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마이동풍(馬耳東風), 우이독경(牛耳讀經)’
정부가 지난 6월18일 사단 규모인 3천여명의 한국군을 오는 8월 초부터 이라크에 추가 파병하기로 최종 확정하자 문득 떠올랐던 말들이다. 그동안 은 여러 차례의 현지 르포 기사와 칼럼, 분석 기사 등을 통해 이라크전은 미국의 침략전쟁이고 그 명분조차 상실한 만큼 추가 파병은 백지화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추가 파병이 이뤄질 경우 이라크 무장세력의 극렬한 저항에 부닥쳐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며, 국제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함께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은 정부의 추가 파병 결정으로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답답한 나머지 이번호에 한번 더 추가 파병의 무모함을 경고하는 기사를 다루려 했었다. 편집회의를 통해 “비슷한 내용으로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으니 앞으로의 상황을 좀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잠시 덮어두기로 했었다.
추가 파병 확정 이후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하기까지는 고작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좀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편집회의 결정 뒤 다시 이라크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 것도 역시 사흘 만이었다. 김선일씨 피랍 소식은 그래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나는 살고 싶다”는 김씨의 절규를 들으면서 ‘소귀에 경을 읽어온’ 언론의 한계와 무기력함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일제시대 우리 독립투사들과 미군정 아래서의 이라크 무장세력의 저항을 비교하면서 “다를 게 없지 않느냐”며 나름대로 그들을 이해하려 했던 낭만적인 생각들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와 그의 가족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면 불길한 예감이 먼저 드는 걸까. 김씨가 이라크 저항세력의 주적인 미군에 군수품을 납품하는 업체의 직원이라는 신분이 왠지 마음에 걸린다. 그가 납치된 사실조차 모른 채 정부가 추가 파병을 확정했다는 사실도 당혹스럽다. 상당수 국가들이 잇따라 철군하거나 파병 결정을 철회하고 있는데도 추가 파병을 강행하는 한국 정부의 협상 제안을 납치범들이 과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조는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밝히고 있고, 헌법 제5조는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만약 김씨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는 이라크전을 침략전쟁으로 인정하지 않은 그의 조국이 자국민 보호 의무마저 다하지 않아 희생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마감을 늦출 수 없어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 22일 새벽 4시. 그가 살아 돌아올지, 아니면 이국땅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일본 정부가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하고도 인질들을 살려냈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그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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