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된 7월22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운집한 촛불 시민과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경찰의 강제 해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보수 신문사의 밥그릇을 정치권력이 직접 챙겨주는 희한한 사태가 발발한 직후였다. 시민들은 분노와 좌절을 어찌 토해낼까 용을 쓰고 있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뒷목에 힘을 주는데, 연단의 사회자가 슬그머니 뒤통수를 쳤다.
“명박이를 점지하신 삼신할미 각성하라.” “업무태만 근무태만 저승사자 반성하라.”
그리하여, 한국 언론 사상 최악의 날에 촛불 시민과 언론인들은 그만 박장대소와 포복절도를 하고 말았다. 가만, 이런 날에 우리 이래도 되나, 겨우 정신 차리려는데 다음 순간,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이 따위로 웃기는데 달리 도리가 없었다. 저항할 수도 없었다.
영감/ 왜 불러/ 경제 살려라 뽑아준 우리 대통령 못 봤소
보았지/ 어딨소/ 미국 경제 살린다고 미친 소 타고 설치데
미쳤군 미쳤어 미쳤군 미쳤군 미쳤어
어쩐지 비호감이라더니
마누라/ 왜 불러요/ 담벼락에 세워둔 삽 한 자루 보았나
보았죠/ 어딨나/ 대운하 판다고 명박이가 들고 갔소
미쳤군 미쳤어 미쳤군 미쳤군 미쳤어
평생 삽질만 하라지
미디어법 날치기를 전후한 7월21일과 22일, 두 남녀가 홀연 언론노조 주최 촛불문화제의 사회를 맡았다. 그리고 단박에 ‘떴다’. 누구야? 왜 이제 나타났어? 저런 재주가 어디서 솟아난 거야? 쇄도하는 질문을 모아 광주로 내려갔다. 그들은 광주 문화방송 진행자인 백금렬(38)·지정남(38)씨였다. “워찌야쓰까, 우리는 잠깐씩 입만 놀리고, 암것도 한 거시 없는디요.” 7월29일 저녁, 손사래를 치는 그들을 광주 문화방송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 날치기 통과를 규탄하는 자리였는데,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도 되는 건가요.지정남(이하 지) = 우리 기조가 그렇지라. 무조건 즐겁게 하자는 주의지라, 이.
백금렬(이하 백) = 우덜은 저질이여. 그냥 욕도 해분게요.
- 무슨 욕인데요.백 = 벼락이 쫓아다니면서 나이 수대로 맞아 뒤질 놈, 간에 옴이 올라서 긁도 몬하고 뒤질 놈, 오뉴월 염병 걸려서 땀도 못 내고 뒤질 놈. 또 머시기냐 이, 이런 것도 있재라. 내, 이놈을 만나면 뜨건 물을 짝 찌그러서 오독오독 쥐어뜯어갖고 짚신을 삼어부러.
기자는 질문을 못하고 그냥 넋을 놓고 웃었다. 지난해 여름, 광주 촛불집회 때 백씨가 했다는 ‘욕’을 나중에 전해들었다. 서울 집회 때는 차마 풀어놓지 못한 레퍼토리다. “그때여, 이몽룡은 한양으로 시험 보로 가고, 새 사또가 내려왔는디. 애들이 있으니까 욕을 허믄 안 되는디. 일하기 좋아하니까 좋을 호자에 일할 로자 써서 호로새끼, 과거로 돌아갈라고 헝게 돌아이 새끼. 애들 있어서 욕을 하믄 진짜로 안 되는디. 공사 시작 발주 잘해 시발새끼. 여러분은 진짜 욕하믄 안되요, 이?”
두 사람은 ‘농부가’도 개사해서 불렀다. “어화 어화, 어허루 상사뒤~여. 우리나라는 사물이다. 어찌하여 사물인고. 서해바다 기름물, 여의도 정치 구정물, 삼성 이건희 행복의 눈물, 비정규 노동자 피눈물. 우리나라는 사수이다. 투명인간 한승수, 경제 망치는 강만수, 국민 죽이는 어청수, 죄없는 백성은 십년감수….”
백= 우리끼리니께, 카타르시스 느끼자는 것이재. 말 길게 해갖고 설교하고 훈계해봐야 다 아는 거시고.
- 준비를 미리미리 하시나요.지= 구호는 이짝(백씨)이 만든 건디요. 그때그때 개사도 허지요. 그려도 딱히 대본 써갖고 가는 것은 아니고 그냥 즉석에서 하지라. 쩌번에(7월22일) 서울 갔을 때는 심 봉사가 눈 뜨는 대목을 개사해서 혔지요. 심봉사가 조·중·동을 봐갖고 눈이 어뒀는데, ·문화방송 보고 눈 떠졌다고 소리를 혔지요.
백= 우리는 미련혀서 못 외워요. 기자님도 사람 턱 보면 어찌 기사 써야것다 탁 나오지라, 이. 똑같은 거씨요. 우리도 2년 반이나 요것을 함께 봤으니께, 거시기 돼부렀을 것 아닙니까, 이.
이때의 ‘거시기’가 무슨 뜻인지는 인터뷰 마지막에 밝혀진다. 우선 ‘2년 반’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은 시민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쳐주는 광주 문화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두 사람은 2007년 1월부터 이 프로를 함께 진행했다. 백씨는 소리꾼, 지씨는 마당극단 출신이다.
백= 옛날부터 지역 행사가 있으면 마당극도 하고 사회도 보고 혔지요. 그러다 지난해, 광주에서 촛불집회를 할 때 사회를 봤지라.
지= 원래 처음엔 저 혼자 촛불집회 사회를 보고, 그 다음엔 이 짝이 혼자 사회를 봤지라. 근디 하나는 시원하긴 한디 너무 세다 그러고, 또 다른 한짝은 재밌긴 한디 가볍다 그러고. 둘이 붙여봐라 혀서 지난해 6·10 촛불집회 때 함께 사회를 봤소. 이 짝은 분위기를 크게 끌고 가고, 나는 여그저그 챙기고….
- 방송 진행과 집회 사회는 다를 텐데요.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백=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야재라. 누가 발언하면, “어디서 왔소. 흐미, 말씀도 잘하씨요, 이” 하고 언능 거드는 것이재라. 그라문 분위기가 확 풀링게.
지 = 얼마 전에 라는 만화를 봤는디, 인자 처음엔 괴물들 비명 소리로 에너지를 만들다가 나중엔 웃음 소리로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만들더랑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도 똑같애라. 웃음이 세상을 돌리지라. 원하지 않는 일이 생겨 분혀서 자리에 앉았는디, 우리가 한술 더 뜰 필요가 뭐 있간디. 요라고 분노를 덜어주는 게, 더 힘내야서 활동하는 디 보탬이 되지라.
백 = 집회 문화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도 허지요. 웃으면서 하는 집회 좋잖어요. 거기 가면 재미지다, 그런 생각이 들어야 많이들 올 것 아닌 게라.
지 = 보통 집회는 틀이 있재. 말씀 듣고 어쩌고…. 우리는 주최 쪽이 그런 거 주문하면 일단 “예” 해놓고, 무대 올라가서 무질러부러. 똑같은 이야기 할 짝 싶으면 순서에서 막 빼불고. 흐흐.
백 = 암먼, 그런 이야기 다 들으려면 나도 못 앉아 있겠던디. 집회에 말 들으러 온 것 아니지라. 성질 나서 다들 할 말이 가슴에 꽉 찼는디, 풀게 해줘야재.
백씨는 전남 보성, 지씨는 전남 곡성 출신이다. 두 사람은 방송에서도 토박이 사투리만 쓴다. 집회 사회를 볼 때도 다름이 없다.
- 광주에선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사투리를 쓰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던가요.지 = 아닌디요. 우리가 무슨 말만 하면 웃으시던디요. 우리는 처음에 누구누구라고 인사도 안 혀요. 그냥 “많이 보고 잡았재라, 이” 그라고 시작허거든요. 말 편하게 하대끼 하다 보면 다 아울러지는 것이재라.
백 = 우리는 운동권 사투리는 안 쓰지라. 딱딱한 구호 외치는 거, 잘 안 하지라. 그런 구호 외쳐봐야 (마음에) 안 들리재라. “식사허셨소. 밥은 잡숫고 나오셨지라.” 그거면 되는 것잉게.
지 = 그라문 옛날에 데모를 했건 아니건 다 웃재라. 모두 한 번에 안고 가는 것이재라. 집회 때만이라도 함께 누리는 것이고.
백 = 운동권 사투리는 일단 어법에 안 맞재, 이. 교수들이 영어 쓰대끼, 운동권들이 한자어 섞어쓰는 것이재라. 그라지 말자는 거씨요. 민초들이 생활에서 쓰는 말, 그대로 써야재.
지 = 집회는 생활 야그잖아요. 생활 문제를 이야기하는디, 이상한 말을 쓰면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이 당연하재라. 귀에도 쏙쏙 안 들어오고, 이.
백 = 서울에 갈 때도, 광주에서 통했는디 서울이라고 안 통할게벼? 그리 생각혔어요.
- 처음 서울에서 집회 사회를 맡은 게 언제인가요.백 = 지난해 6월인가, 〈PD수첩〉 땜에 언론노조 집회가 있었는디, 서울에서 광주 문화방송으로 연락이 왔었재라. 우리 소리 하는 사람 없냐고. 그려서 처음 올라갔지라. 사회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싸우러 간다고 생각혔재.
지 = 흐미, 여자 아나운서 구경하러 갔음시롱. 이 짝이 총각이오. 아나운서 옆에서 사진이나 찍고, 이. 그랄 때는 내가 다 챙피하지라.
백 = 와따매, 그 짝은 남자 아나운서 보러 갔잖여요.
- 지 선생님도 사진 찍으셨나요.지 = 지는 다르제라. 다 같은 방송하는 연예인이디. 지는 살짝 도도한 편이재라. 쓱 얼굴 한 번 보고 말아부렀소.
백씨는 문화방송의 최현정 아나운서, 지씨는 허일후 아나운서를 사모하고 있단다. 자리를 홍어집으로 옮겼다. “아따, 누님. 오늘은 홍어가 워째 맹탕이고 심심한디?” 백씨의 공연한 지청구다. 지씨는 가게 앞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이랴도 지가 여그서는 전지현이어요. 특히 할매, 할배들이 좋아라 항게. 사람들 많은 데선 담배 잘 못 피우지라.”
- 판소리는 어떻게 배우셨나요.백 = 지가 원광대 한문교육과를 다녔소. 학교 뒷마을에 소리 하시는 임자 윤자 명자 할아버지가 혼자 사셨재라. 제 발로 찾아가서 2년 동안 같이 살았재. 나중에 전북 인간문화재 이일주 선생한테 또 2년 배우고. 소리꾼 되려 혔지요. 국립국악원 대회에서 1등을 먹었소. 군대 면제도 받았재. 그랬는디, 그냥 그 바닥이 싫어서 에잇 니미럴 것 하고 안 가도 되는 군대를 그냥 가부렀소. 임용고시 봐서 선상이 되긴 했는디, 소리는 끊들 못하겄더만요. 2003년부터 혼자 다시 소리하다가, 여그까지 와끄마.
- 현직 중학교 교사인데, 촛불집회 사회를 봐도 괜찮으신가요.
백 = 여그는 광준게요. 교장실에도 가 들어가니게요. “다칭게 살살 하소”, 그런 이야기는 들었어도 허지 마란 말은 한 번도 못 들었재라.
- 예전에 노동운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 = 광주여상 다니다가 졸업하자마자 무등양말 공장에 들어갔재라. (옆에서 백씨가 “광주여상 수석으로 들어간 사람이오, 이 짝이” 했다) 1년 반인가 있다가 해고당혔소. 복직 싸움 허다가 놀이패를 알게 됐는데, 그게 나하고 맞아부렀재.
- 1980년대 후반, 풍자와 해학으로 집회 사회를 보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는데, 그걸 부활시키신 것 같아요.지 = 쩌그 영화배우 하시는 박철민 선배가 예전에 그러셨지라. 옛날 선배들은 와따 재담이 장난이 아니재라. 우리는 그 정도는 안 되고…. 그런 재담의 맥이 끊어져부렀재라.
백씨에게 전화를 걸면 다짜고짜 들리는 음성이 있다. “반민족 반민주 반개혁 신문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방송까지 차지하는 것을 국민의 힘으로 막읍시다.” 녹음인가 싶은데 아니다. 모든 전화를 그렇게 받는다. 친한 사람이 “네미럴, 징헌 놈. 안다고, 니가 조·중·동 징허게 싫어하는 줄 안당께. 싸게 전화나 받어!” 해야, 중간에 멈추고 대화를 나눈다. 내용은 때마다 바뀐다. 그에겐 운전면허가 없다. 걷거나 버스만 타고 다닌다. 옷을 사입는 법이 없어 주변에서 가져다주는 헌 옷을 그냥 입는다. 교사 부임 초기 때 사귀었던 옛사랑을 여태 못 잊고 총각으로 지내고 있다.
놀이패 ‘신명’의 단원인 지씨는 영화배우이기도 하다. 올 3월 개봉한 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두 명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였다. 이혼녀의 삶을 다뤘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지씨 역시 혼자 살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영화는 59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됐다. 광주 문화방송에서 외에도 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2005년 3월부터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다. 광주 말바우 시장에서 좌판을 벌인 무 장수가 팍팍한 세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5분짜리 시사 프로다. 항상 머리에 쪽을 트는데, “나처럼 쪽진 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쥐띠다. 1972년에 태어났다. 고등학생 때인 1989년 전교조 교사들의 해직을 직접 봤다. 고등학교 때부터 를 읽었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같은 쥐띠인 기자는 막걸리 기운을 빌려 ‘참교육 세대’를 함께 논했다. 지씨는 “우리 쥐띠들은 전부 괘안한디, 서울에 있는 그 쥐는 왜 그란지 몰라” 했다.
- 그런데 말이죠. 이것 참 외람되고…, 이런 이야기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시고…. 독자들도 궁금해할 것 같고 해서… 혹시 두 분 사이에 공동 사회자 말고 다른 이야기가 더 있나요.지 = 워따, 먼 이야기라고 그라고 뜸을 들이고 그려셨소.
백 = 우리 사이는 거시기허요. 그냥 친구재라. 이렇게 쳐다봐도 그냥 그렇재라.
지 = 지난번에 (백씨 고향인) 보성에 방송 찍으러 강게, 동네 할매들이 나더러 “어이, 금렬이 짝꿍 왔네” 하고 반기긴 하더만.
백 = 그렸소. 나는 몰랐재. 흐흐.
밤차 시간에 맞춰 자리를 일어서는데, 눈빛만 봐도 죽이 맞아 촛불 시민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지만 아직까진 그저 친구로만 너무 좋은 두 사람이 계산을 뜯어말린다. “저짝 양반이 계산허게 허면, 이 테레비를 확 부숴불랑게.” 식당 사장님이 두 사람에게 눈을 부라린다. 외지 손님 대접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인데, 기자는 홍어 뒷맛이 알싸하고 삼삼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취재 윤리를 잠시 접었다. 그냥 그들과 밤새워 술 마시고 싶었다.
광주=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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