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는 정치인들에겐 숙명과 같다. 내뱉는 말은 불분명하기 마련인데, 정치인의 언어는 그나마 남아 있는 명확함도 깔끔하게 제거한다. 해석이 불가피하니, 그들의 입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구설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 오해의 구설이 때로는 치명타가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인지도를 높여 정치적 자산이 되기도 한다. ‘능력 있는’ 정치인은 ‘오해를 잘 받는’ 사람이겠다.
하지만 오해가 정치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압도할 만한 통계로 ‘사실’을 보여주고, 현란한 수학적 모델로 ‘과학’을 구사하며, 그래도 혹 있을지 모를 오해에 대비해 수백 개의 주석을 다는 경제학자들에게도 오해는 멀지 않은 이웃이다. 니체가 그랬던가. “텍스트(원문)는 해석 속에서 마침내 사라진다.” 경제학적 텍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불행할수록 성장하는 국민소득사이먼 쿠즈네츠(1901~85)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벨라루스 태생으로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여느 저명한 경제학자처럼 유대인이었던 그는 국민소득계정을 개발한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같이 신문에서 보는 국민소득이니 국내총생산(GDP) 같은 개념이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으니, 명실공히 20세기 현대경제학의 기초를 만든 당사자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의 업적에 대한 해석과 오해 때문에 괴로워한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이런 세기적인 성취에 우연이 없을 수 없다.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시작되자, 미국 정부는 전례 없는 정책들을 부랴부랴 도입하려 했다. 그런데 사태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은 눈으로 확인되는 일이지만, 대공황으로 어느 정도 소득이 감소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대공황의 경제적 손실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정부가 어느 정도 돈을 써야 할지 판단하기 난망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 상무성이 당시 통계학자로 명성을 날리던 쿠즈네츠에게 체계적인 통계를 만들어달라고 연구용역을 맡겼다. 그는 국민소득계정을 제시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쿠즈네츠 방식을 이용해 경제 회복 상태를 분석하고 정책 결정을 내렸다. 또한 미국이 이를 ‘모범사례’로 널리 장려하면서 전세계적 표준이 된다. 급기야 GDP 증가율은 경제성장의 유일한 과제로 승격됐고, 경제정책의 수단이던 GDP는 경제정책의 목표로 ‘신분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쿠즈네츠의 국민계정에서 소득이란 화폐소득만을 의미한다. 홀로 열심히 농사를 지어 풍년을 이루었다고 치자. 가족들이 지난해보다 더 여유 있게 나누어 먹게 됐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긴 하지만, 사고파는 화폐 관계가 없는 까닭에 국민소득을 늘리는 일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전업주부가 가사노동을 한 덕분에 모든 가족의 삶이 윤택해졌더라도, 냉정한 국민소득 기준으로 보자면 기여분은 없다. 하지만 주부가 자녀 학원비 30만원을 대기 위해 식당에서 일하며 100만원을 벌고, 대신 가사도우미를 70만원에 쓰게 되면, 국민소득은 170만원 늘어나게 된다. 엄마의 관심이 덜해져 아이가 아프면서 병원 찾는 일이 잦아지면, 병원의 화폐수입이 늘어 그만큼 국민소득은 증가한다. 아이는 아프고 집안 살림은 뭔가 더 힘들어진 듯하지만, 경제는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경제정책 목표가 시장 거래를 포함한 모든 경제행위를 통해 국민의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경제학이 이를 위한 방편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GDP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적인 개념이다. 이런 협소한 개념에만 기초한 경제정책은 염려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사실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특히 비판적이었는데, 1960년대 말에 그가 남긴 쓴소리는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쿠즈네츠의 국민소득계정은 모든 것을 다 측정한다. 삶을 가치롭게 만드는 것은 빼고 말이야.”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훈수하지만 쿠즈네츠는 억울하다. 상무성 연구용역 결과를 제출할 때 그는 이런 오해가 생길 것을 이미 알았다. 그래서 미국 의회에 국민소득계정을 소개할 때, “국민소득 추계로부터 한 나라의 후생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고 누차 강조했다. 국민소득계정이란 시장 거래 또는 화폐 거래에만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국민소득을 경제와 등치시키지 말라는 얘기다. 그만큼 정책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경제성장에는 양적 측면과 질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목표를 수립할 때 어떤 성장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쿠즈네츠는 40년 이상 줄기차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늘 ‘답 없는 메아리’였다. 국민소득계정에 대한 원문 텍스트는 해석을 이기지 못했다.
쿠즈네츠에 대한 오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경제학자나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일반적으로 소득불평등을 심각한 경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분배 문제에 개입하면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가 괜스레 ‘연민에 젖어’ 개입해봐야, 개입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생긴다고 믿었다. 이런 경제학적 믿음이 생겨난 연유는 길고도 복잡하다. 그중 두 가지를 꼽는다면, 첫째는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이다. 시장이 유일한 최선이라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면, 그 결과로서의 소득분배도 최선이다. 더러 불공평해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시장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경제성장 초기에는 불평등 증가가 불가피하지만,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불평등이 자연스레 감소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의 근거는 쿠즈네츠의 실증연구에 대한 ‘해석’이다. ‘쿠즈네츠 가설’이라고도 하고, 더러는 아예 ‘쿠즈네츠 법칙’이라고 한다. 그가 한 일은 국민소득계정처럼 소박한 산술작업이었다. 쿠즈네츠는 타고난 통계적 성실성을 다시 한번 십분 발휘해 미국과 독일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국민소득 분배 경향을 분석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경험적 규칙성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산업화 단계에는 소득불평등이 증가하다가 경제가 성장하고 완숙한 경지에 접어들면서 소득불평등도는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의 실증연구는 다시 한번 본인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경험적 규칙성은 곧바로 ‘해석’되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결국 소득불평등이 ‘자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득분배 문제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는 것. 게다가 불평등 증가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도 덧붙여졌다. 경제성장 초기에는 성장을 위한 투자 자원이 필요한데, 이러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저축이 있어야 한다. 만일 소득이 골고루 분배돼 모두 소비돼버린다면, 저축 자원이 부족할 것이다. 따라서 고소득층과 기업에 돈이 더 몰리게 된다면, 그 돈은 더러 소비에 사용되기도 하겠지만 저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득이 좀더 효율적으로 저축과 투자로 연결되려면 소득불평등도가 높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불평등이 경쟁을 촉진한다’는 논리까지 보태졌다. 소득불평등도가 높으면 경쟁의 승자가 누리는 상대적 몫이 늘어나고, 결국은 경쟁이 촉진된다. 예컨대 한 노동자는 8시간 일하고 다른 노동자는 10시간씩 일하는데도 모두 비슷한 소득을 올린다면, 굳이 10시간씩 일할 이유가 없다. 모두 8시간씩만 일하게 되고, 그만큼 생산도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다.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를 기억하라는 살벌한 경고도 빠지지 않는다. 불평등은 경쟁과 생산을 촉진하는 자극제다!
‘저소득층의 정치적 지위’ 중요시이렇게 불평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열정적인 설명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정작 불평등이 어떻게 줄어드는지에 대한 설명에는 인색하다. 그건 쿠즈네츠에게 물어보라는 식이다. 쿠즈네츠의 실증연구가 ‘법칙’으로 승격되는 방식이다. 일단 법칙이 되면 강력한 무기가 된다. 수많은 경제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은 자국 정책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도 “성장에 집중하라. 불평등을 줄이려고 하는 것은 정치적 쇼 내지는 대중추수주의(Populism)에 불과하다”며 법칙의 이름으로 훈수를 둬왔다. 법칙 앞에서 개발도상국들은 겁먹은 아이처럼 오랫동안 소득분배 문제에 침묵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했던 것처럼, 쿠즈네츠는 쿠즈네츠의 법칙을 부정한다. 실제 텍스트인 그의 1955년 논문은 경제성장과 함께 불평등도가 줄어들 거라는 환상을 갖지 말라고 경고했다. 불평등을 줄이는 힘은 시장 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쿠즈네츠는 불평등 해소가 기본적으로 정치·사회적 힘에 의해 해결되는 문제로 보았다. 그가 특히 중시한 요인은 중·저소득층의 정치적 지위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불평등이 확대되면, 중·저소득층들이 자신의 상대적 소득 지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사회적으로 조직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사는 게 힘들어지거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 단체가 팔 걷고 나선다. 개인적 반발도 심해지면서 사회 전체적인 불안 정도가 높아진다. 이런 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은 누진세 도입 또는 강화, 소득 이전 등을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을 도입하기 위한 각종 입법 조치를 취하게 된다. 시민의 저항과 조직, 정치의 변화, 그리고 정책의 변화라는 삼박자 변화 때문에 소득불평등도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결국 쿠즈네츠에게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중·저소득층이 정치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어떤 식으로 조직하느냐 하는 점이다. 불평등 감소는 자연적 법칙이 아니라 조건부다. 특히 중·저소득층의 정치적 참여가 제약돼 있는 후발개발도상국에서는 유럽과는 다른 패턴이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정치·사회적 참여 없이는 불평등 해소도 없다는 얘기겠다. 그래서 정작 ‘쿠즈네츠 법칙’이 나와 있다는 논문은, 협애한 경제적 접근에서 벗어난 사회·경제학적 접근으로 옮겨갈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맨 마지막 문단에 나오는 이런 주장은 지금 읽으면 마치 절규처럼 들린다.
쿠즈네츠가 알지 못한 것오늘날 ‘쿠즈네츠 법칙’은 오류로 판명 났다. 선진국들의 경우 1970년대 전후까지 하락 추세 내지 안정 추세를 보이던 소득불평등 정도가 1980년대를 기점으로 상승해왔다. 쿠즈네츠 법칙은 틀렸으되 쿠즈네츠는 옳았다. 최근 불평등의 증가는 결국 사회·정치적 변화에 동반한 정책 변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소득분배 개선을 요구하는 사회세력의 힘도 약해졌고, 중·저소득층의 정치적 발언권도 위축되었다. 물론 쿠즈네츠가 알지 못한 것이 있다. 그는 저소득층의 사회·정치적 힘에는 주목했지만, 불평등도 증가와 함께 소득 최상층부의 소득몫이 커지면서 정치권력도 같이 커진다는 점은 깨닫지 못했다. 많이 가진 소수가 정치를 장악하게 되면, 정치인들이 저소득층의 목소리에 민감하지 않게 된다. 쿠즈네츠가 적시한 중·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전환은, 바로 이러한 불평등의 동학 때문에 오히려 봉쇄될 수 있다. 현재 경제위기의 원인이 상당 부분 불평등 증가 때문인데도, 정책 변화는 더디고 불평등은 여전히 증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사회·경제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토마 피케티 같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두 경제학자는 쿠즈네츠에 비판적이다. 그들이 본 것도 ‘해석된’ 쿠즈네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제학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텍스트는 사라지고 해석만 남아 있는’ 경제학 교과서일지 모른다. 그곳에서 텍스트로 난 길은 좁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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