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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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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쓰레기도 치웁니다”

등록 2002-07-17 00:00 수정 2020-05-03 04:22

부산 사하구청 환경미화원 남일씨, 그가 을 내는 이유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산 사하구청 환경미화원이며, 소식지 의 편집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일(46)씨였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내 기사를 소식지에 전재해도 괜찮으냐는 것이었다. 일제시대 교사근무를 ‘친일’이라고 반성하며 수십년간 학교와 동네를 청소하며 살아가는 어느 노인분의 이야기였다. 흔쾌히 오케이. 일주일 뒤 소식지가 날아왔다. 남 편집장이 어떤 사람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그가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지는 6년이 되어간다. 월간인 소식지를 낸 지는 거의 1년. 그 동기를 남일 편집장에게 물어보았다.

와의 만남

“우리가 종이를 많이 만지거든요. 그런데 우리 얘기를 담아서 우리 것을 보여주는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공무원들의 시각교정을 위한 것도 있고요.” 달마다 스무쪽 안팎으로 내는 은 사하구청 200여명 조합원들이 재미있게 읽는 ‘꽤 성공한 소식지’다.

청소하는 일과 소식지를 펴내는 일을 연결시킨 그의 이력은 무엇일까? “저요? 뭐, 가파르게 살았지요. 밑에 일들 안 해본 것도 없고…. 그러니까 그동안 뭘 했나….”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김밥장사, 떡장사… 제가 서울로 올라온 까닭을 설명하자면 하, 이것 참 한참 거슬러올라가야겠네요.”

그의 고향은 주문진이다. 인텔리인 부친은 배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학비도 제대로 낼 수 없는 가난 속에서 남일 학생은 중2 때 응어리 맺힌 가슴을 안고 집을 나와버렸다. 집에서 50리 떨어진 강릉으로 가서 보증금을 걸고 ‘아이스케키’ 장사를 시작했다. 어린 학생이 난생 처음 돈을 모아야겠다 작심하고 라면만 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중국집에 부식조달을 하던 친구 덕에 자장면 가게에 취직했다. 3천원 월급 가운데 2790원을 주인을 통해 적금을 넣었다.

그때 그를 찾아온 어머니에 의해 서울로 보내져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무렵 트랜지스터 수리기술을 배웠다. 전파사에서 일하다가 망개떡 장사를 하는 친구가 하루에 1천∼2천원을 버는 걸 보고 전업해버렸다. 당시 한달 월급이라야 고작 3천원이었다. “거기서부터 일탈이 시작된 거지요. 하하하….” 떡판을 둘러메고 서울 시내 안 가본 곳 없이 다녔다. 아침에 길을 나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했다. 여관·다방·술집… 골목골목을 다니며 떡을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떡판을 메고 서점을 지나다가 우연히 ‘병신자식을 낳은 마음’이라는 제목의 라는 책자를 보았다. 알고 보니 정신이 올곧지 않은 지식인을 일컬어 비판한 글이었는데, 평소 장애인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던 그의 눈길을 잡아끈 것이다. 그 글은 사회문제에 대해 그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는 얇아서 떡판 밑에 넣고 다니기에도 좋았다. 버스를 타도 읽고 쉴 때도 읽으며 노상 그렇게 살았다. 그 뒤 청계천 헌 책방 거리를 서성거리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사상계를 비롯한 ‘그쪽’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하며 사회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얻기 시작했다. ‘참 후회 없이 산 시기’였던 그때를 지금도 ‘내 인생의 전기’로 여기고 있다. 부엌용품·아동서적류·영어테이프 등을 파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던 무렵 그는 지를 만났다. 아직 정식등록을 하기 전이었다. 대학가를 다니며 구독권유를 해달라는 청이 따라왔다.

부자 마을과 가난한 마을의 차이

“사서 보는 것은 좋은데 저걸 만지면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 많이 했습니다. 결국 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6·10항쟁을 화염병 들고 겪었다. “저야 그 당시 누군가 말한 ‘밥풀떼기’였지요.” 차차 그는 지역문제에 깊이 빠졌다. 구리 노동문제상담소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상담간사를 했다. 원진 레이온 일에도 참여했다. 그는 늘 운동을 할 때라도 자신이 앞에 나서서 일하기보다는 꼭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미리 챙기는 쪽을 택한다. 예컨대 승산이 ‘거의 없는’ 선거운동을 할 때도 그가 가장 신경쓰는 일은 후배들이 뭘 먹으며 지내는가이다. 자기 주머니 탈탈 털어서 쌀 사고 반찬 만들어 먹인다. 그것도 모자라면 집에 전화해서 몇달 장사할 거라고 둘러대며 돈 좀 부치라고 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부인은 적금을 깨서 보내주었다.

그는 결혼을 일찍 했다. 큰아들은 벌써 군대에 갔다. 지금껏 무던히 지켜온 ‘안해’를 “사람 잘못 만나서 고생 많이 한 사람”이란다. 부부는 동거 12년 만에 서울시립대 교정에서 ‘종자 불같은 두 아들을 앞세우고 노동하는 한순자와 더불어 살아가던 남일, 진달래 개나리 흐드러진 사월봄날 하루 베어 동지들이 지켜주는 속에서 시집장가’갔다.

뒤에 월간지 정기구독팀을 맡아 일하다가 부산지사 쪽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일 저일과 함께 당시 부산에 몰려오던 러시아 보따리 장사들을 위한 부산을 알리는 책자를 내기도 했다. 남 편집장은 어느 사이 글을 만지고 의견을 꾸리는 일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집안에 보탬되는 일보다 밖의 일을 챙기는 동안’ 두 아들은 벌써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만큼 커버렸다. 그의 어머니가 조심스레 환경미화원 일을 제안했을 때 그는 선뜻 응했다. ”자녀 학자금을 주고 밤에 일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월급 받으면서 아이들에게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낮에는 시민단체에서 반상근으로 일할 욕심은 일찌감치부터 있었다. 그러나 문전수거원(집앞의 쓰레기를 집하장으로 갖다두는 일)이 되는 데는 1년이 걸렸다. 시간대중이 안 되는 대기조로 일할 때는 마음고생에 술도 마셨다. 안해가 “안하셔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버텼다.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그는 부자 마을과 가난한 마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쓰레기 양이 적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아니에요. 집이 좁으니 오래둘 수도 없고 그날그날 사다 먹으니 버려야할 게 많지요.”

그가 동료들과 함께 소식지를 만들기로 뜻을 모은 것은 선별장에서 일하면서부터다.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정리하면서 종일토록 얘기를 나누게 되니 마음이 통한 것이다.

그는 지금은 상차원이다. 쓰레기 수거차와 함께 다니며 일한다. 그 전에 문전수거일을 할 때는 특별히 화요일을 기다렸다. 종이·헌옷가지를 수거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책이 눈에 보이면 눈이 번쩍 뜨였다.

“느슨해질까봐 겁이 나요”

“읽을 만한 책이 보이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헌 방책방에서도 60%의 값으로 사야 하는데 말이지요. 제가 고르는 책들은 주로 사회과학 서적들이지요. 누군가 빨간 펜으로 열심히 줄을 긋고 읽은 흔적들을 보면서 이 사람은 왜 이 책을 버렸을까, 남자일 경우 마음이 변했나? 여자는 결혼이나 취직을 하느라 이 책을 던져버린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읽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본 뒤에도 그는 믿고 있다. ‘모든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고쳐쓰면 이보다 훌륭한 이론이나 사상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안주할까봐 두렵다고 고백한다. 안주라니 어떤 면에서요? “월급이라고는 젊었을 적에 가구공장 다닐 때 받은 것 외에는 거의 없지요. 그런데 요즘은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며 살고 있잖아요. 그런 대로 생활이 되니까 느슨해질까봐 겁이 나요. 다른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 집 사고 하는데 나는 뭐 이런 소식지 만든다고 끙끙거리다 보면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럴 적마다 내 자신이 현실에 매몰되고 안주하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이만하면 안주해도 괜찮지 않으시냐, 오히려 소박한 꿈이 아닌가요?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세상을 살아가는 게 몇푼의 돈, 먹고사는 일만은 아니지 않겠어요? 생각도 많이 하고 눈 나빠지기 전에 책도 많이 보고 싶습니다.”

소식지는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정례교육 시간에 조합원들에게 나눠준다. 이번 호에는 기초단체장 선거에 나간 전국의 환경미화원 후보들에 대한 기사와 선배들 만난 인터뷰 기사, 여름나기 건강법 등 쏠쏠한 재미가 가득하다.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코너는? “뒤에 후원금 내는 분들 명단을 싣는데요. 거기에 이름이 제대로 올랐는지 모두들 보시지요. 빠뜨리면 큰일나요.”

남 편집장은 언젠가 부산시 전체 환경미화원이 포함된 2천여명 노조원들이 읽는 노보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누가 읽든, 누구에게 읽히든 간에 그는 건강하고 정직한 글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다. 만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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