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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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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민영화는 ‘정치적 피난처’


선진화는 포장일 뿐 실제는 재정적자 메우기용…
미 전력산업 실패 보고도 ‘작은 정부’만 되뇌이는 당국자들
등록 2010-01-06 14:38 수정 2020-05-03 04:25
철도노조 파업 7일째인 2009년 12월3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철도노조 서울지역 제3차 총파업 승리 결의 대회’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철도노조 파업 7일째인 2009년 12월3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철도노조 서울지역 제3차 총파업 승리 결의 대회’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국영기업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민간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가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의 차이점은 뭘까? 자유시장 신봉자들이 추종하는 밀턴 프리드먼에 따르면, GM은 정부가 제공하지 않는 ‘봉사’(저렴한 가격 등)를 제공해야만 당신에게 차를 팔 수 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당신은 포드나 도요타 등 다른 경쟁업체의 자동차를 살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기업과 달리 GM은 당신을 착취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자유시장의 기적적인 힘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민간기업은 시장과 소비자의 시험을 끊임없이 받기 때문에 가장 낮은 비용으로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상품을 생산하게 된다고 믿는다. 시장에서의 ‘경쟁적 열정’이 공기업의 관료적 태만을 잠재운다는 것이다.

이른바 ‘작은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내건 핵심 국정철학이다. 세밑에 이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은 포기했다”고 밝혔지만, 작은 정부로 가는 길에서 공기업 민영화는 강도 높게 추진될 예정이다. 민영화를 ‘공공부문 선진화’란 이름으로 살짝 바꿨을 뿐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대대적인 인력 감축과 자산 매각을 밀어붙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화되면서 2010년에는 공기업 선진화가 한 해를 관통하는 사업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 철도 파업은 이를 둘러싼 갈등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305개 공공기관에서 민영화·통폐합·기능 재조정이 시작되고 129개 공공기관에서 전체의 12.6%에 이르는 2만2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전력 민영화, 영국의 철도 민영화 사례가 보여주듯 “공기업을 시장 경쟁에 내맡기면 효율이 높아질 것”이란 약속은 종종 ‘부도난 어음’이 되고 말았다. 1999년 캘리포니아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시장이론은 공급이 부족하면 전력 가격이 치솟아 전력회사들이 투자 유인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시장에서 전력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게 된다고 가르쳐왔다. ‘마법의 자유시장’은 민영화하면 풍부하고 값싼 전력을 공급하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규제가 풀린 이후 민간 전력회사들은 투자를 많이 할수록 이익은 곤두박질치는 반면, 공급을 줄이면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시장에 충분한 전력을 내놓지 않는 식의 작은 음모만 꾸미면 간단히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이런 사업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민간 자본이 어디 있겠는가. 캘리포니아 전력회사들은 일부러 기술적인 문제를 일으켜 발전기 가동을 정지시킴으로써 전력 가격을 끌어올렸다. 사실 시장경제에서 끊임없이 이윤을 축적하는 기업은 생산 측면의 ‘결핍’, 즉 공급을 제한해야만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을 시장에 파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막대한 재정지출과 ‘부자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10년 400조원을 돌파하고 2013년 5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올해 산업은행·기업은행·인천국제공항 등 21개 공공기관의 지분을 매각하면 18조8천억원을 거둬들여 적자를 덜 수 있게 된다. 폴 크루그먼은 에서 “(세금 인하를 한 국가들에서) 민영화는 정치적 피난처 마련과 무관하지 않다. 재정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적자를 줄이는 조처를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민영화 카드를 사용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본래 공기업 선진화는 효율을 높이고 부실을 없애자는 것인데, 산업은행과 인천국제공항 등은 막대한 수익을 내는 알짜 공기업이다. 사실 민간기업 가운데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공기업을 살 자본이 어디 있을까. 따라서 돈이 되지 않는 다른 공기업들까지 팔려면 더욱 싸게 시장에 내놓아야 할 것이고, 저가 입찰로 사업을 따낸 민간업자들은 캘리포니아 전력회사들처럼 가격을 올릴 것이 뻔하다. 특히 알짜 공기업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정치 헌금이 거래되는 일도 흔하다. 기업마다 (법인이 아닌) 임원 개인 명의를 활용해 정치 후원금을 바치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에서 “만약 고양이가 ‘멍멍’ 하고 짖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야옹야옹’ 하고 우는 것이 고양이의 생래적 본질인 것처럼, 오늘날 공공기관의 부정적 효과는 그것이 공공기관이라는 본질적인 체질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양이가 멍멍 짖고, 물이 훨훨 불타는 것을 요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그리고 규제·개입)란 시스템은 본질적 결함을 안고 있어서 어떤 이유에서든 축소·폐지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시장주의 이론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에 이른 지금,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불완전한 시장이라도 불완전한 정부보다 낫다”는 프리드먼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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