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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바보


2개의 건초 더미 사이에서 고민하다 굶어죽은 당나귀처럼 선택의 자유는 비극적 선택에 빠질 수도
등록 2009-11-12 15:01 수정 2020-05-03 04:25

대학에 못 가고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취업한 청년노동자와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는 그의 친구가 있다고 하자. 대학생 친구는 청년노동자가 낸 소득세가 포함된 정부의 대학보조금 혜택을 누리게 된다. 도서관 시설도 값싸게 이용하고 등록금도 좀더 적게 낸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은 두 사람 모두 합리적 선택을 한 결과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불공평하게 누가 더 이득을 보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실업에 대한 시각도 비슷하다. 시장 임금수준에서 실업자는 실업수당을 받을지 재취업할지를 날마다 고민하면서 합리적 선택을 한다고 주장한다. 실업 신세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는다. 개인에게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줄수록, 즉 시장에 대한 제도적 개입과 규제가 적을수록 시장은 효율을 달성하고 개인의 만족도 커진다고 말한다.

‘합리적 바보론’을 제기한 아마르티아 센(오른쪽)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가족들과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뒤 있다. 연합 AP

‘합리적 바보론’을 제기한 아마르티아 센(오른쪽)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가족들과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뒤 있다. 연합 AP

이런 관점은 한 손에는 전자계산기를 들고, 머릿속에는 모든 선택 가능한 상품 목록과 그 목록들의 시장가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상태를 가정한다. 더 많은 경쟁과 더 많은 선택을 보장할수록 개인은 온갖 선택을 통해 그의 복지를 증진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시카고학파의 시장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스티글러 교수는 “우리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영리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시장에서 선택의 자유는 곧 ‘행복한 선택’을 보장하는 것일까?

당나귀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우화가 있다. 배고픈 당나귀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건초 더미를 보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반대쪽에도 똑같이 맛있어 보이는 건초 더미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 건초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이 더 좋아 보였다. 밤새도록 갈팡질팡하던 당나귀는 이튿날 아침 두 건초 더미 사이에서 굶어죽은 채로 발견됐다. 자기 앞에 놓인 두 개의 건초 더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줄곧 합리적 선택을 시도하다가 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이 당나귀는 다른 건초 더미를 배제하고 어떤 한 건초 더미를 선택할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선택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정당화될 뿐이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고 남겨진 것이 곧바로 하찮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슬픈 당나귀가 말해주듯 때때로 더 많은 선택의 자유는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개인의 일생을 좀더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치밀한 합리적 선택을 하려고 고민하는 동안 나는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좀더 많은 자유가 좀더 작은 행복을 주거나 어쩌면 훨씬 작은 충족감을 줄 수 있다. 선택 대안의 상실이, 즉 끊임없이 사소한 선택을 해야 하는 성가심에서 해방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행복을 줄 수도 있다.

소득 불균형 해소에 대해서도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내버려두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개입할 경우 오히려 개입 비용을 초래해 부정적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고 가르친다. 소득을 재분배하거나 공공의료 서비스를 늘리는 정책은 오히려 근로 의욕을 상실시켜 빈민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과잉 의료 서비스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은 단순히 치료 자체가 무료이거나 진료비가 비싸지 않다는 이유로 병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합리적 선택은 곧 효율성 논리로 이어진다. 시장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누구의 효용도 증가시킬 수 없으면’ 최적의 사회 상태라고 말한다. 더 많은 경쟁과 선택이 보장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가장 최적이고 효율적이므로 현실에 만족하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극도의 빈곤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호화판으로 사는 사람이 공존한다 해도 빈곤한 사람들이 부자의 호사를 줄이지 않고는 유복해질 수 없다면, 최적의 사회 상태가 된다. 또 네로 황제가 로마를 불태우길 원할 때 이를 막는 게 네로를 좀더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가 로마를 불태우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최적 상태가 될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출신 아마르티아 센 교수는 이기적으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은 ’합리적 바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케인스는 에서 “기업의 투자가 장래 이익의 정확한 계산을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남극 탐험의 경우와 별 차이가 없다. 장래를 좌우하는 인간의 의사결정은 개인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엄밀한 수학적 기대치에 의존할 수 없다. 그와 같은 계산을 할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갈파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기분이나 감정 또는 요행에 맡기면서 여러 선택을 한다. 이른바 ‘동물적 충동’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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