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사는 나라의 노동자들은 수입이 변변치 않거니와 근로조건도 좋지 않다. 위험 요소가 작업장 도처에 널려 있고, 여기에 장시간 노동까지 겹치면 ‘목숨 건 노동’은 곧 일상이 된다. 그런데도 사정이 어느 정도 나쁜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연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힘들다.
<font size="3">출산휴가, 그게 뭐죠? </font>
현실 분석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10여 년 전에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남동쪽에 위치한 탄자니아와 모잠비크부터 시작했다. 근로조건 조사는 선진국에선 체계적으로 이뤄지지만 저개발국에서는 아직 낯선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부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설문지를 베껴서 우선 시험을 해보았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설문 대상자들이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유급 출산휴가를 받느냐’ ‘최저임금을 받느냐’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임금’이라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일터의 안전에 대한 추상적인 질문에는 대부분 무응답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야 깨닫고 설문 대상자들과 후속 면접을 했다. 당신들이 일할 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얘기해달라고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고, 무지했던 우리는 부끄러웠다.
노동자들이 최우선으로 꼽은 것 중 하나는 ‘화장실 이용의 자유’였다. 첫째는 변변한 화장실이 일터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했고, 둘째는 그 화장실을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용하도록 해달라는 소박한 요구였다. 일하다 배탈이 나더라도 감독이나 반장의 눈치가 보여 화장실에 가기 힘들다고 했다. 화장실을 몇 번 들락날락했다가 날벼락이 나기도 했고, 일당이 깎이기도 했다. 여성 노동자일 경우 더 힘들다고 했다. 생리 기간에도 화장실 사용이 쉽지 않으니, 말 못할 불편함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임신한 여성에게는 더욱 가혹한 상황이다. 어떤 이는 기본적으로 화장실의 용도에 대한 ‘철학적 차이’가 크다는 분석까지 덧붙였다. 일하는 사람에게 화장실은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긴요한 장소인 데 비해, 경영자에게 화장실은 직원이 일을 땡땡이치고 게으름을 부리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설문조사 결과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런 ‘화장실 전쟁’은 못사는 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난 7월 초, 미국 시카고의 한 회사 앞에서 노동자들이 시위를 했다. 그들이 들고 있던 피켓에는 “화장실 학대를 중지하라”(Stop Bathroom Harassment!)고 적혀 있었다. 사정은 이랬다. 실험실 전용 수도꼭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이 회사는 직원들이 화장실을 과도하게 사용한다고 믿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약간의 과학성을 담보하기 위해 화장실 출입 카드를 전 직원에게 나눠줬고, 출입 기록 통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직원 19명이 하루에 6분 이상을 화장실에서 ‘허비’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화장실 과잉 이용과 관련해 해당 직원을 경고 조치했다. 서면 경고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과잉 사례가 계속될 경우 해당 직원을 해고할 것이라는 살벌한 위협도 뒤따랐다.
<font size="3">화장실 안 가면 생산율 오를까 </font>
왜 꼭 6분이어야 하느냐는 하소연에 이 기업은 그럴듯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6분 이상 화장실에 머무르는 직원의 경우 스마트폰 사용과 같이 화장실을 ‘오용’하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회사는 믿고 있었다. 물론 채찍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절한 당근도 뒤따랐다. 화장실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는 직원에게는 하루 1달러의 ‘격려’ 수당이 주어졌다. 한 달 내내 오줌보를 잘 관리하면 20달러는 너끈히 벌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놀랍게도 노동조합은 이 ‘당근’ 조항에 동의했다.
이런 식의 화장실 통제가 어느 정도 보편화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소수 기업에서 발견되는 국지적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웃지 못할 일도 적지 않다. 몇 년 전 미국 미네소타의 한 50대 여성 직원이 화장실 이용 때문에 해고될 상황에 처했다. 그녀가 급한 일로 화장실에 가려 하자, 회사가 그것을 막았다. 사태가 급박했던지라, 그녀는 공장 내부에서 박스를 하나 구해 거기에 ‘민생고’를 해결했다. 일종의 시위 효과도 노렸을 터이다. 격분한 회사는 즉각 그녀를 해고했고, 그녀도 이에 질세라 중재 요청을 청구했다. 중재위원회는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녀는 복직했다. 그 와중에 다른 회사들은 더 엄격한 화장실 이용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루에 3번만 화장실 출입을 가능케 하는 카드를 마치 복지카드인 양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네 번째 이용은 특별 허가가 필요했다.
설령 드문 현상이라 할지라도, 이런 소수 기업들은 왜 화장실 이용을 제약하려고 할까? 물론 노동생산성이 일순위 목적일 것이다. 화장실 사용이 해고로 연결될 문제라고 하니, 화장실 사용과 노동생산성의 상관관계는 자못 심각한 것이리라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좀더 일반적인 화장실 통계를 보자. 비뇨기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사람은 보통 하루에 8번 이상 화장실에 간다고 한다. 하루 8시간 일한다고 하면 최소한 4번 정도 화장실에 간다는 얘기겠다. 총 6분이라는 시간 동안 화장실을 4번 가야 하니까 평균 화장실에 1.5분 내로 머물러야 한다. ‘큰일’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겠다.
결국 참는 게 가장 좋은 대응 전략이다. 문제는 이 전략을 제대로 실행하자면 꽤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실 이용 전략을 고안하고 실천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만큼 일에 대한 집중도가 예전보다 못할 수 있다. 소변을 참으며 일해본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제품 불량률이 높아질 수 있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근본적 방책도 있다. 물을 적게 마시거나 아예 안 마시는 것이다. 화장실에 가는 걸 참는 게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하자는 방책이겠다. 비뇨기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이렇게 되면 탈수 현상이 불가피하게 생겨나고 일의 능률을 해치게 된다. 화장실 이용을 통제해 회사는 몇 분의 추가적인 ‘생산시간’을 확보하겠지만, 그렇게 늘어난 시간 동안 노동능률은 떨어지니, 결과적으로 회사에 주는 이득은 거의 없다. 오히려 회사로서는 손해 입을 위험도 있다.
단기적 문제뿐만이 아니다. 중·장기적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생리적 현상을 지나치게 오래 참으면 병이 된다. 방광에서 박테리아가 무지막지하게 자라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그 위험이 크다. 나이 먹어 비뇨기 기능이 떨어지는 중·노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비뇨기 관련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데, 화장실 통제는 이런 사람들에게 사실상 차별적이다.
<font size="3">핵심은 ‘화장실’이 아니라 ‘통제’</font>
화장실 이용 통제는 경제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노동자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마다 제각각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 하나 있다. 화장실 통제의 핵심은 ‘화장실’이 아니라 ‘통제’다. 화장실 이용 문제를 통해 기업의 노동자 규율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페이스북을 보며 농땡이를 치는 직원 수가 극히 적다 하더라도, 이를 규제함으로써 전반적인 노동규범을 재확립하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에 따르는 비용을 기업이 감내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대상이 꼭 화장실일 필요는 없다.
한때 한국의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의자 없이 서서 일했다. 서서 일해야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겠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육체적 어려움을 견뎌내야 하는 계산대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을 거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혹 단기적 생산성 향상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짜낸 생산성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대형마트의 경영진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 싶지만, 이런 식으로 직원들을 과도하게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통제 전략으로 괜찮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야 한다. 직원이 서서 손님들의 계산을 도와줌으로써 소비자는 ‘왕’ 대접을 받는다는 인상을 준다는 의도도 있다.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업의 이해와 ‘왕’이고자 하는 소비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 결과는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도 그렇게 시작됐다. 관련 법규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경우에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두어야 한다”(제16조).
그러나 여전히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다. 더러 의자가 구비돼 있지만, 거기에 앉지 못하고 10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 다리에 통증이 오면 화장실에 가서 변기 위에 앉아 쉬는 게 상책이라고도 한다. 의자를 두고 왜 그러냐고 물으면, 대답은 두 가지다. 첫째는 관리직의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앉으면 게으름을 피운다는 관리직의 편견 때문에 의자는 늘 비워져 있다. 둘째는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손님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눈치를 본다. 심지어 짝다리도 불량스러워 보일까봐, 마치 군대 도열하듯이 한 치의 흔들림 없어 하루 종일 서 있다. 이리 되면 기업은 소비자의 불평이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직원들에게 의자를 제공해 쉬게 하고 싶으나, 손님이 싫어하니 별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 손님들의 상당수는 내일 아침 의자가 없거나 화장실 이용이 자유롭지 못한 일터로 나갈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와 노동자는 이렇게 간단히 분리되고, 기업의 통제 논리는 이런 빈틈을 얄미우리만큼 잘 활용한다. 그래서 의자 통제의 정치학은 화장실 통제의 정치학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font size="3">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font>
일하는 환경을 바꾸는 일은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화장실에 편하게 다녀올 수 있고, 다리가 아프면 쉴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간단한 자유를 허용한다고 해서 생산이 줄고 이윤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과잉된 통제의 논리와 소비자의 논리를 버리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될 일이다. 그러려면 노동자 개개인의 삶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화장실에 가지 않는 직원에게 1달러의 수당을 주는 정책에는 그런 존중감이 없다. 의자에 앉을 시간 없이 장시간 서 있는 노동자의 서비스를 받으면서 제대로 대접받았다고 느끼는 소비자도,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의 산업재해 상황을 발로 뛰며 기록한 책이 나왔다. 르포작가 희정이 쓴 (오월의봄 펴냄)다. 그 책에 실린 일터의 현실은 참담하다. 문제는 산적해 있으나, 해법은 요원해 보인다. 그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랬다. “노동안전보건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인간이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그는 ‘감수성’이라 대답했다. 안전장치와 관리·감독과 구조와 시스템을 제치고, ‘감수성’이라니. 그는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아파하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대답이 오래 남는 까닭은 죽음을 하찮게 보도록 연습되어진 우리 삶 때문이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사회보다 더 문제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다.”(57~58쪽)
물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은 근원적 해법은 아니겠다. 하지만 화장실에 갈 자유, 그리고 의자에 앉을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같이 아파해주는 법부터 연습해야겠다. 그게 미약하지만 큰 첫걸음이다. 아픔을 돈 따위의 문제로 돌리지 말고, 아픔을 아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도 힘든 세상인 듯하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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