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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를 권하는 사회

노동자 고용 보호 완화한다 해도 실업 안 줄어… 기업-사회 이익, 노동자-기업 균형 맞춰야
등록 2016-03-26 22:31 수정 2020-05-03 04:28
지난 1월21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천의 한 식당에서 지역 노사 관계자들과 현장간담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난 1월21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천의 한 식당에서 지역 노사 관계자들과 현장간담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사회는 종종 불온한 것을 은밀하게 권한다. 사회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구글에 물어본다. 사회가 무엇을 권하는지 검색한다. ‘술 권하는 사회’가 일등으로 나온다. 현진건의 소설 덕분이다. 곧이어 나오는 항목에서 사회는 빚, 대출, 야근, 카페인, 심지어 설사약을 권한다. 시민 개개인이 그다지 원하지 않는 것을 그 집합체인 사회가 권하고 있다. 뒷맛이 쓰다.

현진건의 를 다시 읽어본다. 여전히 쓸쓸하다. 출간된 지 100년 가까이 지났건만 그 쓸쓸함은 글자 하나하나에 스며들어서 한쪽을 넘길 때마다 손이 베일 것 같아 조심스럽기만 하다. 일본에 유학까지 간 엘리트 남편을 아내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가 드디어 돌아왔을 때 그녀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남편은 첫 몇 주일을 바깥나들이로 보내더니 다음 몇 주일은 집에 파묻혀 지냈다. 그러고는 바깥에 다시 나가더니 매일 술에 취해서 돌아왔다. 그 이유를 알 길 없는 아내는 남편에게 이유를 물었다. 남편은 괴로운 듯 말한다. 사회가 술을 권해서 그렇다고.

“그 몹쓸 사회가…”

하지만 아내는 ‘사회’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묻고 또 묻는다. 남편은 답답한 마음에 다시 집을 비틀거리며 나선다. 아내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부르짖지만, 끝내 남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할 뿐이다. 사회는 “몹쓸” 것을 권하고 개인의 삶을 황폐화한다.

요즘은 그 “몹쓸 사회”가 해고를 권한다. 그렇게 열심히 ‘근로’를 권하고 야근을 권하던 사회가 돌변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 개혁을 해야 한다는데, 그러려면 해고가 쉬워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바야흐로 ‘해고를 권하는 사회’다. 아직 옅은 그림자만 보이고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인지, 구글 검색에도 나오지 않고, 늘 친절한 네이버에 물어봐도 답이 없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시큰둥한 반응만 보일 뿐이다. 세상만사를 다 아는 구글도 네이버도 사회가 해고를 권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술을 권하는 손길보다 더 은밀하다.

사회가 해고를 ‘권하는’ 이유는 익히 아는 바다. 기업이란 부침이 있기 마련이니, 때때로 인력을 줄여야 할 불가피한 상황도 있다. 기업이 망하지 않으려면 노동자가 피하고 싶은 일을 기업이 하게 되고, 피눈물을 머금고 노동자를 내보내기도 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윤이 있어야 기업이 살아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라 한다.

하지만 세상천지에 해고를 쿨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한두 달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다녀온 직장이라면 더 그렇다. 피하고 막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얼핏 보자면 기업의 합리성과 노동자의 정서적 거부감이 맞부딪치는 듯하다. 경제를 책임지는 기업의 합리적 결정에 노동자들은 ‘응석받이’처럼 자신의 좁은 이해에 휘둘려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결국 사회 전체적 이익을 해치게 되니, 사회가 나서서 해고를 ‘권하는’ 것이다. 정부도 국익의 이름으로 하소연하거나 날선 말도 아끼지 않는다. 비합리적 개인을 위해 사회가 합리성을 권하는 형세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우선 따져두자. 기업의 결정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다. 합리성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경제학에서도 나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기업이 노동자를 한 명 추가 고용했을 때 생기는 편익과 비용이 일치하는 수준에서 고용량을 정한다고 가정한다. 그 고용량은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계산에 입각해 기업이 해고를 결정하는데, 노동자가 해고에 저항해 버틴다면 결과적으로 효율성을 해치게 된다. 그러다가 기업이 아예 망할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더 많은 노동자가 해고를 당하는 불행한 사태도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사회는 전체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해고를 권한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월급 이상의 문제
“5년 안에 고용률을 70%까지 높이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달리 실제 고용률은 이에 못 미치는 형편이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년 안에 고용률을 70%까지 높이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달리 실제 고용률은 이에 못 미치는 형편이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업이 비용을 계산할 때는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직간접적 임금만 고려한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해고는 월급 이상의 문제다. 그동안 쌓아둔 기술과 숙련이 사라지는 위험이고 이와 관련된 중·장기적인 경제적 손실이다. 기업도 눈앞의 이해만 따지다보면 이런 손실을 무시하기 일쑤다. 또한 자신과 가족이 겪어야 할 정신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해고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병치레하기 쉽고, 아픈 예이긴 하지만 자살 확률도 높다. 여러 가지 실증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이렇게 해고의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다. 재정적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일자리는 곧 세수의 원천이고 각종 사회보장기금의 원천이다. 실업 증가는 이런 재정적 수입의 축소를 의미한다. 그러나 기업은 해고를 결정할 때 좁은 단기적 비용만 고려할 뿐 실업의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흔히 ‘외부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외부성이 존재할 때 기업은 사회적으로 효율적 수준을 넘어 과잉 해고를 하게 된다.

기업 합리성에 구조적 한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도 ‘인간의 일’인지라 단시적이고 탐욕적이다. 기업에서 투자 및 고용 결정을 하는 고위 임원들의 천문학적 보수는 이미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다. 일부 경제학자와 경영학자들이 이 또한 경제적 효율성 때문이라고 강변하지만, 호소력이 크지는 않다. 경제적 효율성의 이름으로 수백 명을 해고해 주식시장과 이사회의 호평을 받은 뒤 해당 최고경영자(CEO)가 해고된 수백 명의 1년 연봉에 맞먹는 보너스를 받는 상황은 논리적 설명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한국에서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일전에 ‘갑질’ 물의를 일으킨 몽고식품에서는 임직원 1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2014년 영업매출은 460억원, 영업이익은 11억원이었다. 임직원을 통틀어 지급한 급여는 33억원 정도였다. 영업이익에 맞먹는 10억원에 해당하는 급여가 단 5명에게 지급됐다. 명예회장과 부인, 장남, 차남, 막내아들이었다. 회장은 ‘경영고문’의 대가로, 그 부인은 ‘사회공헌활동’의 대가로 급여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회장의 ‘갑질’에 따른 여론 악화로 인해 기업 매출이 악화됐을 때, 이 기업이 ‘경제적 논리’를 들이대며 총직원의 20%에 해당하는 대규모 해고를 선언했다고 해보자. 직원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직원의 평균급여는 3500만원이라는데, 20명이면 7억원이다. ‘가족 경영진’의 급여만 합리화해도 대규모 해고를 피할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사회는 해고를 무작정 권해서는 안 된다. 해고는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도 고려해야 하고 사회적 영향도 따져서 결정해야 할 신중한 문제다. 기업의 자유로운 결정에만 남겨둘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기업이 수없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도 적지 않다. 이런 기업들을 ‘시장의 자유’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그런 기업이 늘어나면 건전하고 합리적인 기업이 버틸 자리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노동법에 명시된 ‘고용 보호’

그래서 노동법에는 고용 보호와 관련한 세세한 규정이 명시돼 있다. 해고 요건을 정의하고, 절차를 세우고, 억울한 사정을 법적으로 어찌 다룰지를 마련해두었다.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이고 개인적으로 억울한 해고를 막기 위한 기본 장치다.

물론 경제구조도 바뀌고 노동시장도 변화하면 고용보호법도 현실에 맞추어 변화해야 한다. 낡은 규정은 손봐야 하고,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용 보호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해고가 쉬우면, 필요할 때 마음껏 고용했다가 어려울 때 조정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고용을 전체적으로 늘린다는 주장도 할 것이다. 잊을 만하면 해고 요건을 완화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해고를 권해야 할 사회적 이유인 셈이다.

하지만 실증 연구 결과는 신통치 않다. 고용보호법을 완화한다고 해서 고용 총량이 늘거나 실업이 줄어들지 않는다. 가끔 청년층과 같은 ‘취약계층’에 부정적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지만, 그리 심각한 규모가 아니며 상반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거나 기간제 고용을 늘리면 기업의 고용이 활발해질 가능성은 높지만, 동시에 해고의 빈도도 높아진다. 일자리의 입구도 넓어지지만 퇴출의 입구도 동시에 넓어지니, 그 사이에 위치한 일자리 수는 늘어날지 줄어들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멸되는 속도는 늘어난다. 즉 일자리의 ‘흐름’은 빨라지지만, 그렇다고 일자리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폭이 정해진 논의 입구와 출구를 동시에 늘린다고 해서 논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이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하나, 고용보호법은 균형이 핵심이다. 기업의 개별적 이해와 사회적 이익 간 균형을 맞추고, 노동자와 기업 간의 균형도 필요하다. 해고 유연성 제고는 사회가 부담해야 할 해고 비용의 증가와 노동자의 후생 감소 효과를 동반하는 일인 만큼, 이를 해소하는 정책적 조치가 동시에 취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균형이 맞고 사회적 수용성도 높아진다.

예컨대 해고의 유연성과 함께 실업급여 확대, 직업훈련 강화, 적극적 일자리 창출 정책, 여타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통한 해고 완화로 늘어난 소득 불안정성을 줄여줘야 한다. 흔히 덴마크의 ‘유연안정성’으로 널리 알려진 접근법은 이런 균형화를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정책 조치를 적극 고려해서 차후 도입된다”는 말잔치여서는 안 된다. 해고 유연성은 명시적이고 즉각적인데 이를 보정하는 정책은 추상적이고 불확실하다면, 무엇보다 균형이 맞지 않다.

물론 노동자들의 처지가 모두 같지는 않다. 힘센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은 굳건한 보호를 받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한계상황이다. 이런 차이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조정 방식이 중요하고 일의 우선순위도 따져야 한다. 사회가 우리에게 ‘독주’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면, 보호받지 못한 노동자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먼저다.

한계상황 노동자 위한 조치 시급

가용한 모든 법적 수단을 충실히 동원해서 노동시장의 음지를 살피고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서 그들의 실질적 처지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이런 정성을 다하고도 모자란 것이 있어서 해고 문제를 다시 따져보자고 하면, 노동자들이 먼저 나설 터이다. 그물 곳곳에 구멍이 나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데 그물 브랜드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소설 에서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며 밤새 바느질하다가 기어코 피를 내고 만다. 손에 피는 흐르지만, 피를 막을 헝겊을 옷감 더미 속에서 찾지 못한다. 바닥에 헝겊 조각이 있으나 그걸 “집어줄 사람은” 없고 “방 안은 텅 비어 있다”. 해고를 권하는 사회의 모습도 이러하다.

이상헌 경제학 박사· 저자* 참고 문헌: The Natural Survival of Work, P. Cahuc and A. Zylberberg, the MIT Press, 2006
“What do labor market institutions do?”, B. Holmlund, Labour Economics 30, 62-69, 2014
*‘이상헌의 理想한 경제학’이 이번호 이후 잠시 휴식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보내주신 이상헌 박사와 열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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