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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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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익부 빈익빈, 이러다 남미 될라”

‘미네르바’ 박대성이 말하는 서민과 개인, 그리고 자유주의…
“미디어법은 추세 거스르는 꼼수, 가증스러워”
등록 2009-07-31 10:59 수정 2020-05-03 04:25

7월22일 오전 11시30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 ‘미네르바’ 박대성(31)씨를 처음 만났다. 온라인 글이 아닌 오프라인의 실제 인물이었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성격 때문인지, 검찰 조사와 100일 동안의 ‘독방’ 생활로 생긴 후유증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이날 오후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했다. 미네르바는 몇 시간 뒤를 예견하듯,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민주주의와 미디어법에 대해 격정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미네르바의 선견지명이었을까.

그는 말을 정리하지 않은 채 쏟아내는 식이었다. 처음엔 논리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찬찬히 들어보면 그의 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서민과 개인, 그리고 자유주의였다.

<font color="#006699"> -근황은 어떤가요.</font>

차분하게 지내고 있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그런데 말이죠,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해요. 민주시민 의식이 10년 새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그런데 정부는 이를 자꾸 통제하며 관치 행정주의로 회귀하려고 해요. 한 예로 방송이나 언론을 통제해 대중을 적절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민주주의가 도마에 오른 상황입니다. 민주주의가 시험을 받고 있는 거죠.

<font color="#006699"> -도마 위에 오른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font>

민주주의의 위기는 현 정부가 법치주의를 잘못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치주의란 이름으로 국민을 압박하죠. 한국 사람들은 너무 착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유럽에서 했다면 100% 난리가 났을 거예요. 얼마까지 버틸 수 있을지.

지금과 같은 법치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이어진다면 남미형 모델로 갈 수밖에 없어요. 부익부 빈익빈 사회를 답습하는 거죠. L자형의 경기 정체도 함께 가는 거죠. 대안은 단기적인 사회불안을 감수하고 새로운 사회모델을 찾는 겁니다. 또 다른 대안은 신자유주의 모델과 절충해 타협하는 것이죠.

선택은 대중의 몫이에요. 이 때문에 언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현 정부는 미디어법을 통해 대중의 불만을 틀어막으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가증스러워요. 사회적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font color="#006699">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들이 금융위기의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죠.</font>

영국과 미국에서 오히려 신자유주의 병폐를 느끼고 은행과 자본에 대해 규제나 통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신자유주의를 과신하고 있고, 사회 양극화를 감수하고 성장을 하면 나중에는 모두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주의를 강요하고 있어요.

<font color="#006699">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게 있나요.</font>

신자유주의 실패의 대안으로 케인스를 생각하게 돼요. 물론 정책 담당자들이나 엘리트 학자들은 그렇지 않겠죠. 기획재정부 이런 데 있는 사람들이나 일부 학자들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고향인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배워왔죠. 신자유주의에 물들 대로 물든 사람들이죠. 재미있는 것은, 지난 정부가 공적자금을 쓰면 보수 쪽에서 ‘좌빨 경제’라고 비판했죠. 그런데 정권을 잡은 보수 정부는 똑같이 돈을 뿌리죠. 그런데 이건 ‘글로벌 공조’예요. (웃음)

<font color="#006699"> -양극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에 요즘 관심을 쏟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font>

문제는 부동산 자산 가치의 변화로 벌어지는 소득 양극화죠. 이 때문에 사회적 균열이 생겨요. 부모의 소득 격차가 자식의 직업이나 계급 격차로 이어지는 거죠.

양극화가 왜 무서운가 하면요, 소득과 자산 격차가 계속 벌어지면 그 때문에 개개인들이 사회에 불만을 가지게 돼요. 보수들이 말하는 사회 불만 세력이에요. 신빈곤층·신용불량자 등 이런 사람들이 900만 명에 이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계속 인내하며 정부의 법치주의 강화에 동조하게 될까요.

<font color="#006699"> -현 정부는 물론 과거 정부 역시 양극화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였죠.</font>

물론 그렇죠. 하지만 양극화가 문제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큰 차이가 있죠. 문제의식이 있다는 건, 행동을 유발하고 변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니까요. 설사 개선하기 힘들더라도 가능성은 가지게 되죠.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는 경우는 더 무서운 결과를 낳아요. 자포자기 경제로 가버리는 거죠.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font color="#006699">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세요.</font>

일단 두 가지 대안이 있죠. 하나는 스웨덴·네덜란드 모델이 있어요. 이런 모델에선 기득권 세력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있어야 해요. 한국에선 쉽지 않죠.

그래서 유럽의 남쪽으로 시선을 돌려 이탈리아식 모델을 보고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죠. 이른바 사회적 기업 모델이죠. 특히 이탈리아는 이런 조합들이 지방에서 강해요.(이탈리아에는 현재 7천여 개의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다. 이곳에는 22만 명의 유급 직원, 3만 명의 자원봉사자, 2만 명의 빈곤계층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조합은 노숙자·외국인·약물중독자 등을 위한 야간쉼터 관리, 청소 서비스, 생태지역 유지 및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양극화라는 게 소득뿐만 아니라 지역 양극화도 있죠. 서울의 집값 상승률과 우리나라 제2도시인 부산의 집값 상승률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죠. 하지만 지방자치 시대에 중앙정부가 무작정 돈을 지역으로 넘겨주기도 힘들죠. 이 때문에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해요. 벤처 붐이 일 때 벤처캐피털을 통해 벤처기업을 지원했듯이 말이죠.

<font color="#006699"> -최근 감세·증세 논란이 있었는데요.</font>

감세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고소득자의 세금 감면으로 소비를 유도한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MB노믹스의 근간이죠. 하지만 한국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게, 세금을 깎아준다고 한들 고소득층의 소비로 연결이 안 되는 거죠. 투자도 마찬가지죠.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니 일자리도 못 만드는 거예요. 실패한 정책입니다.

중국 경제는 여전히 노동집약적이어서 투자하면 할수록 고용효과가 높은데, 한국은 이미 산업이 고도화돼 투자를 하더라도 고용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이런데도 대통령이 나서서 투자하라고 계속 요구해요. 3년 전엔 대통령이 투자하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됐어요.

<font color="#006699"> -그럼 일자리를 확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font>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 600만 명이에요. 총고용의 3분의 1 규모죠. 동네 자영업, 동네 중소기업을 키워야죠. 이들이 성장해야 대기업이 못 만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어요. 일본 같은 가족기업이 대안인 것 같아요. 일본에선 어묵집을 100년 이상 하는 데가 많잖아요. 대신 정부는 가족기업의 브랜드를 키워주고 해외 진출을 도와주는 지원을 하는 겁니다.

외식업과 숙박업 같은 자영업은 이미 포화 상태예요. 자영업 구조조정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됩니다. 복지비를 늘려 이들이 새로운 먹을거리 사업으로 거듭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font color="#006699"> -리먼브러더스 파산 신청, 원-달러 환율 1400원,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을 예측해 맞혔는데.</font>

당시엔 자금시장 흐름과 정책 변동성이 심했죠. 그런 변동성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 거였어요.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니 대비하자는 방어적 차원이었죠.

<font color="#006699"> -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광기에 환멸과 진저리가 난다”고 했는데요.</font>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집 앞 현관에 보수단체가 한문으로 ‘경고장’을 붙여놓았어요. 온라인에서 ‘죽이겠다’는 협박도 있었고요. 진보 쪽에서도 공격을 받았어요. 온라인에서 스스로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 내가 보기엔 진보라기보다 반이명박 노선의 사람들이 ‘청와대 프락치’ ‘이명박 하수인’이라며 욕을 하더군요. 진보나 보수나 나를 모두 한쪽으로 몰아가려고 하더군요. 나는 물론 부모님과 동생을 싸잡아 욕하는 분도 있었고요. 그렇게 힘든 일을 겪다 보니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같아요.

<font color="#006699"> -미네르바 구속은 우리 사회에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을 낳았죠.</font>

표현의 자유는 100% 보장돼야 해요. 조금 문제가 있다고 막아버리면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거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인터넷과 정보기술(IT) 산업에도 치명적이에요. 여론 활성화와 대중적 참여를 통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하거든요. 그렇게 고용을 창출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정부는 조금 문제가 있다고 법으로 틀어막으려 하고 있어요.

<font color="#006699"> -동사무소 무료 시설 이용 등을 제안하는 글을 아고라에 올렸던 이유는 무엇인가요.</font>

서민들이 건강관리를 하려면 돈을 내야 하잖아요. 헬스장에 가더라도 한 달에 몇만원씩 들어요. 하지만 서민들은 그런 여력이 별로 없어요. 정부가 서민을 위해 만든 복지제도가 있어요. 그런데 막상 서민들은 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몰라요. 결론적으로 말해, 알아야 써먹는 거죠. 내가 세금을 내서 만든 것들인데 100% 활용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정부에서 하는 서비스는 모조리 이용해야 한다고 봐요.

<font color="#006699"> -서민들을 위한 복지비를 더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font>

복지비를 늘리면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은 말이 안 돼요. 복지는 불황을 극복하는 대안이죠. 선진국에서 불황을 탄력적으로 극복하는 이유가 사회 안전망을 잘 갖춰놓았기 때문이죠. 저소득층은 사회 안전망을 딛고 불황을 그나마 빨리 극복할 수 있는 거죠.

<font color="#006699"> -미네르바 사태 당시 언론 보도에 대해 할 말이 많을 듯합니다.</font>

한국 언론들은 주입식이에요. 이념이나 사상을 독자들에게 주입하려 해요. 그건 아니잖아요. 독자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에선 저널리즘의 재정립이 필요한 것 같아요.

<font color="#006699"> -다음 아고라에서 ‘매트릭스 구조’라는 말을 썼는데요.</font>

매트릭스 구조란 이런 거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계속 어렵게 살고 잘사는 사람은 영원히 잘사는 사회로 고착화된다는 것이죠. 이를 경계한 말입니다. 내가 못살면 자식들이 못살고, 그러니 아기를 낳지 않으려 해서 저출산 문제가 생기잖아요. 저출산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무서운 현상입니다. 이처럼 계층 안에서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라, 계층에서 돌고 돌아 상부 계층과 우리 사회 전체에 전염병처럼 번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매트릭스 구조란 말을 썼어요.

<font color="#006699"> -하반기 경기 전망은 어떨까요.</font>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다국적 자본이 미국으로 다시 빠져나갈 수 있죠. 주가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따라서 금리 인상 등 ‘출구 전략’(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풀었던 유동성 공급을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하지만 절대 금리를 올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부동산 거품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서민들은 타격을 받고 결국 일본처럼 장기 불황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주가는 3분기나 하반기에 한 번의 폭락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인터뷰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마쳤다. 미네르바와 기자, 그리고 박찬종 변호사와 일하는 김승민 보좌관 등 세 명이 늦은 점심을 먹으러 공덕동의 한 식당에 들렀다. 우렁 뚝배기를 3인분 시켰다. 라면 사리를 하나 시켰는데, 모자라 또 하나 시켰고, 다시 하나를 더 시켰다. 모두 자취를 한 경험이 있는 세 남자였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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