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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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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경제학자를 믿지 못하냐고?

경제학 탐탁지 않아 하던 마크 트웨인이 쓴 단편소설 ‘정치경제학’… 120년 지나도 경제학자들은 ‘공황’이라는 번개 막을 피뢰침을 발명하지 못했고
등록 2015-07-03 04:09 수정 2020-05-02 19:28
1931년 미국 대공황 시기 시카고의 한 식당 앞에서 무료로 주는 수프를 먹으려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실업자들의 모습. 위키피디아

1931년 미국 대공황 시기 시카고의 한 식당 앞에서 무료로 주는 수프를 먹으려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실업자들의 모습. 위키피디아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을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시킨 건국의 아버지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작성했으니, 그의 펜촉에서 흘러나온 잉크처럼 자유와 독립의 정신은 대륙의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 정치적 해방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어쩌면 식민지라는 어두운 일상보다 더 무서웠던 번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준 사람이 바로 프랭클린이다. 그는 피뢰침을 발명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프랭클린의 피뢰침은 건물과 땅에 굳건히 자리하며 인간의 가장 구체적 일상에 닿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종교적이었다. 피뢰침이 대중적으로 사용되자 종교인들이 발끈했다. 당시 신부와 목사들은 신이 불경하거나 큰 죄를 지은 이들을 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보내는 것이 번개라 믿었다. 따라서 피뢰침은 이런 ‘하느님의 역사’를 방해하고 거스르는 불경한 물건이었다. 심지어 보스턴의 한 신부는 매사추세츠에서 일어난 지진을 두고 프랭클린의 피뢰침에 하느님이 진노한 것이라 했다. 번개를 막으니 지진을 일으켰다는 주장이었다. 버트런드 러셀이 ‘지적 쓰레기’를 논하는 글에서 대표적인 예로 꼽은 사례다.

‘번개’ 막는다고? 참으로 불경하구나

또한 정치적이었다. 프랭클린의 피뢰침은 실상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사상 논쟁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피뢰침이 불경하지 않다고 믿었던 이들에게는 한 가지 첨예한 문제가 있었다. 프랭클린은 피뢰침의 끝이 뾰족해야 효과적이라 믿었으나, 일군의 영국 전문가들은 ‘두리뭉실한’ 피뢰침이 낫다고 했다. 결국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 끝날 문제였는데, 당시 영국의 왕 조지 3세가 이 논쟁에 끼어들었다. 자신의 신하들이 과학의 중심이고 따라서 그들의 견해가 곧 과학적 진실일진대, 듣도 보도 못한 아마추어 미국 과학자가 반기를 들고 나선 형국이었다.

왕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이 무모한 도전을 이해할 수 없었던 조지 3세는 급기야 배후를 의심하게 된다. 프랭클린의 피뢰침은 바로 ‘미국 해방투쟁’의 일환이라 의심하게 되었다. 수차례의 실험 결과를 통해 피뢰침의 끝은 날카로워야 함이 입증되고 영국 왕실의 과학자들도 순순히 인정하게 된 순간에도, 조지 3세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 뾰족한 피뢰침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있다고 믿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는 조지 3세의 불타는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프랑스의 왕은 뾰족한 피뢰침의 과학적 진실을 믿고 전폭 수용했고, 프랭클린을 칙사처럼 모셨다. 그 덕분에 미국은 식민지 해방투쟁에서 프랑스의 든든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미국과 영국 간의 평화협정도 프랑스에서 체결됐다. 결과적으로 조지 3세는 과학적으로 틀렸으나, 그의 정치적 감각은 옳았다.

프랭클린이 조국에 독립과 피뢰침을 남겨주고 세상을 떠난 지 50년 뒤에 마크 트웨인이 태어났다. 미국문학을 건설한, 말하자면 “미국문학의 아버지”다. 따뜻한 눈길로 을 썼으나, 세상의 나머지 모든 것을 조롱했다. 경제인과 경제학자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은행가에 대해서는 “해가 쨍쨍할 때 우산을 빌려주고서는 비가 내릴 때 우산을 거두어가는 인간”이라 했다. 경제학자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통계에 대해서는 더 가혹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으니, 첫째는 그냥 거짓말, 둘째는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마지막은 통계”라고 했다. 물론 트웨인은 영국 정치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한 말이라고 덧붙였지만, 호사가들은 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말인데도 혹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 ‘표절’일 것을 두려워해 생긴 해프닝인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심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트웨인은 당시 정치경제학이라 불리던 경제학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기어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을 썼다. 제목은 ‘정치경제학’인데, 여기에 프랭클린의 피뢰침이 등장한다. 트웨인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경제학자여, 혹시 피뢰침이 필요한가요?

어느 날 트웨인은 경제학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경제학이란 모든 훌륭한 정부의 기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현명한 자들이 그들의 천재성 같은 보물과 삶의 경험과 배움을 모두 동원하여 이 주제를 다루었다.” 현명함과 지혜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트웨인이 경제학에 대해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딱 두 문장만 쓰고 있을 뿐인데, 이미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런데, 둘째 문장에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문 밖에서 누군가 부른다. 불세출의 작가의 엄숙한 저술을 방해하는 행위이니,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인품마저 겸비한 작가인지라, 친절하게 방문자를 맞이한다. 그 낯선 양반이 그런다. 당신 집 지붕을 보아하니, 무슨 까닭인지 피뢰침이 없는데, 혹시 필요하지 않으시냐.

트웨인은 순간 당황한다. 잘나가는 작가이지만, 집안 살림은 전혀 모른다. 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존경받는 작가로서 이런 걸 인정하기가 싫다. 게다가 지금은 경제에 대해 서술하는 중이다. 천기누설은 안 된다. 그 마음이 앞선 나머지, 트웨인은 특유의 언변으로 대답한다. 잘 오셨수다. 그러지 않아도 피뢰침을 설치하려던 참이었소. 기왕에 하는 거, 나는 한 여섯 개나 여덟 개 정도 할까 하오. 공격은 최고의 방어라는 말은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과감한 선언과 행동은 자신의 무지를 감추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선제공격이 주효했는지, 피뢰침 수리공은 약간 당황한다. 이제껏 저렇게 많은 피뢰침을 가정집에 한꺼번에 설치해본 적이 없다. 딴에는 이 분야의 전문가인지라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저쪽에서 상당한 전문가인 것처럼 나오니 피뢰침 전문가도 헷갈린다. 게다가 천재적인 작가이고 경제에 대해 저술하는 분의 말씀 아닌가. 피뢰침 전문가는 자신이 없어졌고, 트웨인은 승리의 기쁨을 누린다. 빨리 저 두 번째 문장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때 피뢰침 사나이가 묻는다. “네, 그러면 피뢰침은 어떤 종류로 할까요?”

트웨인은 다시 잠시 당황한다. 재료, 크기, 모양이 죄다 다르다. 요모조모 따져보아야 할 일이었지만, 이미 전문가 행세를 시작한 마당에 물어보자니 모양새가 빠진다. 역시 선제공격밖에 없다. “아, 그런 거 다 잘 아는데, 아무래도 최고급 제품이 낫지 않소.” 이렇게 시크하고도 품위 있는 답을 뒤로하고 트웨인은 다시 책상에 앉는다. 세 번째 문장을 이어간다. “문명 대대로 뛰어난 자들 중 이렇게 위대한 학문인 경제학을 다루지 않은 자가 없거니와….” 그때 피뢰침 사나이가 다시 부른다. 짜증이 맥주 거품처럼 부글부글 올라오지만, 트웨인은 마음을 다독거린다.

귀찮으니 최대한 많이, 최대한 길게

벤저민 프랭클린이 발명한 피뢰침(왼쪽). 마크 트웨인은 단편소설 ‘정치경제학’을 써서 어리석은 경제학자를 조롱했다. 위키피디아

벤저민 프랭클린이 발명한 피뢰침(왼쪽). 마크 트웨인은 단편소설 ‘정치경제학’을 써서 어리석은 경제학자를 조롱했다. 위키피디아

사나이는 다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당연히 주인장과 의논해서 해법을 찾아야 했다. 사나이가 묻는다. “피뢰침 여섯 개를 설치하려니, 각이 잘 나오질 않아 배치가 어렵습니다. 어찌할까요?” 따지고 보면, 이런 복잡한 상황은 트웨인이 피뢰침을 양껏 설치하자고 해서 시작됐다. 사나이는 아방가르드 같은 주문을 한 주인장이 마땅히 답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었다. 역시 주인장은 거침없다. 그럼 여덟 개로 합시다. 사나이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피뢰침의 길이가 중요한데, 그건 어떻게 하나요?” 트웨인은 이제 질주 중이다. 제일 긴 걸로 하라고 답한다. 사나이의 질문도 같이 질주한다. “그러면 지붕만 보호할 건가요?” 주인장의 답은 당연히 “아니지”. 기왕에 시작한 것이니 부엌, 창고 이런 데도 쫙 다 설치하라고 한다. 이제 피뢰침 사나이는 전문성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으나, 그 대신 자신에게는 큰돈을 벌 기회가 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돈 벌자고 하는 일 아닌가. 이렇게 다독이며, 견적을 낸다. 그리하여 마침내 무려 900달러(1870년 당시)에 달하는 대규모 피뢰침 설치 사업이 시작된다. 4대강 사업의 씨앗은 이렇게도 오래전에 저 멀리서 뿌려졌다.

그 와중에도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치신 트웨인 선생께서는 경제에 대한 집필을 이어가신다. “위대한 공자 선생께서는 일찍이 경찰청장이 되느니 차라리 위대한 경제학자가 되겠다고 하셨다. 키케로는 경제학이란 무릇 인간의 마음을 몽땅 소모해버릴 만한 대단한 것이라고 했다.” 이 문장을 쓰고 나니 트웨인의 정신은 절정의 단계로 나아간다. 화룡점정의 문장이 남았다. “경제학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이 문장이 마무리될 무렵, 피뢰침의 대역사는 순조로이 끝났다. 역사상 진귀한 프로젝트에 구경꾼이 없을 수 없다. 피뢰침으로 촘촘히, 하지만 예술적이고 고급스럽게(트웨인은 키치한 걸 싫어하니까) 번개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는 집을 보러 동네 사람들이 구경 온다. 저렇게 몰려다니는 대중이 성가시고 이해 불가이지만, 성숙한 작가는 집필로 말할 뿐 투덜거리거나 저들을 내치지는 않으리라. 경제석학 트웨인은 이렇게 마음을 다져먹는다.

그날 밤, 정확히 피뢰침 공사가 완료된 지 사흘 만에 번개가 친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수십 개 피뢰침들 간의 일사불란한 공조를 통해 번개를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격파해나가는 장관이 곧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트웨인이 정작 본 것은 놀랍게도 원맨쇼였다. 피뢰침 하나의 영웅적 투쟁이었다. 나머지 피뢰침들은 머쓱하게 그 외로운 투쟁을 지켜볼 뿐이었다.

머쓱해진 트웨인은 심혈을 기울인 광고를 조그마하게 낸다. 피뢰침의 충격과 광고 문안 작업에 따른 피로로 인해, 그는 경제(학)에 관한 집필을 아쉽게도 끝내지 못한다. 그나마 남아 있는 힘을 모아 광고 문안을 작성한다. 그가 경제에 대해 이제껏 쓴 문장 중 가장 경제적이고 구체적이고 정확한 문장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어서 다소 장황했던 문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혹 피뢰침 필요한 분 계신가요. 제가 싸게 드립니다. 일부 손상됐지만, 그래도 쓸 만해요. 연락 주세요.”

“피뢰침 싸게 드립니다, 쓸 만해요”

트웨인이 이 소설을 쓴 때가 1870년이다. 정확히 3년 뒤에 세계자본주의는 처음으로 ‘공황’이라는 번개를 맞는다. 물론 그 이후로는 잊을 만하면 오는 불청객이다. 그 뒤 120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이 독특한 번개를 막는 피뢰침이 개발될 법도 한데, 아직 소식이 없다. 그 정확한 연유를 알 길 없으나, 트웨인의 잘못이 참으로 크다. 그가 저지른 ‘대참사’ 이후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파는 피뢰침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을 이렇게 차버리니, 인간을 벌하려 밤낮없이 ‘번개’가 치나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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