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공유지의 비극


몰디브가 가라앉지만 특정국을 고소할 수 없는 현실,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 가능할까
등록 2009-12-24 11:32 수정 2020-05-03 04:25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서 행진 중인 환경운동가들. REUTERS/ PAWEL KOPCZYNSKI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서 행진 중인 환경운동가들. REUTERS/ PAWEL KOPCZYNSKI

“정치를 변화시켜 기후를 구하자!”(Change the Politics, Save the Climate)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환경주의자들은 변화해야 할 것은 ‘기후’가 아니라 ‘정치’라고 외쳤다. 이번 총회는 시작부터 ‘역사상 가장 난해한 대화’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전세계에서 온 선진국·개발도상국·극빈국 등 각국 정치가, 기후과학자, 경제학자 등의 목소리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밥 딜런이 약 40여 년 전에 핵전쟁 등 인류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 부른 노래 (A Hard Rain’s Gonna Fall)가 이번 총회의 비공식 축가로 채택됐다. 그러나 노래는 같이 따라 불렀지만, 임박한 지구 대재앙을 막기 위한 공동 대오에 지구촌 ‘정치’가 쉽게 일치단결하기 어려운 이유가 분명히 있다. 지구온난화가 ‘공유지의 비극’(또는 부정적 외부효과)이라고 불리는,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집 앞에 있는 파티장에서 흘러나오는 소음, 비료공장에서 바람을 타고 집으로 날아오는 암모니아 악취, 이런 것들이 해결하기 곤란한 ‘부정적 외부효과’다. 즉, 한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에서 초래되는 비용의 일부 혹은 전부를 다른 사람들이 부담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햄버거를 사먹을 때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의도하지 않았던 부산물을 발생시킨다. 탄소를 배출해 인류의 공유지인 지구를 조금씩이나마 더 뜨겁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자원의 경우, 이용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하거나, 알면서도 아무런 대가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기 이익에만 급급한 행동을 하게 된다. 영화 에서 스미스 요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 인간들은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마지막 하나 남은 자연자원이 다 고갈될 때까지 번식을 해나가지. 당신네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 자연자원이 고갈되지 않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뿐이야. 인간이란 지구의 병적인 존재야. 너희들은 전염병이라고.”

당면한 지구환경 위기를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기심을 버려라” “방탕한 (자동차·전력) 소비를 줄이자”고 고귀한 호소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공유지에서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미국의 대규모 탄소 배출 때문에 몰디브가 완전히 물속에 가라앉아 21세기 아틀란티스 섬이 될 운명에 처하고, 방글라데시의 쌀 재배지 절반이 물밑에 가라앉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함에도 몰디브와 방글라데시는 미국을 고소하기 어렵다. 물론 자신의 행복이 위기에 처하면 분명히 행동을 바꿀 것이다. 즉, 온실가스가 미국 대기층에만 남아 존재한다면 미국은 곧바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설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탄소 배출 분자는 국경을 개의치 않는다. 지구온난화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이것들이 의미하는 건 바로 ‘시장 실패’다. 시장주의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경제주체들이 시장에서 마구 뿜어낸 탄소 배출로 인해 “우리 스스로의 둥지를 더럽히는 시스템”(‘공유지의 비극’, 개릿 하딘, 지, 1968)에 갇힌 셈이다.

물론 몇몇 국가와 환경주의자들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으로 지구온난화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전통적인 시장주의 교과서 속 세계와 달리) 인간은 또한, 모두가 이타적으로 협조함으로써 각자에게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장 좋은 상태를 만들 수 있다. 행동경제학 분야의 국제적 권위자인 최정규 경북대 교수는 에서 “(우리는) 시장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타적인 협조 행위는 흔히 발견된다. 소수의 사람들이 약속을 어기고 공유지에서 맘껏 자기의 배만 채우고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 사람들은 약속을 지켜 공유지를 관리해나간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 인간의 혈관 속에는 선천적으로 이타심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구온난화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사회적 문제라도 이타주의에 의존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찰스 다윈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어느 글에서 “고결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 많은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항상 다른 사람을 도울 자세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집단이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 또한 자연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누구나 다른 국가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고만 한다”는 시장주의자들의 가르침은 암울하지만, 지금 실제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인간의 현실은 따뜻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