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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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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반성 없는 시장주의자들

효율성 모델 좀더 다듬으면 시장 정상화될 것이라고 반박
등록 2009-09-30 09:34 수정 2020-05-02 19:25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시장주의에 대한 성찰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에 온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시장주의에 대한 성찰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에 온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전세계를 풍미해온, ‘시장’이란 이름의 교조는 지금 구석에 몰리고 있다. 시장만능 경제학의 쓸모없음과 무능에 대한 혹독한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돌출적인 국면 전환이다. 지난 7월 이후 가 연재하고 있는 ‘위기의 (시장)경제학’ 특집 기사, 이에 대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커스 미 시카고대 교수의 ‘우울한 학문에 대한 변론’, 그리고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9월 초 에 쓴 장문의 시카고학파 비판 등 논쟁이 점입가경으로 불붙고 있다. 주로 호숫가에 위치한 대학(시카고대 등)에 근거지를 둔, 시장을 신봉하는 ‘담수’(freshwater) 경제학자들과 해안가에 주로 자리잡은 대학(프린스턴대·컬럼비아대 등)에 둥지를 틀고 있는, 시장 실패를 주창하는 ‘염수’(saltwater) 경제학자들 간의 대결이다.

크루그먼은 지난 30여 년은 시장주의자들이 이론과 현실 양쪽을 모두 주도해온 ‘거시경제학의 암흑시대’였다고 혹평했다. “그동안 시카고학파를 중심으로 한 시장주의 주류 경제학은 이론의 아름다움을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착각했다.” 멋지고 인상적인 수학 모델의 옷을 걸친 채 시장을 앞세워 세상의 모든 이치를 설파하고 또 처방전을 제시해왔는 것이다. 시장의 완전성에 대한 의심 없는 신뢰, 그리고 이를 입증하는 모델의 정교함에 도취돼 사상 최악의 금융 버블 출현에 눈멀고 버블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사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모든 것은 시장 안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복잡한 수학 곡선이 그려내는 시장의 우아함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 정부·기업·단체·(호숫가에 자리잡은) 대학 등 거대한 시장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조직적·재정적 지원 아래서 시장원리는 더욱 정교해졌다. “구름이 갠 하늘을 배경으로 완벽한 윤곽선을 펼치는 그리스 신전처럼”(조지프 슘페터) 이론 속의 시장은 완전했고, 현실에서도 자유시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무서운 기세로 감염시켰다.

반면 엄습하는 자유시장에 면역된, 시장 규제와 제도를 강조하는 소수파들은 단지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루커스를 비롯한 프리드먼의 제자들은 이들 ‘이단’이 무슨 말을 하면 킬킬거리거나 코웃음을 쳤다. 루커스는 2003년에 “불황 예방이란 거시경제의 근본 문제는 이제 해결됐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정교한 시장 과학을 통해 현실 경제의 질병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시장’의 승리감이었다. 시장은 과거에는 혼돈스러웠던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명하고 처방전까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이론’이 되었다. 전세계 어디서든지 신문에 칼럼을 쓰는 지식인은 대부분 경제학자로 채워졌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공공이든 민간이든 가릴 것 없이 국가·개인·지역 모두 시장 메커니즘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워싱턴 컨센서스’(규제 축소, 자유화 등)가 전 지구를 규율하는 원리가 되었고, ‘자유시장을 향한 전 지구적인 행진’ 속에서 시장은 스스로 오만한 제국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황금 시대를 구가해온 자유로운 금융시장은 갑자기 무너졌다. 시장의 아름다움과 ‘더 많은 시장 자유’를 외쳐온, 무엇보다도 우쭐대곤 했던 담수 경제학자들은 지금 “지적 파산을 맞았다”는 비판(브래드 드롱 미 버클리대 교수)을 들어야 하는 우울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시장의 효율적 자기조절 능력’에 대한 전면 비판이 제기되는 지금 시장만능주의자들 안에서도 작은 자성론이 일고 있다. 다음은 에 실린 자성론 몇 대목이다. “무엇이 왜 잘못됐고, 누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정확히 규정하기란 어렵다. 자유시장 패러다임은 여전히 강력한 변호를 받아야 한다. 단지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장이 신뢰성에서 큰 상처를 입고 있지만, 더 나은 창조적 진화를 할 수 있는 자극이 될 것이다.” 압축 정리하면 이른바 ‘겸손론’이다. 즉,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건 겸손이란 얘기다.

오직 효율과 경쟁적 교환, 이윤만을 추구하는 ‘비인격체’ 시장은 여전히 완벽하고 견고한데, 단지 시장을 복음처럼 전도해온 경제학자들이 겸손하지 못했기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비판받고 있는 담수가 오히려 염수를 향해 “당신들이 오히려 비이성적으로 과열하고 있다”며 따끔하게 충고한다. 잔손질만 하면 현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정교한 시장 연립방정식을 구축할 수 있다는 우월감, 더 정교한 시장 과학을 만들어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시장을 구출해낼 수 있다는 자만감이다. 진정한 반성과 겸손은 보이지 않고, 시장은 여전히 폭주하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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