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화 을 보았다. 소문대로 극장 안은 북적였고, 흥행 영화 특유의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다. 준수한 연출력과, 완숙미가 더해진 송강호의 ‘서민 연기’도 꽤나 즐겼다. 관객석 여기저기선 훌쩍거리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영화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나도 박수 박수 짝짝짝. 뜻깊고도 알찬 관람이었다. 게다가 1천만 관객 중 하나라는 소속감도 덤이니, 이 얼마나 보람되나. 그런데 웬걸. 이렇게 알찬 관람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왜 이리도 공허한지. 그리고 마치 그 공허감을 메우려는 듯이 몰려드는 오만 가지 상념은 또 무엇이며. 나는 나의 짜친 속내가 드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허의 정체를 밝히고 또 고백해보련다.
영화를 본 게 아니라 그를 보다조금 속물(혹은 프로페셔널?)처럼 말해보자면, 영화 의 성공은 드라마와 캐스팅보다는 기획에 있다. 한 실존인물(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그리움을, 매우 시의적절하게, 그리고 매우 안전하게 이끌어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난 이른바 ‘노빠’는 아니지만, 나조차 “아이고, 그가 저랬었구나. 그래… 아니 난 저것도 모르고, 그를 욕했네…”라면서 영화를 봤으니까. 내가 그렇게 욕했고, 그래서 그렇게 가신 뒤에는 내가 더더욱 미안해하던 ‘그’ 말이다. 난 ‘영화’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그’를 보러 간 것이다. 기획자도 잘 알았으리라. 이 영화의 원동력은 ‘어떤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에 있지 않다. ‘그 노무현’에 대한 지못미 감정이입에 있다.
좀더 솔직해지자. 분명히 영화 은 그리움과 미안함을 먹으면서 굴러간다. 관객은 그 그리움을 달래려, 그리고 미안한 바에 대해 사과하려, ‘그 노무현’을 향한 마음의 구멍을 메우려 영화표를 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 물어본다. 정말 그 마음의 구멍은 메워졌나? ‘그 노무현’ 이후로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종북놀이의 기둥서방이 되고 있다는 것, 공공재를 지키려는 파업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범죄자 딱지가 붙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은 사분오열되어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 이러한 것들이 진짜 구멍 아닌가? 이러한 진짜 구멍을 거짓으로라도, 유령 같은 환영으로라도, 메워보기 위해서 난 ‘그 노무현’을 보러 간 건 아닌가? 거꾸로 말해보면, ‘그 노무현’을 그리워하고 그에게 사과함으로써 모든 구멍이 메워졌다고 착각하기 위해서 그를 보러 간 건 아닌가? 정작 그가 소망했던 것들은 구멍들로 남았는데도, 마치 그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이 당장 모두 채워질 것처럼.
1만원짜리 밀실낭만? 요즘 복고가 유행이다. 현실이 각박해지니 과거로부터 위안받으려는 세태가 반영된 현상이리라. 난 일베도 아니지만 노빠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도 아닌 평범한 1인, 영화 도 재밌게 보고 박수도 친 평범한 1인이다. 다만 난 복고가 현실을 가려버리려는 유행인 것처럼, 노무현 영화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망했으나 아직도 못 이루어진 것들을 가려버리려는 유행이 되는 건 아닌지, 공허의 끄트머리에서 괴로워하는 1인이다. 혹시 내가 억만금으로도 못 사는 광장의 행동들을 단돈 1만원짜리 밀실낭만으로 퉁치려고 했던 건 아닌지. 미래의 불투명성을 과거의 환영으로 땜빵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결국 ‘그’가 미처 못 이룬 미래의 숙제를 ‘그’가 이미 이루었던 과거의 업적으로 눈가림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끝내 광장에서 바보처럼 분투했던 ‘바보 노무현’을, 극장을 환영처럼 배회하는 ‘유령 노무현’으로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닌지. 부디 소망컨대, 이 부끄러운 고백을 웅크린 관객이, 1천만 명 중에 오직 나 한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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