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출간된 책 에는 안드로이드와 관련해 흥미로운 얘기가 등장한다. 책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안드로이드를 무척 싫어했다. 그는 구글이 주도한 오픈소스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가 애플 iOS를 베꼈다고 생각했다. 잡스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안드로이드를 내놓은 구글더러 ‘모방꾼’이라 비난했고, “구글과 핵전쟁을 벌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400억달러에 이르는 애플 현금을 모조리 쓰겠다”는 엄포도 서슴잖았다. 그 뒤 애플은 안드로이드를 얹은 삼성전자와 기나긴 특허 전쟁을 벌였고, 구글이 쥐고 있던 e지도 서비스에 직접 뛰어들었다.
애플과 구글, 정보기술(IT) 업계 두 거인의 싸움이 ‘모바일’에서 ‘모빌리티’로 갈아타려 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라는 휴대기기를 두고 벌인 전쟁이 이젠 자동차라는 이동수단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모바일 OS는 서버나 데스크톱처럼 한 장소에 세워두고 쓰는 컴퓨팅 장비만 빼면, 어디든 응용할 수 있는 ‘두뇌’ 아닌가. 요즘 자동차는 그 자체로 달리는 디지털 기기다. 시동을 걸고, 달리고, 주행 중 각종 정보를 운전자와 주고받고, 차량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마침내 멈춰서는 그 순간까지 일련의 과정은 IT와 긴밀히 결합돼 있다. 정보(인포메이션)에 차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각종 재미 요소(엔터테인먼트)까지 곁들이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서 자동차가 완성되는 것이다.
1월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소비자가전박람회(CES) 2014’가 열린다. 여기서 구글이 ‘안드로이드카’의 밑그림을 선보인단다. 미국 경제지 이 전한 소식이 흥미롭다. 구글은 독일 자동차 업체 아우디와 손잡고 차 안에 안드로이드를 심을 심산이다. 우리가 안드로이드폰을 쓰듯, 차 안에서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기능들을 쓰도록 돕겠다는 게 구글의 밑그림이다. 그 첫 시험무대가 아우디 자동차가 되는 셈이다.
이런 구글을 보면 자연스레 애플이 떠오른다. 애플은 지난해 6월 ‘세계개발자콘퍼런스’(WWDC)에서 ‘차량용 iOS’(iOS in the Car)를 공개했다. 차량용 iOS는 자동차로 갈아타려는 iOS의 욕심을 보여준다. 우선은 운전 중 필요한 iOS의 일부 기능을 앞좌석 화면에 뿌려주는 방식으로 나올 모양이다. 애플 ‘시리’도 포함된다. 운전 중 음성 명령으로 지도를 띄워 길을 찾거나 음악을 듣고, 문자메시지나 전자우편을 시리가 읽어주는 식이다. 자동차는 날씨나 교통 정보도 알아서 척척 알려줄 것이다.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든 운전자의 특성을 파고든 서비스다.
WWDC 당시 애플은 차량용 iOS 기술을 2014년부터 본격 적용할 12개 자동차 브랜드를 함께 소개했다. BMW, 아우디, 크라이슬러, GM, 벤츠, 혼다, 재규어, 닛산, 페라리 등 쟁쟁한 브랜드가 애플 손을 잡았다. 여기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포함돼 있다.
애플이 자동차 시장에서도 자신감을 보이는 까닭은 명확하다. 애플은 iOS로 모바일 시장에서 강력한 통제력을 보이며 성장해왔다. 안드로이드처럼 제조업체마다 판올림(버전업) 일정이나 세부 기능이 다르지만, iOS는 애플의 통제력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런 ‘폐쇄의 힘’은 자동차에서도 제힘을 발휘한다. 애플이 기술 표준을 주도하는 만큼 제조업체도 믿고 따르는 것이다.
혼다는 2014년형 ‘시빅’ 모델에 아이폰 화면을 뿌려주는 ‘미러링’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iOS 화면을 자동차 계기판에 뿌려주고, 여기서 각종 주행 정보부터 음성통화와 인터넷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식이다. 혼다는 애플 ‘시리’를 자동차에서 활용하는 ‘아이즈 프리’ 기술도 도입했다. ‘핸즈프리’를 쓰듯 운전자가 시선을 분산하지 않고 음성 명령으로 차량을 조작하고 정보를 주고받게 하겠다는 뜻이다.
구글과 애플은 아직까지 말을 아끼고 있다. 어떤 차에 어떤 서비스가 구현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엔비디아 같은 그래픽 칩셋 제조업체도 이들과 협력하고 있다. 차량 내 화면에 3차원(3D) 지도나 각종 정보를 시각화해 뿌려주려면 그래픽프로세서(GPU)가 필수 부품이기 때문이다.
스마트카 시장은 비포장도로다. 애플은 시동을 걸었고, 구글은 가속페달을 밟으려 한다. 자동차 제조업체로선 선택지가 명확하다. 애플이냐, 구글이냐. 스마트폰에서 불붙은 구글-애플 전쟁은 올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2차전을 맞이할 전망이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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