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3천통의 우편물과 싸우는 비정규직 집배원 이봉숙씨의 하루
전국의 집배원 40%가 서울 경기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 가운데 경기도 한 지역에서 일하는 이봉숙(42)씨는 ‘집배원 아줌마’다. 집배원 아저씨 틈에서 집배일을 한 지는 3년. 처음엔 재택근무를 했다. 우체국에서 일정 구역의 우편물을 모두 받아 배달하는 용역이다. “근처 아파트 단지에 우편물을 넣는 일이죠. 하다 보니까 재미가 있어 열심히 했어요.” 아파트 30개 동을 돌며 하루 평균 2500통 정도의 우편물을 배달했다. 부지런히 다녀도 원래 약속한 6시간보다 더 걸렸다. “우리 아들 둘이서 많이 도와줬어요. 나중에는 저보다 더 잘했어요.”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니 당연히 집배원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다.
기중기 앞으로도 우편물은 간다
재택근무에서 비정규직인 상시 집배원이 된 그의 경력을 따라가보면 대한민국 집배원의 현황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정보통신부인들 지난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의 바람을 피할 수 있었으랴. 그 바람의 칼날이 주로 집배원을 중심으로 휘둘려졌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나라경제를 살리기 위해 5700개의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렇게 하고 5년 동안 우체국은 그때 그 직원 수 그대로다. 하지만 반대로 국민이 일인당 받아보는 우편량은 그 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늘어났다. 휴대폰 고지서에서 각종 세금 고지서, 백화점 광고물, 단체 홍보물…. 배달해야 할 것들은 산처럼 쌓였는데 집배원 수는 한정돼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임시로 재택근무원을 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잖아도 부족한 집배원의 이직률이 높아 번번이 자리가 비기 때문이다. 정원을 늘릴 수 없다는 방침에 묶여 비정규직이 된 이봉숙씨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안일을 얼른 챙겨두고 7시에 우체국으로 출근한다. 배달할 등기 소포물을 챙기고 10∼11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토바이를 몰고 나간다. 편지 하나 가지고 동네를 뱅뱅 돌지 않으려면 머릿속에 ‘주소’와 건물의 ‘위치’를 잘 외워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 “주소만 가지고 집을 찾는 게 어렵게 돼 있잖아요. 주소대로만 가면 간 곳을 다시 가기 십상이니까요.”
요즘 그는 하루에 약 3천통의 우편물을 돌린다. 아파트 단지와 오피스텔을 일일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한 건물 끝내고 내려오면 또 저 높은 건물. 길가에 오피스텔 신축공사가 있으면 더럭 겁이 난다. “또 누군가 저기를 올라가야 할 텐데….” 도시 여기저기서 공사가 한창이다. 조립식 컨테이너 박스에도 우편물이 가나요? “그럼요. 우편물이 안 가는 데가 어디 있나요? 공사현장에 서 있는 기중기 앞으로도 편지가 오는데요.” 기중기 앞으로? “등기우편물 같은 거 가져가면 위에서 기사가 그 아래 어디 꽂아두고 가라고 소리 질러요.” 우편물은 어디든 간다. “논 번지 밭 번지까지 다 나오거든요. 허허벌판이라도 주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지요.”
다시 우체국으로 귀환하는 게 오후 4∼5시. 그러나 일은 또 기다린다. 쉴 틈도 없이 다음날 우편물 분류를 해야 한다. 4∼5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다. 10시 전에 끝나면 다행. 집에 오면 11시. 그는 파김치가 된들 바로 쉴 수 없는 주부다. 이런 하루하루가 한달이면 스무날 꼬박 이어진다. 일요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은 너무너무 늘고 사람은 줄고…
“일요일날 쉬면 그 다음 월·화요일까지 너무 힘드니까 모두들 차라리 일요일날 일하는 게 마음 편한 거죠. 결국 자기가 맡은 구역의 것은 혼자 해야 하니까요.”
집배원들은 아무리 일이 ‘눈처럼 쌓여도’ 옆 동료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인심이 사나워서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도와줄 수 없는 처지다. 벽에 붙어 있는 ‘집배원의 올바른 자세’에서 유독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에 띈다. “…나 혼자 처리해야 된다는 책임감과 신념으로 일하고….”
“우리는 팔이 부러져도 나와요.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마음이 안 편해요. 내가 이렇게 누워 있으면 내 동료가 얼마나 힘들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죠.” 함께 자리한 노조지부장 박문규씨가 설명해준다.
“과로사로 의식 잃고 병원에 실려 가는 사람, 병 얻어 입원하는 사람… 그뿐인가요. 대부분 집배원들은 제대로 가장 노릇 잘 못해요. 아니, 아이들이 아버지 얼굴을 볼 수가 있어야지요!” 이봉숙씨가 그런 어려움이야 이미 몸에 배었다는 듯이 옆에서 조용히 웃는다. “모두 각자가 맡은 구역을 감당하려는 책임감 때문에 묵묵히 일합니다. 내 구역, 내 민원인이라는 생각에 힘들어도 끝까지 하려고 하죠.”
“대도시쪽으로는 일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아요. 그런데 이 지역 집배원의 이직률은 절반을 넘어서는 실정입니다.” 일은 ‘너무너무’ 많고 보수는 적은데다 대부분 비정규직이니 성취감이 있을 리 없는 처지다. “정리해고한 수의 배를 충원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런데도 행자부에서는 좀처럼 움직이려 들지 않아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박 지부장의 목소리는 말이 계속될수록 톤이 높아졌다.
이봉숙씨를 따라 집배실로 들어갔다. 홈쇼핑 카탈로그 묶음이 중간에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다. 저 태산을 어떻게 무너뜨리려나. “일이 겁난다”는 말이 생각났다. “하하하, 겁은 좀 나죠. 그렇지만 저희 일인데요.” 이봉숙씨가 생긋하며 용감하게 우편물 뭉치를 턱 잡는다. 앉지도 않은 채 주소를 보며 분류함에 쏙쏙 집어넣는다. 무슨 기계로 코드 인식하고 하던데, 여기서는 그렇게 안 하세요?
“아, 그건 집중국에서 하는 거죠. 우편번호를 잘 쓰면 도움이 되는데… 결국 주소를 봐야 돼요.” 이곳은 현대화의 종착점. 최첨단이니 혁신적 현대화니 해도 그런 기계가 무슨 소용 있으랴. 가가호호 우편물이 가는 데는 결국 인간의 손과 발만이 힘을 발휘한다. 옆자리 동료 집배원은 도장을 쾅쾅 찍고 있었다. “반송된 겁니다. 다시 보내야 하거든요.” 피곤에 지친 그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저쪽에서 쿨룩쿨룩 기침소리가 났다. “저 친구는 폐가 안 좋은데도 그냥 나와서 일해요. 분류작업이라도 돕겠다고요.” 박 지부장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한다.
“확인전화한다고 화내지 마세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을 가리지 않고 같이해요. 그러면서 말은 다르니 기분이 좋을 리 없죠. 또 말만 달라요? 대우도 다르죠. 정말 미안하죠. 답답하기도 하고. 그러니 우리가 하는 말이 주5일제 근무 도입해 같이 나눠 가지자는 말이거든요. 우리 시간외 수당 받지 말고 충원해서 함께 일하겠다는 말입니다. 지금 창구직원들도 허리·목 디스크병은 아주 기본입니다, 기본….” 박 지부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이전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이봉숙씨에게 물었다. 일하면서 특히 힘들 때가 언제죠? “등기소포는 직접 전해줘야 하거든요. 고층아파트면 미리 전화해보고 가는데, 그냥 바로 올 것이지 전화는 왜 하느냐고 화내는 분들이 있고… 특히 아이들이 그럴 때는 더욱 기분이 울적해요. 등기물을 경비실에 맡기면 경비실에 맡긴다고 화를 내고 직접 가면 가지고 왔다고 뭐라 하고….” 그는 아무래도 아파트 지역이 인간적인 정이 덜한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그래도 요즘은 집배원 일이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기운이 나죠.”
그래도 누가 붙잡고 얘기할까봐 겁난다. 뭘 물어보거나 불만이 있거나 또는 인사를 한다 해도 그렇다. “워낙 일이 밀려 있으니 조금만 지체하면 뒤에 기다리는 분 생각이 나서요. 늦다고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어떤 우편물이 가장 많은가요? “고지서예요. 반갑지 않아도 꼭 받아야 할 거 잖아요.” 어떤 것을 배달할 때가 가장 흐뭇하세요? “편지요.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특별히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배원은 우리 사회의 모세혈관이다. 구석구석 가리지 않고 따스한 온기까지 함께 전달해주는 실핏줄. 가장 오랫동안 가장 힘겹게 걸어온 그들의 고달픈 발걸음에 힘이 실릴 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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