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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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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값’부터 넣어야 했다

3부-그리고 1년. 중요한 건 빼놓은 채 유가족 공격의 무기로만 쓰이는 ‘세월호의 경제학’… 정부는 숨은 사회적 비용에는 침묵하고, 진실 밝히라면 경제논리를 들이대
등록 2015-04-15 12:25 수정 2020-05-03 04:27

4월이 오지 않길 바랐는데, 어김없이 와버렸다. 꼭 1년이 지났구나. 그곳에도 봄이 오고 꽃은 피는지.
오늘 나는 다시 호수를 찾았단다. 바다가 없는 이곳에는 바다 같은 호수가 있어. 지난해 이맘때 여기서 수신 불명의 편지를 보냈었지. 어른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가는 길에 너무 울지 말고 친구 손 꼭 잡고 어깨 두들겨주며 잘 가거라면서. 모두들 절망했지만 각오도 대단했었지, 그때는.
1년 전 그때처럼 오늘도 바람이 차고 하늘은 어둡다. 정지 화면 속으로 다시 불쑥 돌아온 듯한 착각마저 드는구나. 미안하구나. 날씨만 그런 게 아니란다. 너희가 떠나고, 세상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단다. 어쩌면 아직 바다 속에 있는 배 속에 세상의 시간이 저당 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희와 침몰한 배는 시간의 전당포인데, 영영 찾지 못할까 불안하기만 하구나.
무슨 낯짝으로 편지를 쓸까 했다. 어른들을 한 번 더 믿어달라는 다짐, 지키지 못했어. 더 엉망이 되어버렸단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은 여전히 모르쇠이니, 너희 부모님들은 매일같이 거리를 찾아나선단다. 애타는 친구들과 시민들이 힘을 보태도 저쪽은 꿈쩍도 하질 않는다. 며칠 전엔 너희 엄마·아빠가 머리카락마저 눈물과 함께 메마른 시멘트 바닥으로 보내셨지. 삶의 전부인 너희를 잃었는데 삭발이 무슨 대수였을까. 다만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질 때마다, 원통하고 어이없었던 지난 1년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겠지. 빗물처럼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눈물방울이 뚝 떨어지면, 너희의 해맑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겠지. 여기에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당시 ‘세월호 참사 여파로 민간 소비가 위축됐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 위축만 주장할 뿐 규제와 감독의 실패로 인한 비용은 외면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당시 ‘세월호 참사 여파로 민간 소비가 위축됐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 위축만 주장할 뿐 규제와 감독의 실패로 인한 비용은 외면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어떤 날엔 우리를 버렸으면 한다

그래도 너희에게 편지를 쓴다. 어른들의 약속이 어긋나고 헛된 것이 되어버린 경위를 보고하려 한단다. 그러면 너희는 그러겠지. 세상이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세상을 버리겠노라고. 신음 같은 바람만이 가득한 날에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희도 이젠 알겠지만, 사람들은 가끔 바람에 취하기도 한단다.

알지 않니. 이 모든 것이 돈에서 시작되었지. ‘돈’, 이러면 천박해 보이니까 ‘경제논리’라는 고상한 표현을 쓰기도 해. 사람들은 돈을 악착같이 벌고 싶어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걸 눈치채는 걸 싫어하고 때로는 벌컥 화를 내기도 한단다. 내 마음속 깊이 숨겨둔 사랑의 감정을 누군가 불쑥 입 밖으로 내뱉으면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것처럼.

아마 모르는 친구들도 있을 거야. 수학여행 간다고 탔던 배의 이름이 세월호란다. 그 배의 선주가 돈을 엄청나게 벌고 싶었던 모양이야. 낡은 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않고, 컨테이너를 더 실어보겠다고 그나마 안전장치마저 없애버렸다고 한다. 선원들도 안전이나 실력보다는 “싸게 부릴 수 있는” 사람으로 썼다고 하네. 너희를 버려두고 홀로 빠져나와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어찌 보면 세월호의 선주가 꼭 저를 닮은 사람을 채용했던 게지. 그래서 세월호 사고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단다.

학교에서 배웠을 거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이윤 추구는 당연하지. 그런데 너희도 알잖아. 무작정 이윤 추구를 하자는 게 아니지. 국민의 안전이나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어 있지. 기업들이 이런 것까지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돈만 벌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에서 법률도 만들고, 또 이를 감시하기 위해 정부가 있는 게 아니겠니. 그런데 너희가 떠나고 알게 되었단다. 공무원들도 기업과 유착되어 있었던 거야. 그들도 ‘이윤 추구’를 하게 되다보니 추상같이 엄격해야 할 그들이 실은 기업의 돈욕심을 오히려 부추긴 게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관행’이었다는데, 참 이상하지. 나쁘고 벌 받아야 할 일이 발각되면 다들 ‘관행’이라고 그런단다. 대대손손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온 도둑이 경찰에 잡히자 그건 내 ‘생계’이고 집안의 ‘관행’이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야.

다들 ‘관행’이라고 그런단다

이건 서막에 불과했단다. 돈욕심으로 무장한 경제논리로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너희를 살려낼 기회는 있었지. 우리나라에는 해경도 있고, 이순신의 후예인 해군도 있으니까. 하지만 구조 작업이 어찌되었는지는 너희가 고통스럽게 기억하잖니. 세월호의 추악한 욕심을 막지 못한 게 첫 번째 실패라면, 참혹할 정도로 허접한 구조 작업이 두 번째 실패였단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뜻을 모았지만, 이 두 가지 실패는 오랫동안 쌓여 화석이 되어버려 어찌하질 못했단다. ‘관행’과 ‘경제논리’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갑자기 침묵하기 시작했어.

목소리가 나왔단다. 너희 엄마·아빠에게서 시작되어, 전남 진도의 팽목항에서 나라 곳곳으로 퍼져갔단다. 그제야 마치 봄꽃이 지천에 피어나는 것 같았단다. 눈물 위로 눈물이 떨어지고, 그런 방울들이 모이니 큰 목소리가 되더라. 구조 작업을 제대로 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슬프고도 장대한 장면이었단다. 또 그게 지루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그러자 침묵하던 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단다. 진실 규명, 구조 작업 완료, 책임자 처벌, 이런 걸 기대했지. 그런데 뜻밖의 얘기가 나왔단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위축된다고 했어. 구조를 제대로 하고 사고의 진실을 알리자는 요구가 높아지니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돼 소비가 줄고 투자도 줄어서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거야. 너희가 싫어하는 복잡한 용어와 숫자가 동원되었단다. 소비심리지수가 어떻고 경기선행지수가 어떻고, 그래서 국내총생산(GDP)이 어쩌고 하는 거지. 너희도 기억나지. 요즘 살림살이가 다 어렵지 않니. 세월호 때문에 사는 게 더 어려워진다고 하니, 하루하루가 빠듯한 이들에게는 걱정거리이지. 섭섭해하지 마. 마음속에야 너희들 생각이 가득하지만, 팍팍한 살림 때문에 야박한 생각이 생겨나는 게 어른들의 일상이야. 저쪽에서는 이런 심리를 잘 알지. 아까 말한 ‘관행’, 기억나니. 이런 고도의 심리전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 관행적으로 많이 해오던 것이지. 너희가 정색하고 ‘낡은 수법’이라 한다면, 나로서는 반박하기 힘들겠구나.

이 때문에 화가 난 분들도 있었다. 반박을 하려 했다. 경제지표를 꼼꼼히 살핀 다음, 세월호가 소비나 경제 전체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따졌지. 몇 년째 경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세월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비판했단다. 자세히 보니, 지난해 하반기에는 소비가 조금씩 좋아진다는 증거도 찾아냈어. 세월호가 경제의 발목을 잡은 적은 없다는 얘기였지. 설익은 경제논리로 세월호 참사의 진리를 외면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어. 고마운 분들이지.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에 줄지어 선 추모객들. 세월호 참사 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지출은 늘었을지 모른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에 줄지어 선 추모객들. 세월호 참사 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지출은 늘었을지 모른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중요한 건 빠진 세월호 경제학

하지만 난 좀 아쉬웠단다. 돈이니 경제니, 이런 것에서 시작된 일인 만큼, 차제에 경제논리로 제대로 따져보았으면 했지. 세월호 참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없었다는 말은 취지는 이해하나 잘못되었지. 수백 명의 청춘을 졸지에 바다에 묻는 국민적 대참사가 있었어도 경제는 예전처럼 잘 돌아간다면 그게 더 이상하고, 또 너희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겠다. 적어도 몇 개월 동안 사람들이 마음 졸이며 여행과 유흥을 줄였던 건 사실인데, 숫자로 폼생폼사하는 경제학도 이런 경우에는 정확한 수치를 내놓질 못하지. 경제가 이미 전반적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이라면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추가적 효과를 계산하기가 쉽지 않아. 또 그럴 수도 있겠구나. 너희를 추모하는 지출은 늘었겠구나. 팽목항을 찾는 이들, 추모식장을 찾은 이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기부, 오로지 너희를 위한 이 모든 것들은 경제 통계상으로는 소비지출 증가가 되지. 요상하지만, 이게 경제논리란다.

딸깍발이처럼 따지자는 게 아니란다.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정작 중요한 게 빠져 있기 때문이야. 애초에 기업과 정부가 세월호 같은 선박을 제대로 관리하고 감독을 잘했어야 했다. 규제와 감독의 실패인 게야.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제대로 구조했어야 했다. 구조의 실패이지. 너희를 잃고서야 이 두 가지 실패의 경제적 비용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계산을 제대로 해야겠지.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해 정부, 기업, 국민이 지불한 비용은 모두 포함되어야 할 거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뿐만 아니라, 숨겨진 비용도 찾아내야겠지. 너희 가족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겪었던 정신적 비용은 뺀다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돈이 되겠지. 너희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너희들 목숨값도 넣어야 하겠다. ‘세월호의 경제학’을 따지려면 이 비용부터 계산해야 하지 않겠니. 그런데 이를 따지는 사람이 드물구나.

한 가지 비용이 더 있다. ‘세월호 참사로 내수 위축’이라고들 하지만, 표현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단다. 엄밀히 말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대응 실패’로 인한 내수 위축이라고 해야겠지. 규제와 감독의 실패와 구조의 실패에 이어, 진실 규명과 국민의 안전을 위한 대대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곧 ‘국가의 실패’가 아니겠니. 그 때문에 경제는 큰 비용을 치렀단다. ‘경제성장’을 매일같이 외쳐대는 국가가 이런 큰 비용에 무덤덤하다니 놀라울 뿐이구나. 자신이 초래한 이 엄청난 비용에 국가는 침묵하고, 그 진실과 비용을 낱낱이 밝히라고 네 가족과 시민들이 요구하면 ‘경제를 망친다’고 하는구나. 적반하장이 달리 있을까.

이게 끝이 아니란다. 며칠 전 너희에 대한 보상금이니 위로금이니 하는 보도가 막 나왔어. 진실을 규명하는 위원회를 제대로 만들자고 하는데, 저쪽에서는 수억원대의 보상금 얘길 하더군. 상식 이하의 얘기고 난데없었던 까닭에 난 정부가 농담하는 줄 알았단다. 이런 발표를 한 날이 만우절이었거든. 영국 공영방송이 몇 년 전에 펭귄이 날아서 따뜻한 나라에 도착했다고 보도한 희대의 만우절 사건을 기억하니.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단다. 하지만 여파가 컸단다. 말했잖니. 월급쟁이로 살아가기가 빠듯한 서민들은 ‘몇억’이라는 숫자에 잠시 심란해지기도 해. 너희나 네 가족들이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 일상이 우릴 그렇게 만든단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계산에는 비범한 재주가 있나보더라. 이 역시 ‘낡은 수법’이지.

만우절 농담 같던 보상금 이야기

보고가 길어졌구나. 너희의 첫 제삿날이라 술 한잔 올려두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단다. 이젠 그 술잔도 비워졌고, 너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손이 떨리고 눈앞도 흐려지는구나. 큰절 올린다. 너희는 차라리 세상을 버리라고 했다. 그래도 말이다. 너희 엄마·아빠를 다시 한번 보렴. 이 어마어마한 벽에 지지 않고 싸우고 있단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분이란다.

그러니 내년에는 우리를 찾아오겠니? 눈부신 하늘에 수백만의 꽃송이를 피워두면, 그 길로 친구들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면서 와줄 수 있겠니.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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