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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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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서 수첩을 추방하라

회의 잘하는 비결 ③
등록 2014-07-11 17:03 수정 2020-05-03 04:27

우리는 기록에 일가견이 있는 민족이다. 우리 조상은 단일 주제로는 세계 최장의 기록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등을 남겼다. 이와 같은 조상의 얼을 이어받은 우리는 오늘도 각종 회의에서 수첩에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회의에서 열심히 기록하는 이유는 좀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말은 들으면 금방 잊힐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65%가 시각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채널, 30%가 음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채널, 나머지 5%가 체감각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의 내용을 어딘가에 계속 기록하는 모습은 효과적인 회의를 위해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그런데 회의 내용을 개개인의 수첩이 아닌, 화이트보드나 플립차트에 모든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도록 기록하면, 회의를 좀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다. 개인의 수첩에 담긴 내용이 제각각이라면, 회의 진행자나 서기가 실시간 참석자들의 발언을 기록한 내용은 모두가 공유하는 기록물이 된다. 이런 공통의 기록물은 회의 논점이 흐트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중요한 촉진제가 된다.
신입사원의 엉뚱한 발언까지 포함해서 논의 내용을 발언자의 생생한 단어 그대로 기록한다면, 참석자들은 개인 기록을 멈추고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에 집중하며, 서로의 의견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발언 내용이 실시간으로 요약돼 정리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잘 전달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중요한 워크숍의 경우, 논의되는 내용을 그림이나 이미지로 생생하게 실시간 기록하는 전문 그래픽 퍼실리테이터들이 활동하기도 한다. 글로만 정리된 내용보다 구조화된 시각정보가 참석자들의 상상력과 통찰력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를 시작할 때도 회의 주제와 어젠다를 미리 준비해서 참석자들과 공유하고 회의장 전면에 게시해보라. 그러면 회의의 시간 관리도 가능할 뿐 아니라, 어젠다가 회의의 등대 역할을 하게 됨을 목격할 것이다. 또한 회의가 끝나자마자 회의 때 기록물을 사진 찍어 참가자들에게 보내준다면, 회의록을 정리하는 수고와 시간까지 줄여줄 수 있다.
자, 지금부터 우리도 을 작성했던 사관의 마음으로 회의의 시작과 끝을 기록해보자. 분명히 회의가 달라졌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수백 년 뒤 우리의 회의 기록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될지 누가 알겠는가?

채홍미 인피플컨설팅 대표· 저자

*‘일터 비밀노트’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수고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경제팀이 준비한 새로운 칼럼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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