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 (이하 미수다)의 따루에게 가끔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 같다. 양성평등, 군대 문제 등에 관한 한국인의 감수성이 때로는 “엄마·아빠 세대의 생각과 비슷한” 구석이 적잖은 탓이다. “우리 땐 안 그랬어 이것들아” 하는 위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성인식은 가끔 따루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아버지 세대의 핀란드로 시간여행 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따루가 말하는 핀란드가 ‘천국’은 아니다. 그곳에서도 여성차별·인종차별이 ‘철폐’되지는 않았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아이스하키 경기를 하는 날에 핀란드도 한-일전 못지않은 흥분에 휩싸인다. 그래도 가끔은 따루가 에서 말하는 한국의 현실은 낯설다. “한국에 사형제가 있어서 놀랐다” “핀란드엔 대학 등록금이 없다” 같은 말은 한국인의 상식을 뒤집는다. 그리고 한 해 등록금을 수만달러 낸다는 ‘미쿡’ 등에서 온 다른 미녀들이 말하는 현실과도 비교된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나라에서 온 따루와 나눈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 에서 너무 남자 얘기만 많이 해서 재미가 없다는, 목마른 따루 살미넨(Taru Salminen·32)을 만났다.
따루 살미넨(Taru Salminen·32).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친구가 저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게시판에 (원서를) 냈어요. 어느 날 인터뷰하러 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원래 친구가 해보라고 했을 때는 싫다고 했는데 결국은 가봤어요.
=헬싱키대학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한국인 펜팔 친구가 있었고요. 1998년 한국에 처음 왔고요. 재미있어서 2000년부터 1년 동안 서울대 국문과 교환학생으로 왔지요.
광고
=그냥 듣는 대로 따라해요.
따루에겐 외국인 친구가 별로 없다. 요즘에 만나는 친구들의 “99%가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서울 홍제동에 사는 따루는 핀란드 시골 처녀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두 번 인왕산에 오르지만 “매일 가야 하는데 아침에 못 일어나서…”라고 아쉬워하는 따루는 인구가 100~200명밖에 되지 않는 핀란드 남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시골 처녀는 도시로 가고 싶어서 헬싱키대학에 진학했고 핀란드 인구의 2배가 넘는 서울로 진출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한 따루의 “고 이스트!”(Go East)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멀지도 않아요. 비행기로 7~8시간이면 가니까.
=맞아요. 이제는 많이 (혈통이) 섞여서 유전자 20~30%가 동양 쪽이라고 해요. 옛날엔 주어, 목적어, 동사로 어순이 (한국어와) 같았대요. 지금은 옆의 러시아·스웨덴 영향을 받아서 바뀌었어요. 이제는 어순이 주어, 동사, 목적어지만 아직도 유연성이 있어요. 전치사 대신에 조사가 있고요.
광고
=약간, 약간.
오래된 유전자 때문인지 따루의 생김새도 살짝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따루의 조국인 핀란드는 한국과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한국이 거대한 중국과 잘사는 일본 사이에 있듯이, 핀란드도 거대한 러시아와 잘사는 스웨덴 사이에서 간난고초의 시절을 겪었다.
=19세기에 100년 정도 러시아 식민지였어요. 그전에는 오랫동안 스웨덴 밑에 있었어요.
=맞아요. 눈치 많이 보고. 저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많이 써요. 말도 별로 없고. 보통 서양 사람이랑 조금 달라요.
광고
=전혀. 핀란드랑 스웨덴이랑 하면 똑같애요. 아이스하키 하면 완전히 전쟁이에요. ‘스웨덴 놈들!’ 그러죠.
이렇게 핀란드와 한국은 다르면서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닮은 것보다 다른 면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의 미녀들은 가끔씩 고국 정부의 공식 대변인 같은 발언을 한다(혹은 권유받고 재연한다). 예컨대 사형제 얘기가 나오면 사형이 집행되는 중국의 미녀들은 흉악범에 대한 응징이 옳다는 주장을 한다. 여기서 따루는 대개 진보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이것은 따루 개인의 의견을 드러내는 방식이자 핀란드인의 정서를 드러내는 사례다.
=(등록금 발언 이후로) 미니홈피 통해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핀란드 어떻게 갈 수 있냐고 물어요.
=알아요. 전세계 교육 관련 통계를 보면 한국도 1~2등 하지만 핀란드도 1~2등 해요. 그런데 핀란드엔 사교육이 없어요. 이유는… 아무래도 선생님들이 모두 석사까지 마쳤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네. 정말로. 사형제가 없어야 유럽연합(EU)에 가입이 되잖아요. 핀란드에선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받아요. 사회 분위기예요. 그래서 사형제 있는 나라는 후진국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리비아, 이라크, 이란…. 한국 이미지에 안 맞아요.
=네. 요즘은 저도 그런 생각은 들어요. 흉악 범죄는 응징을 해야 되나. 그전에는 무조건 반대였어요.
고려대가 김연아를 낳지는 못해도, 이렇게 풍토는 사람을 낳는다. 지구는 둥글고 교육도 달라서 한국의 좌파는 때로는 핀란드의 우파처럼 보인다. 따루는 “농담 삼아 얘기한다”며 “한국의 좌파가 핀란드의 우파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우파는? 핀란드에선 우파의 우파? 그렇다면 핀란드는 당신들의 천국이란 말인가? 날마다 신문을 챙겨보고 도 즐겨본다는 따루에게 물었다.
=그런 때는 이렇게 얘기해요. 핀란드는 살기 좋고 애 키우기도 좋지만, 한국 사람한테는 심심한 나라예요. 물가가 높아서 술도 비싸고. 삼겹살 먹으러 가고 그러기도 힘들고요.
=저도 아이를 가지면 핀란드 가서 키우지 않을까 생각도 했어요. 회식이 많으니까 남자들이 밤늦게 술 먹고 다니고 그러잖아요. 저는 그게 싫은 거예요. 핀란드에선 퇴근하면 가족과 지내고 그래요.
=네, 돈도 많이 들고. 한국 부모들 대단하단 생각도 들죠. 그래도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요. 아침 출근길에 건물을 보면서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약간 중도파. 한 당만 찍지는 않고요. 젊은 여성을 찍어요. 가끔 농담으로 말하는데, 핀란드의 우파가 한국의 좌파예요. 전통이 달라요.
=8년째 그래요.
=아직도 그런 거 있어요. 남자가 1유로 벌면 여자는 80센트 벌어요. 핀란드도 100% 평등하진 않아요. 그것 때문에 여자를 찍고. 이민자도 찍어본 적 있어요. 핀란드에서도 1990년대까지 외국인 보기가 힘들었어요. 90년대부터 난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금 인구 2%가 외국인이에요. 핀란드에도 인종차별 있어요. 그것도 반대하고 그래서 찍었죠.
=저는 백인 유럽 사람이잖아요. 말하자면 엘리트예요. (웃음) 저보고 ‘핀란드 돌아가라’ 하는 사람 없어요. 한국 사람들,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 사람이면 이렇게 하고 그러죠…. 많이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요.
이렇게 ‘GNP 인종주의’는 살면서 느끼는 공기다. 너무 같지만, 한국 하면 군대와 교회를 빼놓기 어렵다. 다만 질문을 조금은 바꾸어 군대를 묻되 병역거부를 물었다. 교회에 대해서도 서양인이 본 한국 교회가 얼마나 낯선지를 물었다. 그래서 따루가 에서 질문받지 않아서 대답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왔다.
=놀랐죠. 핀란드도 (병역이) 의무예요. 기간이 6개월에서 1년 정도.
=한 명 있어요. 공장에서 일했어요.
=핀란드에선 선택할 수 있어요. 군대를 가든지 병원이나 도서관이나 그런 데서 일할 수 있어요. 아예 안 가면 안 돼요. 그러면 감옥에 가요. 그래서 국제앰네스티에 핀란드도 인권침해 국가로 올라 있어요.
=그렇진 않아요. 그래도 여전히 군대 가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해요. 특히 부모 세대가 그래요.
=큰 이유가 이거예요.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잖아요. 그리고 2차 대전 때도 소련이 핀란드를 침략하려고 했어요. 열심히 싸워서 독립을 유지했어요. 핀란드를 위해서 가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루터교 (신자가) 80% 정도.
=그럼요! 완전 놀랐어요. 저도 루터교 신자지만, 좀 무서워요. 거기는 그냥 습관이에요. 교회에서 결혼하고 장례식하고. 한국에선 교회 다닌다고 하면 매주 나가고 열심히 믿고. 핀란드는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 소수고. 크리스마스, 부활절에 한 번씩 가는 정도죠.
만약 따루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아마 인권단체 쪽에서 일하지 않았을까”라고 답했다. 이렇게 세상에 관심이 많은 따루는 인터뷰의 말미에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따루가 묻고 기자가 답하는 역인터뷰가 시작됐다.
따루: 뭐 하나 물어볼게요. 핀란드에서 소나 돼지나, 동물을 못 움직이게 가둬서 키우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요. 한국에도 있어요?
기자: 동물권리 운동이 요즘에 좀 생겼어요.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를 할 때, 소도 생명이기 때문에 가둬서 키우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촛불집회 현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였어요.
따루: 이것도 궁금해요.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동물실험을 하는지?
기자: 대부분 하겠죠. 안 한다는 얘기 안 하니까.
따루: 해요? (한숨 쉬며) 사면 안 되겠네. 핀란드에서 그거 되게 큰 뉴스예요. 만약 그렇게 팔면 사람들이 안 사요. 요즘엔 공정무역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처음엔 바나나·커피 정도였는데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이렇게 동물을 사랑하는 공정녀, 따루는 직장일에 방송일로 바쁘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할 때엔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한다. “나중에 안 하면 아무도 저한테 관심 안 가질 건데”라는 이유다. 그러나 관심이 식어도 “하는 일이 따로 있고 이건 알바라고 생각하니까” 아쉽지는 않단다. 따루는 ‘지금’을 그렇게 즐긴다. 참, 따루는 밝히기 어려운 직장에서 일하며 가끔은 프리랜서 번역일도 한다.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나무 꺾다 라이터로 태우려…” 의성 산불 최초 발화 의심 50대 입건
“헌재는 윤석열을 파면하라” 탄원 서명…9시간 만에 20만명 동참
한덕수 ‘마은혁 임명’ 침묵…민주 “윤 복귀 위한 위헌적 버티기”
윤석열 탄핵심판 4월18일 넘기는 ‘최악 경우의수’ 우려까지
전한길, 불교신자 후보에 안수기도…“재보궐서 보수우파 꼭 승리”
산 정상에 기름을 통째로…경찰, 화성 태행산 용의자 추적
챗GPT ‘지브리풍’ 이미지 폭발적 인기…“판도라의 상자 열었다”
‘윤 탄핵’ 촉구 성명 추동한 세 시인…“작가 대신 문장의 힘 봐달라”
“내 폰 찾아줘” 삼성 냉장고에 말했더니…세탁실에서 벨소리 울려
공군 부사관 인력난에…필기시험 ‘합격선’ 없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