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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는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국제전화코드 1번이 중국이 된다면

국제통화가 방코르로 바뀌고, 미국이 몰락한 시대를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그린 <맨디블 가족>
등록 2023-06-16 20:16 수정 2023-06-22 01:05
불타는 달러. 미국의 부채는 늘어가고 있다. 게티 이미지

불타는 달러. 미국의 부채는 늘어가고 있다. 게티 이미지

2023년 1월19일 미국의 국가부채가 의회에서 설정한 31조4천억달러 한도에 도달했다. 공화당이 한도를 높이는 것에 반대하면서 미국 정부가 파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6월3일 조 바이든 정부와 공화당이 2024년 말까지 한도 적용을 유예하기로 합의하면서 겨우 파산을 피했지만, 경제와 정치 양 측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바이든 정부가 무책임하게 국가부채를 증가시킨다고 비판했고, 민주당과 리버럴 지식인들은 공화당이 부채한도를 볼모로 삼아 경제를 위기로 끌고 간다고 반발했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맨디블 가족: 2029년~2047년의 기록>은 이 논쟁의 정서적 맥락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보수적 시각으로 다룬 미국의 방만 경제

무대는 2029년 10월이다. 멕시코 출신의 미국 대통령 단테 알바라도는 미국과 세계를 향해 비장한 모습으로 텔레비전 연설에 나섰다. ‘지난 열흘간 미국 달러화를 사보타주하는 공격이 있었다. 위대한 미국의 성공을 시기한 나라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을 장악하고 방코르(Bancor)라는 허구의 통화를 도입했다. 모든 국제 거래와 국채 상환에 방코르를 사용하라고 위협했다. 대통령은 재무부 장관, 의회 지도자,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협력해서 다음과 같이 맞서 싸울 것이다. 첫째, 미국 시민과 기업의 방코르 사용은 반역죄로 다스린다. 둘째, 100달러 이상의 국외 송출은 한시적으로 금지한다. 셋째, 미국인이 보유한 모든 금은 정부가 회수한다. 단, 금값 폭등 이전의 가격으로 대가를 지급한다. 넷째, 모든 장단기 미국 국채를 무효로 선언하고 상환하지 않는다.'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주식시장이 붕괴한 지 정확히 100년이 지나, 미국은 대상환거부(Great Renunciation)로 다시 한번 격랑에 휩싸인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핵전쟁, 인공지능과 로봇의 반란, 초감시사회, 초격차사회, 환경재앙 등이 초래할 암울한 미래를 진보적 작가가 경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맨디블 가족>은 특이하게도 극히 보수적인 시각에서 미국의 방만한 경제정책이 야기할 파국을 그렸다.

위기의 전조는 진작 시작됐다. 2024년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이 인터넷 시스템을 해킹해 미국의 모든 기간산업뿐 아니라 전기와 수도, 교통까지 완전히 마비된 적이 있었다. 스톤에이지(석기시대)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2001년 9·11 테러만큼이나 한 세대를 규정하는 큰 사건이었다. 맨디블 가족의 3세대인 플로렌스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노숙인 보호시설에서 근무한다. 고임금 일자리는 대부분 아시아 지역으로 넘어가거나 로봇이 대체해버렸다. 이 정도면 2024년 미국에서 중산층이지만 물가가 치솟아 양배추 이외의 채소는 먹을 엄두도 못 낸다. 돼지고기는 한 달에 한 번 먹기도 힘들다. 일주일에 한 번 샤워하는 것은 사치고, 손을 씻을 때는 새 물이 아니라 사용한 물을 재활용한다.

플로렌스의 아버지 카터는 지역 신문 기자로 일하다 평생 꿈꾸던 <뉴욕타임스>로 옮겼다. 이 신문사는 오랫동안 최고였지만 신문 발간은 이미 포기했고, 글쓰기 강좌나 골동품 거래로 근근이 운영됐다. 어머니 제인은 한때 뉴요커에게 사랑받던 서점과 고급 식료품점을 운영했지만, 스톤에이지 때 폭도에게 약탈당한 뒤 집 밖에 나가는 것도 두려워한다. 맨디블 가족 중 잘나가는 건 플로렌스의 여동생 에이버리다. 그는 고급 사설 클리닉을 운영하고, 세 아이를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며, 남편 로웰은 조지타운대학의 유명 경제학자다.

미국이 지속 불가능한 국가부채 수준에 이르렀다고 비판하면서 금본위제를 옹호하는 동료 밴더마이어 교수에 맞서, 로웰은 그를 공포마케팅을 하는 무책임한 관종이라고 비판한다. “20년 전에 재정적자 때문에 난리가 나고 부채한도를 높이는 문제로 정부를 폐쇄하네 마네 하다가 어떻게 됐어? 아무 일도 없었잖아. GDP의 180% 수준에서도 부채는 지속되고 있어. 이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본이 입증하기도 했고”라며 피를 토한다. 논문에서 국채가 GDP의 290%까지 올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며, 화폐의 건전성은 부유층의 집착에 불과하다고까지 주장한다.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이 된 KFC

로웰은 ‘수염이 약 5밀리미터로 까칠하게 자란 모습이 세련되기는커녕 꾀죄죄해 보였고, 들쭉날쭉하게 자른 긴 반백의 머리칼도 지저분한 인상'으로 묘사된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로웰의 주장과 외모에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를 떠올릴 것이다.<em> 실제 슈라이버는 팟캐스트 ‘버닝 캐슬’과의 인터뷰에서 로웰을 크루그먼의 클론으로 설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em> 조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주식시장이 붕괴하고 은행이 위기에 처하자 뻔뻔하게 일시적이라며 예금 인출 제한을 시행하고, 돈을 마구 찍어내서 사람들의 주머니 속 돈을 재로 만들어버리는 연준 의장 이름이 크루그먼이다.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바클레이스은행이 위기에 처하자 ‘더 이상 구제금융은 없다'고 큰소리치고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소설 속 영국 총리는 에드 볼스(현실에서 사회주의와 페이비언협회의 전통을 중시하는 노동당 소속 의원으로, 2000년대 초 ‘섀도캐비닛’(그림자내각) 재무장관을 한 바 있다)다.

슈라이버의 문제 제기는 더 나간다. 방코르로 미국을 공격한 주체는 중국과 소련이지만 동맹도 적들과 한통속이라고 비판한다. 한때 미국의 자랑이던 KFC는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으로, IBM은 ‘인도네시안' 비즈니스 머신으로 넘어갔다. 국제전화 국가코드 1번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대체됐고, 미국은 몰락해서 멕시코의 주변부 취급을 받는다. 멕시코는 ‘백인 미국인'이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에 긴 장벽을 쌓는다. 힘의 변화는 미국 국내에도 반영돼 제1언어는 영어에서 스페인어로 바뀌었다. ARS에서 영어로 듣기 위해서는 2번 버튼을 눌러야 한다. 에이버리와 로웰의 아들 빙은 아시아 본사로 진출하고 싶어서 안달이지만 쉽게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 아름다운 딸 서배너는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거리에서 외국인에게 몸을 판다. 더 이상 매춘부라고 부르지 않으며 ‘자극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합법화됐다. 한때 미국인들이 깔보던 후진국의 모습이 미국에서 재현됐다.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왕따가 된 뒤 생필품 수입이 막히고 인프라를 보수할 여력이 없어서 고속도로와 교량은 폐허가 돼간다. 결국 첼시 클린턴(현실에서 빌 클린턴의 딸 이름)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뉴IMF에 굴복해 방코르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생활은 계속 피폐해지고, 약탈로 무법천지가 되지만 경찰은 제구실을 못한다. 오직 강력해진 것은 ‘사회공헌지원국’으로 이름을 바꾼 국세청뿐이다. 이들은 용이하게 소득 추적을 하려 사람들의 두개골에 칩을 이식하고 모든 거래를 이것으로 하도록 강제했다. 소득이 발생하자마자 사회공헌지원국은 칩을 통해 무려 77%의 세금을 자동으로 떼어간다. 싼 노동력과 세금 혜택 때문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떠날까 두려워 법인세율은 낮게 유지한다.

금본위제 도입, 복지 철폐

큰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은 반란을 꿈꾼다. 그들은 네바다를 자유주로 선언하고 독립한다. 복지를 완전히 철폐하고, 소득세를 10% 단일 세율로 낮춘다. 그리고 금본위제로 회귀한다. 네바다로 향한 사람들도 금본위제가 ‘멍청한 제도’라는 데 동의하지만 정부가 남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통화로는 적적하게 기능’한다고 느낀다. 맨디블 가족 중 정부 개입에 가장 몸서리치는 플로렌스의 남동생 제러드가 누구보다 먼저 자유를 향해 떠난다. 미국의 몰락을 인정하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던 플로렌스의 아들 윌링도 두려움을 이기고 가족과 함께 네바다로 이주한다.

나는 이 소설의 주제를 미리 알았기에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케인스적 경제정책에 깊이 공감하는데다, 슈라이버가 소설에서 옹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보수 경제학 정도가 아니라 금본위제 도입과 복지 철폐라는 극단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라이버는 꼼꼼한 취재,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빈틈없는 구성으로 이 소설이 유치한 이데올로기적 선전물로 빠지는 것을 막았다. 방코르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도입을 주장했고,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실제 금 몰수 조치를 한 적이 있는 등 꼼꼼한 서술도 소설의 완성도를 높인다.

슈라이버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미래가 배경인 이야기는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사람들의 두려움을 다루는 것일 뿐이고, 미래는 벽장 속에 숨어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이고 절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도 ‘미국 붕괴에 대해 썼지만, 미국이 실제 붕괴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맨디블 가족>은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서가 아니다. 지금 일단의 미국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기록이며, 연방준비제도와 연방정부에 대한 오랜 적대감의 표출이다. 그 점에서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맨디블 가족>
맨디블 가족

맨디블 가족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미국 작가로 장편소설 17편을 발표했다. 2005년 영국 최고의 여성소설가를 뽑는 오렌지상을 받았다. 2005년 <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좋아하기 힘든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을 좋아한다. 동물을 사랑하고 다섯 가지 외국어에 수화까지 능통한 인물을 창조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착하기보다는 흥미로워야 하고, 흥미로운 사람들은 보통 나이스하지 않다'고 했다. 슈라이버는 인물뿐 아니라 사건도 극히 불편한 것을 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소년을 다룬 <케빈에 대하여>, 비만으로 죽어가는 오빠를 그린 <빅 브러더>, 완전히 망가진 미국 의료시스템을 고발하는 <내 아내에 대하여>는 모두 거친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 <맨디블 가족>은 2016년 발표됐고, 박아람의 번역으로 2018년 알에이치코리아(RHK)에서 한국어판이 나왔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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