을에는 한동안 군인들이 주둔해 있었다. 로힝야족은 병원이 있고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시트웨 시내로 통행이 금지됐다.
정권이 바뀌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깨져버렸다. 2016년 10월 마웅다우 초소 습격과 함께 국경 경찰 9명이 사망한 사건의 범인을 로힝야족으로 몰아가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임시 신분증은 그들을 대변해주지 못한다. 검문소를 지나 시내로 들어올 수 없는 로힝야족은 자급자족하며 공동체 생활을 한다.
마을에서 만난 25살 아부다르다는 길 건너 마을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초등학교의 선생님이다. 아부다르다는 2011년 일자리를 찾아 이 마을로 홀로 이사를 왔고, 2012년 사건 이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 수학, 영어, 버마어, 과학, 역사·지리 총 5과목을 고학년에게 가르치며 생활한다. 공동체가 아이들을 위해 설립한 학교는 선생님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5∼6km 떨어진 테트칼핀 마을에 있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다. 이 학교도 로힝야족이 세웠다.
알롬바하르(50)는 남편과 함께 마을에 산다. 두 자녀는 병에 걸려 죽고, 7살 손자는 어릴 때 화상을 입어 고환이 부은 채 생활하고 있다. 테트칼핀 마을 진료소 의사는 제대로 치료받으려면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에겐 이동의 자유가 없다. 60살 여성 노르바르는 두 달 전 갑자기 오른쪽 눈이 실명됐다. 병원은 그들에게 머나먼 꿈과 같다.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세력이 선거에서 군부를 이겨 정권을 잡았다. 이에 따라 버마에 봄날이 오는 듯했다. 그러나 로힝야족이 열망했던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고, 전세계가 강조하는 인권은 이곳 어디에도 없다. 오래된 로힝야 탄압의 역사는 그들의 생활이 되었다.
아랍 테러단체 다에시(Daesh·이슬람국가(IS)의 아랍 명칭) 때문에 생겨난 무슬림 혐오는 로힝야를 아시아의 무슬림 테러단체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도로 포장을 하며, 아파도 그저 신께 기도할 뿐이다. 랑군(양곤)의 무슬림들은 정식 신분증이 있고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나, 라킨주 무슬림은 ‘로힝야’라 불리고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지만 외국인 취급받는다. 로힝야 문제는 종교 문제가 아닌 소수민족 학살 문제다.
카틴픽핀차이 마을은 창살 없는 감옥이 되었다. 아웅산 수치의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는 결국, 허상이 되었다.
시트웨(버마)=사진·글 조진섭 bromide.js@gmail.com2016년 12월24일 미얀마 양곤에 도착하여 라킨 주정부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주정부는 취재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로힝야족을 공식적으로 취재하려던 계획은 무산됐지만, 관광비자를 받아 12월29~30일 로힝야족 마을에 들어갔다. 30일 저녁, 마을 주변을 지키는 무장 경찰들은 취재비자를 발급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자를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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