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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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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생물학] 자궁 그림 보고 두려워마세요

중력 줄이기 위해 비스듬히 자리한 기관들,
입체구조 이해해야 탐폰과 출산에 대한 이해 높아져
등록 2020-08-08 14:46 수정 2020-08-15 17:15
여성의 생식기관 구조. 위키피디아

여성의 생식기관 구조. 위키피디아

1918년 겨울, 미국의 제조사 킴벌리클라크는 3천t 넘게 재고로 쌓인 셀루코튼(Cellucotton)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한 해 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며 야전병원에서 거즈로 사용할 면이 부족해지자, 킴벌리클라크 연구진은 목재에서 추출한 섬유질을 가공해 셀루코튼이라는 면의 대용품을 군에 납품합니다. 셀루코튼은 면보다 흡수력이 5배 이상 좋아서 개방된 상처를 싸매기에 좋았거든요. 셀루코튼의 단점은 재사용이 어렵다는 것인데, 가격이 싸서 큰 부담이 없었고 위생 면에선 오히려 일회용을 쓰는 것이 나았기에 별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

상처 소독용 거즈에서 탐폰까지

군에선 셀루코튼을 대량 주문했고, 제조사는 생산량을 크게 늘렸죠. 하지만 전쟁은 이듬해에 끝났고, 넘치게 생산한 셀루코튼은 판매처를 잃어 고스란히 재고로 쌓였습니다. 이 악성 재고를 처리할 방법을 고심하던 경연진 귀에 들어온 반가운 일화가 있었습니다. 야전병원 간호사들이 셀루코튼을 상처를 덮는 거즈 외에 다른 용도로 썼다는 거였습니다.

간호사들은 기존에 쓰던 천으로 만든 월경대 대신 셀루코튼을 겹쳐 썼습니다. 애초에 셀루코튼이 피와 고름을 흡수할 용도로 개발됐기에 ‘흡수’라는 월경대의 일차적 역할을 훌륭히 해냈고, 일회용이라서 사용한 뒤에는 그냥 둘둘 말아 버리면 되니 기존 월경대가 가졌던 세탁과 건조의 부담에서도 해방될 수 있었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셀루코튼 제조사는 기민하게 움직입니다. 바로 다음해인 1920년, 셀루코튼을 이용한 최초의 일회용 생리대 코텍스(Kotex)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거든요. 일회용 생리대는 간편하고 위생적인데다 무엇보다 흡수력이 좋아 월경혈이 샐 걱정을 덜어주었기에 곧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이후 밀리지 않게 속옷에 붙일 수 있는 접착식 생리대와 고분자 흡수체가 들어가 두께를 줄인 제품을 비롯해 체내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까지 다양한 디자인과 크기와 성능을 지닌 생리대가 개발돼, 여성들이 월경 기간을 좀더 수월하게 넘기도록 도와줬지요.

초경을 시작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니, 시중에 나온 생리대는 거의 종류별로 다 써본 듯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탐폰이었습니다. 작아서 휴대하기도 좋고, 샐 염려도 덜하니까요. 하지만 제 선호도와 달리 여러 여성의 경험담을 듣다보니 탐폰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았습니다.

탐폰이 불편한 이유는

여성들이 탐폰을 거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이물질을 몸속에, 특히 질 속에 인위적으로 집어넣는 행위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거부감(여기에는 처녀막이라는 일종의 흔적 기관의 지나친 신성화도 한몫합니다), 몸 내부로 연결된 공간에 이물질을 넣었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버려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탐폰을 처음 넣는 과정에서 흔히 시행착오로 겪는 불편함과 통증에 대한 불쾌한 기억을 꼽는 이가 많았습니다. 심리적 이유야 개인 성향에 따른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후자의 두 이유는 그 근원이 많은 이가, 심지어 여성조차 자기 몸의 구조를 제대로 몰라서 일어난 오해라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교과서든 인터넷이든 자궁 구조 혹은 여성 생식기관 구조를 검색하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는 것이 [그림1]과 같은 정면 구조입니다. 부드러운 역삼각형 모양의 자궁은 아래쪽으로 질과 연결됐고, 양쪽으로 뻗어나온 두 개의 팔과 같은 난관 끝에 달걀을 닮은 난소가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만 봐서는 질이 인체의 수직축과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직관적으로도 그래 보입니다. 대개 질은 무언가를 배출하는 역할을 많이 하거든요. 월경혈이 그렇고 출산이 그러하듯이요. 그래서 처음 탐폰을 쓰는 이 중에는 수직 방향으로 탐폰을 삽입하려다가 통증과 불편함을 느끼고 이 불쾌한 기억 때문에 사용을 꺼리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그러나 여성의 질과 자궁은 이렇게 수직선상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이는 [그림2]처럼 몸의 측면에서 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의 골반 내부에는 방광과 자궁, 직장 등이 있습니다. 방광과 연결된 요관, 자궁과 연결된 질, 직장과 연결된 항문은 수직 방향이라기보다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는 직립보행을 하는 인체의 특성상 아주 당연한 ‘구조역학적’ 디자인입니다.

여성들의 탐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2차원 자궁 모식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 생리대 코너. 연합뉴스

여성들의 탐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2차원 자궁 모식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 생리대 코너. 연합뉴스


저장과 배출의 균형을 맞추다

방광과 자궁, 직장은 각자 그 대상은 달라도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저장하고 배출하는 기관입니다. 무언가를 저장하려면 해당 기관은 주기적으로 팽창하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육상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수직 방향으로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언가 무거워진다는 건, 이를 지탱하는 데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네발짐승의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들은 외부로 열린 배출구가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수평 방향으로 있기에, 배출구와 연결된 저장기관이 크고 무거워지더라도 배출 압력을 상대적으로 덜 받거든요.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었던 직립 자세로 인해, 인체는 구조상 배출구가 중력과 같은 방향에 놓이게 됐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내부에 무언가를 채울수록 배출 압력이 급격히 커지는데, 그렇다고 아무 때나 마구 배출할 수도 없고 이미 만들어진 배출구를 몸의 다른 곳에 뚫을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골반 장기들의 배출구, 즉 방광과 요도, 자궁과 질, 대장과 항문은 배출 압력을 줄이기 위해 기울어져 있습니다(직장의 끝부분이 꺾인 것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변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중력의 압박은 강해서 치질은 인류가 직립을 대가로 얻은 고질병이 되었지요.

저장과 배출의 기능이 같다고 해서 이들 기관이 모두 같은 압력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최고의 압력을 견디도록 설계된 곳이 자궁입니다. 평소에는 별로 부담이 없겠지만, 임신하면 수㎏의 무게를 몇 개월이나 절대로 새지 않도록 버텨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니까요. 만약 적당한 때가 되기 전에 중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궁경부가 열리면, 유산과 조산으로 이어져 태아를 잃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따라서 질의 각도는 신체의 수직축이 아니라, 몸의 앞쪽에서 시작해 뒤쪽 사선으로 비스듬히 올라가 있으며(그리하여 탐폰 사용의 올바른 방향은 몸의 수직축이 아니라, 앞에서 뒤로 올라가는 사선 방향입니다), 자궁경부는 질의 안쪽 끝부분과 거의 직각으로 꺾여 자궁은 반대로 몸 앞쪽으로 기운 상태로 있습니다. 이렇게 기울어 있어야 임신 말기로 갈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태아의 무게로 인한 배출 압력을 효과적으로 상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방향 자체가 꺾여 있고 평소에도 자궁경부는 월경혈이 흘러나올 정도의 틈만 겨우 있을 정도로 닫혀 있기에, 탐폰을 아무리 깊게 밀어넣는다고 해도 결국 자궁경부에 막혀 더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탐폰을 몸속에서 잃어버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죠.

자궁경부와 질의 굴곡진 만남

여담으로, 질과 자궁의 이런 직각에 가까운 구조적 위치는 임신 중에 태아를 잘 받치는 훌륭한 역학적 디자인으로 기능하지만, 막상 아기가 태어날 때는 꽤나 장애가 됩니다. 인간 여성의 출산이 다른 동물보다 훨씬 더 길고 고통스러운 것은, 인간 여성의 몸에 비해 태아가 상대적으로 큰 것도 한 이유지만, 사정없이 꺾인 자궁과 질의 연결도 한몫합니다. 출산시 태아는 자궁경부에서 진행 방향을 크게 꺾어 돌아 나와야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궁경부가 열려 분만이 막바지에 다다랐음에도 아기가 나오지 못하고 난산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한 발이 산도 쪽에 가까운 역아(逆兒)인 경우, 난산이 될 확률이 높은 것도 발부터 나오면 머리부터 진행할 때보다 방향 전환을 하기 훨씬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출산의 고통은 신성하거나 원죄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중력이 있는 행성에서 직립 구조로 살아가는 포유동물이 출산할 때까지 태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자연선택된 특성으로 인한 부작용일 뿐이죠. 흔히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한 모식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2차원으로 인쇄된 자궁 모식도를 아는 것과 내 몸의 3차원적 구조와 직립보행이라는 특성, 지구라는 환경의 세 교집합 사이에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은 다른 관점일 수 있습니다. 이를 알면 막연한 두려움은 줄고 선택과 이해의 폭이 넓어질 가능성이 커지지요.

(원래 이번 칼럼에서는 인공자궁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인공자궁을 이야기하려면 자궁 자체의 특성을 아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다음 칼럼에서 본격적으로 인공자궁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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