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증권투자는 ‘미인 뽑기 대회’에 비유된다. 케인스는 에서 시장에서 사람들이 하는 선택과 행동을 미인 뽑기 대회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 신문사가 여러 명의 미인 후보 사진을 게재하고 최고 미인으로 뽑힐 후보를 선택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는 현상응모를 실시한다고 하자. 이때 응모자들은 자신이 보기에 가장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후보를 고르지 않고 대다수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 얼굴을 선택한다. 대회 참여자 모두가 똑같이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제일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라 1등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여성을 뽑는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기업 가치가 좋은 주식을 사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살 것으로, 그래서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에 투자한다. 증권사 객장 주변에 널리 퍼진, ‘오르는 주식을 사라’는 말은 이를 지칭하는 격언이다. 가격을 좌우하는 건 가치가 아니라 대중의 단순한 ‘인기’다.
어떤 주식 전문가가 특정 기업의 주식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하자. 물론 그가 엄밀하고 정교한 분석을 통해 그 주식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주가가 올랐을 때 그의 엄밀한 분석이 적중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주가가 오른 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전문가의 조언을 따라 너나 할 것 없이 해당 주식을 샀기 때문이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불패’ 또는 ‘강남 불패’는 가격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힘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과열’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어떤 시장에서든 가격에 거품이 쌓이면 언젠가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시장은 무너져내리게 된다. 불합리한 힘에 이끌려 가격이 형성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보험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누군가 “생명보험이 죽음이라는 신성한 사건을 천박한 상품으로 격하시켰다”고 말했지만 보험은 ‘인류가 발명해낸 가장 훌륭한 상품’이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준비재산을 만들어놓고 불행을 당한 사람과 상부상조하는 상품이라서 훌륭한 건 아니다. 오히려 손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은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런데 보험회사는 왜 손실 위험(막대한 보험금 지급)을 겁내지 않는 것일까?
비밀은 지극히 간단한 수학적 확률에 있다. 보험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사고 발생의 평균값은 기댓값(사고가 발생할 기대확률)에 점차 수렴하게 된다. 이를 ‘대수(큰 수)의 법칙’이라고 한다. 숫자가 커지거나 표본이 많아질수록 실제값이 평균값으로부터 이탈할 확률은 제로(0)에 근접하게 된다는 얘기다. 결국 보험 가입자만 충분히 늘어나면 보험회사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게 된다.
생명보험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수십 개를 가입해 있어도 각 보험사에서 정해진 보험금을 받는다. 따라서 가입자에게는 여러 생명보험사에 복수로 가입하려는 인센티브가 존재한다. 생명보험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했다는 지적에도 외국계 거대 생명보험 자본이 “한국 생명보험 시장은 성장성이 무한하다”며 공세적 영업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 “공적 사회 안전망이 취약해서 한국 보험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부분적인 진실에 불과하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07년 3월 말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연간 137만원의 생명보험료를 내고 있다. 가족의 장래를 위해 자신의 죽음에 매년 이만큼의 돈을 걸 만한 것인지, 혹은 시장가격(보험료)이 보험상품의 가치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이 미래의 위험에 대한 치밀한 계산보다는 오직 ‘더 많은 보험금’에만 몰두해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시장은 ‘가격기구’라고 말해왔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즉각 청산해주고, 경제적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생명보험이든 시장가격을 형성하는 근저에는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 깔려 있다.
원시공동체 시절에 농사짓던 사람들은 태양의 흑점을 보고 그해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했다. 태양의 흑점 모양을 보고 올해는 흉년이 들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다면 실제로 그해 흉년이 들기도 했다. 케인스가 미인 뽑기 대회에서 말했듯, 대다수 사람들이 똑같이 흉년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농사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농사짓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끔 벌어지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튼튼한 펀더멘털을 가진 경제라도 갑자기 외환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 감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예상에 따라 행동한다면 실제로 외환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란 책에서 “시장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는 까닭은 시장 체제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째서 (시장에서) 사태가 때로는 잘못 돌아가기도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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