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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처럼 대단한 사람’

경북 봉화 주민들과 농산물 직거래 봉봉협동조합 운영하는 정봉주 전 의원… “감옥 1년 갔다오면서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
등록 2013-11-07 15:28 수정 2020-05-03 04:27
정봉주 전 의원. 탁기형 기자

정봉주 전 의원. 탁기형 기자

지난번 서수민 PD와의 인터뷰 뒤, 한동안 ‘전성기’라는 단어에 사로잡히다. 인터뷰 기사를 본 서수민은 자기가 무슨 전성기냐고 민망해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많은 힘이 됐다고 전했다. 내가 그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미화를 한 게 없는지 다시 읽었다. 그렇지는 않은 듯. 만나기 전부터 인터뷰를 정리하기까지, 그의 전성기적 외형에 현혹되지 않고 내면에 있는 그의 결만 보기 위해 바늘처럼 집중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에게서 힘을 얻는다. 살면서 엄마성 있는 존재가 필요한 건 그것이 ‘자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반년 만에 경북서 두 번째 큰 협동조합으로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정봉주 전 의원은 특이한 존재다. 자가발전소가 있는 사람처럼 스스로 ‘자기’를 끄집어내 다독이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와 짝지어 연상되는 깔때기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지난해 그는 BBK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죄’로 꼬박 1년을 감옥에 있었다.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 여러 의미에서 감옥에서의 시간은 정봉주에게 삶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감옥에 다녀왔거나 임사 체험을 했다고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진 않는다. 삶의 결정적 경험처럼 보이는 일도 어떤 이에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정봉주는 대학 시절 시국사범으로 1년6개월간 감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의 감옥 생활은 그에게 의미가 전혀 다른 듯하다. 자기를 대면하는 일에서 전혀 다른 트랙에 들어섰다고 해야 하나. 자기를 바라보는 눈이 깊고 풍성해진 느낌이다.

지난 2월 그는 경북 봉화로 내려갔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봉봉협동조합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요즘 그의 애정과 에너지는 대부분 거기 실려 있는 듯했다.

-얼마 전 봉봉 절임배추를 판매한다는 떼문자가 왔더군요. 봉봉협동조합 홍보대사시죠.

=네. 지금 일주일에 2~3일은 봉화에 있고 2~3일은 서울에 있고 2~3일은 전라도에 가 있습니다. 전라도에는 봉화에서 생산한 재료로 김치를 만드는 공장이 있고, 서울에는 소비자 조합원을 모으기 위한 사무실이 있거든요.

-정착 과정이 쉽진 않았겠어요.

=그랬죠. 농민들이 도시에서 자기들을 도와주겠다고 오는 사람들을 굉장히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가 1~2년을 들쑤셔놓고 가기 때문에 그래요. 하다가 잘 안 되면 떠나고 잘돼도 뒤통수치고 떠나고. 불신할 수밖에요. 제가 갔을 때도 그랬거든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저는 부정적이고 안티인 사람들과 섞여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거든요. 저녁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고 가시적으로 요구한 성과도 달성했죠. 언론 인터뷰도 하고 ‘미권스’(정봉주 팬클럽 ‘정봉주와 미래권력들’) 가족들이 도와줘서 냉동고에 저장돼 있던 사과 1천 상자를 팔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떠날까봐 오히려 걱정하죠.

그는 봉봉협동조합이 어떻게 만든 지 5∼6개월 만에 대구·경북 일대에서 두 번째로 큰 협동조합이 되었는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농촌경제 살려보겠다는 생활정치”-정봉주라는 브랜드 파워의 영향도 있나요.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제가 그곳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했어요. 교통사고로 본인이 좀 억울하게 된 마을 주민이 계셨어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대구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를 만나서 부탁했어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 결론은 안 났지만, 시골분들이 재판를 받으러 가면 늘 검사한테 야단맞고 판사한테 야단맞고 이런 게 일상화돼 있어서 법정에 가는 게 무섭고 그렇죠. 근데 이번엔 판사가 보험회사를 야단치고 변호사도 자기들한테 깍듯하게 대하고 판사도 따뜻하고 그런 경험을 한 거죠.

-와우, 그분들에겐 대단히 치유적인 경험이었겠네요.

=이번에 제가 벌금형 재판을 받을 때 그분들이 탄원서도 넣어주고 그랬어요.

-그렇게 만든 협동조합이니까 꼭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시겠어요.

=그렇죠. 자다가도 꿈과 생시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꿈에서 계속 봉봉협동조합 활동을 해요. 오늘도 새벽 3시10분에 일어나서 전자우편 쓰고 전단지 작업하고 문자 보낼 작업하고 그러고 아침 7시10분에 다시 잤어요.

연결해서, 뜬금없이 내가 물었다.

-본인은 정치인이세요.

=정치인이죠. 철저하게 정치인이죠.

-지금 봉봉협동조합에 올인하는 것과 정치인 정봉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큰 의미의 정치죠. 생활정치를 하는 거예요. 진보는 어느 측면에서 가장 무능하냐면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법을 제시 못하잖아요. 봉봉협동조합은 도시와 농촌이 교감하면서 가장 살리기 힘든 농촌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운동이니까 정치라고 보는 거죠.

-봉봉협동조합은 제가 보기엔 정치적 행위라기보다 정봉주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처럼 느껴지는데 어떤가요.

=제 인생의 전반전은 홍성 감옥에 가면서 끝났고 이제 후반전에 들어섰다고 생각해요. 인생 전반전에 축적된 경험과 기술 등이 총화로 나타난 게 봉봉협동조합입니다. 봉봉협동조합은 제 인맥과 경험, 이런 모든 것을 쏟아부은 거예요. 예를 들어 오늘 인터뷰는 제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사실은 봉봉협동조합에도 큰 도움이 되거든요. 제가 살면서 아마 가장 잘한 선택, 최상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어떤 정치전략적 고려에 의해 봉화를 선택했든 봉봉협동조합에 대한 그의 신념과 애정을 무조건 지지하고 싶어졌다.

“1초도 억울한 마음 없었다” -본인의 삶을 홍성 감옥 생활을 기점으로 전·후반으로 나누셨어요. 그 정도로 중요한 계기인가요.

=그럼요. 굉장히 중요하죠. 감옥 1년, 그 불가마 속을 갔다오면서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된 거죠.

-어떤 점이 그런가요.

1년 365일 저만 생각했어요. 저만 생각했다는 게 어떻게 영광된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게 아니고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이었어요. 150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마다 울었어요. 가족이 보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법적으로 하자가 없어도 제 양심에 비춰 잘못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요. 어저께 잘못한 거, 그저께 잘못한 거, 한 달 전에 잘못한 거, 1년 전에 잘못한 거. 이게 어디까지 올라가냐 하면 5살 때 잘못한 것까지 기억이 나면서 멈춰요. 그게 150일 걸린 거죠.

직업적 경험칙으로 그의 말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나는 금방 알아들었다. 내면의 자기와 처음 조우하는 이들은 몸에 물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고 할 만큼 하염없이 운다. 울고 또 운다.

-억울하거나 분하거나 그런 마음은 없었나요.

=1초도 억울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나도 없었어요. 분노도 없고. 저는 들어가서 이명박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 전의 나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출소하는 날에도 나 자신에게 밖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편지를 썼어요. 교만할 때, 오만할 때 그리고 인생이 네 마음대로 이뤄진다고 생각할 때 이 편지를 들여다보고 홍성을 잊지 마라, 그렇게요.

-딴 사람들과 많이 다르네요. 억울하게 감옥에 간 사람들은 어금니 꽉 깨물고 그러다가 이빨부터 나간다고 하던데.

=저는 억울하지 않던데요. 낙관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이게 나중에 재심에서 통과되면 보상금도 받을 거 아녜요? 돈 벌고 있다고 생각했지. (웃음)

-삶의 변곡점이라 할 만한 경험인데 주위 사람들은 뭐라고 하나요.

=내공이 깊어졌다고도 하고, 마음의 분노가 없어진 거 같다는 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옛날에 그렇게 잘난 척하고 재수 없는 측면, 뺀질뺀질한 측면이 많이 없어진 것 같네’라고 평가하기도 하고요.

-아내나 아이들 반응은요.

=아내와 둘이 자주 술을 마시는데, 아내가 술을 마시다가 제 얼굴을 보면서 ‘없어지면, 음, 죽든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사람이다’ 그럽니다. 그 전엔 이런 얘기 안 했거든요.

-어떤 점 때문에 그렇다고 느끼는 것 같으세요.

=급한 게 없어진 것 같아요. 조금 여유로워지고,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그 의미를 좀 깨달은 것 같아요. 그리고 당장 10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그게 어찌 보면 무척 고마워요. 빨리 복권돼서 국회의원에 나가고, 또 뭐하고 이러면 무척 초조해지거든요.

“하기 싫어할 때 하는 게 경쟁력”

말의 결이 선방을 막 나온 수행자의 눈빛처럼 맑고 편안해 보여서 가만히 귀기울였다. 인터뷰 사진을 찍던 사진기자가 중간에 귀띔했다. 오래전부터 정치인 정봉주를 찍은 적이 많은데 오늘 앵글에 들어온 그의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고 했다. 맑고 편안해 보인다고. 그렇구나.

-감옥에서 맨손 헬스를 통해 50대에 식스팩을 만들었다고 해서 찬탄과 질시가 넘쳤났지요. 인간의 의지를 무척 중시하시죠.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는 팔굽혀펴기를 200개 했어요. 그런데 나올 때는 하루에 1천 개씩 했어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적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한계를 극복한 거죠.

-어떤 환경에 있어도 내가 환경을 바꿀 수 있고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네.

-조금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지 않나요.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공부를 아무리 해도 1등 못하는 사람이 있고 하루 15시간을 일해도 부자는커녕 먹고살기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감옥에서도 나처럼 열심히 하면 어떤 한계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그건 네가 나약해서 그런 거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 잣대로 사람을 보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건 알아요. 인간의 의지를 우선으로 볼 거냐, 타고난 운명 결정론으로 볼 거냐 하는 문제에 대해 늘 갈등합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강한 의지를 중시하는 뇌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거 같아요. 후천적으로도 그걸 버리지 않고 더 개발하고 발전시켰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번 작심삼일이 되고 마는 운동 결심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박약을 탓하곤 했는데 식스팩을 가진 또래 사내의 성찰적 발언에 안도감이 생겨 마음 놓고 더 질문했다.

-일상에서의 한계상황 극복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더군요.

=선천적인 게 많이 있겠지만 저는 삶은 의지를 가지고 훈련하면 많이 바뀐다고 보는 입장이라서 한계를 설정해놓고 그것을 깨는 훈련을 해라 그러거든요. 한계라는 게 실은 내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습관을 깨보는 거죠. 이 훈련을 계속 했어요. 그러니까 언젠가부터 한계가 오면 즐겁더라고요. 이건 깨야 될 거니까.

-지치진 않으세요.

=지치는 건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놀러와 밤늦게 끝나면 술 취한 상태에서 설거지하는 거 굉장히 싫잖아요. 그 싫은 상황에서 저는 설거지를 싹 다해놓고 자요. 누구든 하기 싫어할 때 하는 게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집사람이 정말 행복할 거 아녜요? 그게 얼마나 좋아요. 힘든 상황에서는 누구나 다 힘들다. 그렇지만 여기서 1m만 더 나가면 나의 경쟁력이 된다. 그렇게 쉬운 경쟁력을 왜 포기하지?

삶의 변곡점을 의미 있게 통과한 이

폭력적인 처세술 강사와 에너지 넘치는 낙관론자의 얘기를 동시에 듣는 느낌.

-미권스라는 어마무시한 팬클럽도 있고요, 정봉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힘을 얻는다는 사람도 그만큼 많고요. 본인의 어떤 면 때문에 그런 거 같으세요.

=제 에너지인 것 같아요, 에너지. 이게 긍정적인 힘보다는 조금 구체적인 게 늘 멈추지 않는 자전거 같거든요. 계속 달리는 에너지에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거 아니냐 생각하죠. 봉화에서도 ‘조용한 마을을 깨우는 에너지가 온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본인도 그런 평가가 좋으세요.

좋죠. 예전에는 잘 몰랐죠. 그냥 웃기고 재미있는 얘기를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에너지란 어찌 보면 신념 덩어리거든요. ‘너 잘될 거다. 너 잘될 건데 왜 그렇게 어려워하냐?’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는 거죠. 그러니까 에너지의 원천은 신념, 신념, 신념이 묶인 거죠.

에너자이너의 흥미로운 심리적 고백.
정봉주는 출소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식스팩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식스팩의 비밀은 이렇다. ‘식스팩은 사실 뱃살 아래 있는 복근이다. 누구나 복근이 있다. 복근 위를 덮는 뱃살을 없애고 근육을 조금 키우면 식스팩이 나오는 것이다.’ 식스팩을 만든다 하지 않고 안에 있는 게 나온다는 개념이 무척 치유적이다. 어느 천재적인 조각가는 저렇게 아름다운 조각품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다만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서 돌 안에 있던 본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답했다. 치유 영역에서도 그 말은 진리에 가깝다.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다. 자기 안에 치유적 요소가 담겨 있다. 밖을 기웃거릴 게 아니라 내 안의 그걸 끄집어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봉주의 식스팩 비밀이나 조각가의 예술관, 치유의 원리는 한통속이다. 정봉주의 유쾌한 에너지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되고 박수받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얼마 전 정봉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당신도 나처럼 대단한 사람이다.’ 여러분도 대단한 사람이다, 가 아니다. ‘나처럼’ 대단한 사람이란다. 내가 아는 한 정봉주를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말이다. 삶의 변곡점을 의미 있게 통과한 이가 홀가분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툭 던질 수 있는 말이다. 그 말을 할 때 이 시가 생각났다면 그는 덧붙였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정봉주도 그리고 우리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녹취 강선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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