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자유시장과 제도주의의 사투

모든 경제정책의 논란엔 두 조류의 근본적인 대립이 깔려있어
등록 2009-09-04 19:05 수정 2020-05-03 04:25

“빵을 사는 사람은 그 빵을 만드는 원료인 밀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재배되었는지 공화주의자에 의해 재배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흑인에 의해 재배되었는지 백인에 의해 재배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는 시장이란 비인격체가 경제적 행위와 정치적 행위를 어떻게 분리시키는지, 또 사람들이 경제행위에서 생산성과는 무관한 차별대우로부터 어떻게 보호되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지난 7월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여야가 충돌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시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지난 7월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여야가 충돌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20세기 자유시장주의의 이론적 뿌리인 밀턴 프리드먼은 에서 시장원리가 가진 한 측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장을) 개혁하고 싶어하는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오는 내부적 위협이 사실은 자유를 억압하는 적’이라는 경구가 이 책의 메시지다. 칼 포퍼가 에서 설파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경제사상사 측면에서 볼 때 애덤 스미스의 (1776) 이래 사람들의 경제행위를 설명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 조류가 대립해왔다. 시장근본주의라는 확고한 믿음 위에서 스미스적 자유시장론을 옹호하는 다수파와 그 반대편에서 자유시장에 대한 적대적·비판적 관점을 따르는 여러 소수 흐름들(제도주의, 케인스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이 오랜 사상적 고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랜 싸움은 어디에서든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제행위와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논란들도 잘 들여다보면 시장과 제도를 둘러싼 근본 대립이 항상 밑바탕에 깔려 있다.

시장도 하나의 사회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힘’은 자본주의 경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보편적으로 지배하는 원리로 작용하는, 특수한 제도다. 방송산업에 시장원리와 완전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보자. 물론 미디어법을 둘러싼 논란은 특정 정파에 의한 방송 장악 의도라는 점에서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전개된 측면이 있다. 이를 배제하고 볼 때, 순수하게 경제적인 면에서 방송시장에 경쟁이 도입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쪽은 “방송사 간 경쟁이 방송 품질을 높일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정부의 개입과 소유 규제가 오히려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협하고 방송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주장이다. 과연 경쟁만 충분히 보장된다면 가장 효율적인 방송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방송을 누구한테 배분하면 희소한 전파 자원을 최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시장주의자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가장 많은 비용(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자본)한테 배분하면 된다. 돈을 더 많이 내겠다는 건 그만큼 그가 방송 전파를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필요로 하고, 따라서 자신이 부담한 비용 이상을 얻어내려고 노력할 것이기에 방송 전파가 최대로 활용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들은 나아가 방송에 대한 규제·개입은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 능력’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처사라고 혹평한다.

과연 그런가? 방송산업을 상품화하자는 등 시장논리의 이면에는 개인의 재산권 보호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효율성이나 재산권뿐 아니라 여론의 다양성 등 민주주의적 가치도 중요하게 고려한다. 게다가 자세히 관찰해보면 우리들은 합리적인 계산에 의해 행동하기보다는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심지어는 그날의 날씨가 어떤 지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기도 한다.

사실 “경쟁적 방송시장이 합리적 경제인의 최적 선택을 통해 방송시장에서의 효율을 보장한다”는 그럴듯한 세계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극도로 단순화된 시장모델에 기초하고 있을 뿐이다. 시장주의 연구자들은 온갖 복잡하고 정교한 수학적 기법을 동원해 이런 믿음을 입증하려고 시도해왔다. 이 세계에 따르면, 사람들은 오직 생산자 아니면 소비자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산자·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노동자이며, 특정 정치성향을 갖고 있고, 경제적 효율성 뿐아니라 정의와 공정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는 정말로 자유 시장에서 번개처럼 신속하게 계산해서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는가? 이 가정이 무너지면 ‘경쟁적 방송시장의 효율’은 신화에 그칠 공산이 크다. 우리는 시장보다는 제도의 틀 속에서 더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조계완 kye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