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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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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와 갤럭시

등록 2013-05-12 15:15 수정 2020-05-03 04:27

인도네시아 수마테라셀라탄주에 있는 방카섬. 1만1340㎢ 면적에 60만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섬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주석 산지다. 대부분 노천광인 이 섬의 주석광산이 처음 개발된 것은 18세기 초반부터다. 이곳에서 생산된 주석은 대부분 선진국 기업으로 팔려간다. 하지만 요즘 방카섬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 주석 생산에 매달리고 있어서다. 이윤만을 좇는 기업들에 한창 자랄 나이의 10대 아동 노동력이 무자비하게 착취되는 대표적 현장으로 꼽히는 것이다.
얼마 전 바로 이 방카섬과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 삼성전자의 이름이 한 묶음으로 등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영국 일간지 의 지면에서다. 최근 은 “삼성전자가 만드는 휴대전화 부품 중 하나인 주석이 아동노동 착취,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방카섬 소재 광산에서 생산된 것이며, 삼성전자도 이를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삼성 쪽은 “삼성은 방카섬의 주석 공급자들과 직접 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제품 제조 과정에서 일부 방카섬에서 채굴된 주석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쪽은 국제 인권단체인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이 이 문제와 관련해 조사에 들어간 이후, 모두 1만6천여 건에 이르는 소비자 항의 전자우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례는 오늘날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맞닥뜨린 위험(리스크)이 단지 재무 상황이나 제품 품질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기업들이 쏟아내는 첨단 제품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위험도 덩달아 커지기 마련이다. 이른바 ‘분쟁광물’ 논란도 그중의 하나다. 2011년 애플사는 소비자 단체로부터 아이폰에 들어간 원재료의 원산지를 공개하라는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에 쓰인 텅스텐과 탄탈룸, 주석 등이 수백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진 탓이다. 애플뿐 아니라 인텔이나 모토롤라, 노키아 등도 같은 내용의 항의를 받았다. 콩고민주공화국 현지에서 학살에 사용된 무기의 돈줄이 바로 이들 광물을 팔아 벌어들인 것이며, 이들 기업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현지 생산자들과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불행히도, 지난 4월24일 방글라데시 사바르 공단에선 8층짜리 공장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만 400명을 훨씬 웃돌고, 다친 사람도 줄잡아 2500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잡히지 않은 실종자 또한 많다. 사고 발생 이전부터 붕괴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도, 공장주들은 이런 경고를 무시한 채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시켰다. 문제는 이같은 억압과 부당 행위의 근원이 원가 절감과 납품기일 준수를 강요하는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브랜드라는 사실이다. 무너진 건물에 입주해 있던 의류 생산업체는 대부분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다국적 브랜드에 물건을 대는 영세 하청기업들이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들 브랜드 의류를 사 입지 말자는 ‘윤리적 소비자’ 운동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각종 첨단 제품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글로벌 기업들의 기나긴 공급망 사슬의 맨 끝자락, 브랜드의 화려함에 가려진 그곳은 ‘기업’과 ‘인권’이라는 두 단어가 끝내 화해하지 못한, 눈물과 상처, 고통과 슬픔의 현장으로만 남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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