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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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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참여로 누군가 행복해져요”

등록 2002-08-01 00:00 수정 2020-05-03 04:22

명분있는 공연으로 연예계 사람들을 만나는 공익문화사업 기획자 탁현민

탁현민(29)씨는 약간 지쳐보였다. 여름 타나보죠? “아니오. 그게 아니라 요즘 그 일 때문에 엄청 시달렸거든요.” 그 일이란 이른바 ‘홍보비 사건’이다. 대중음악 개혁포럼의 멤버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물어오면 성의껏 답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이다.

“못하겠다”가 유일하게 못하는 것

“공연기획 일을 해오면서 가수나 제작자들을 만나며 죽 들어온 얘기가 대중음악의 병폐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지난해 12월에 우리 포럼을 만들었지요. 모여서 얘기 해보자, 병폐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해보고 운동차원으로 승화시켜보자.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가수나 기획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보자 한 거죠. 얘기할수록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간 문제제기도 하고 문화연대와 공청회도 열고 하던 중인데 PR비 사태가 터진 겁니다. 병폐가 수면 위로 올라온 거죠.” 주위에 있는 대중음악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주로 탁현민씨에게 털어놓는다. 대중음악계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들이라 피해자이면서 일면 가해자인 이들도 있다. 그러니 섣불리 말할 입장이 못 된다. 그런 이들이 이런저런 사정을 밝혀 얘기해주기엔 탁씨가 적격이다. 시민단체의 문화사업국에서 일한 경력이 이는 그는 대가성으로 뭘 준 것도 없고, 받은 것은 더 더욱 없는 입장이다. “모두 취합해서 얘기를 하다 보니 이번 사건에서 일종의 채널이 된 거죠. 코멘트해달라 좌담회에 참석해달라. 이상하게 바쁜 거죠.”

그는 ‘공익문화기획센터 탁’의 대표다. 명함에는 기획실장이라고 되어 있다. 왜? “업계의 관행이죠. 대표라고 하기엔 아직은 좀 그렇잖아요.” 젊은 나이에 그보다 더 젊어 보이는 얼굴에 티셔츠 청바지 샌들차림. 아무래도 대표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업계의 관행’에 따라 낮춰 말한다. 공연기획 일을 시작한 것은 사실 대학 3학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하려고 알아보니 다른 데는 다 마감이 되고 남은 게 학내 음악연구소였거든요.” 주로 종교음악에 관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알바’학생이 연구소 기금마련 겸 음악회를 한번 열어보자고 제안했다. 주위 교수들은 그것 좋지 한번 해보라는 말로 적극 지원했다. 해금과 파이프 오르간의 만남을 시도한 음악회는 유료입장이었는데 한 500장이 팔렸다. 당시 공짜 표는 몇장? “아, 물론 더 많이 나갔지요.” 그래도 기금마련 목표는 달성했다. 일찍이 흥행을 짚을 줄 아는 안목으로 학창시절 그는 몇번의 연주회를 더 성공시켰다.

학교공부를 하면서 문학적인 그의 재능을 살려 참여연대 일도 도왔다. 개혁통신 쪽에서 글쓰는 일을 하며 역시 공연기획을 맡기도 했는데 그는 만능 기획인이었다. 후원회 행사 초청 가수인 한영애씨가 날짜 임박해서 코러스를 붙여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어떻게 하나 대책이 없었는데 모두들 저를 지목하더군요.” 그래서 후배 두명과 함께 코러스를 깔았다. 잘했나요? “잘했다고 매니저가 공연 전에는 이소라의 프로포즈 나갈 때도 부탁한다더니 연락이 전혀 없던데요!?” 그는 어느 상황이나 피하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못하는 것은 ‘못하겠다’라는 말이다.

그의 원래 꿈은 시인이었다. 대학도 애초엔 문예창작과를 다녔다. 나중에 다른 과로 편입학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현민씨는 시인의 길을 걸으리라고 스스로 믿었다. 다양한 백일장, 각종 문예상 경력이 그를 받쳐주고 있었다. 그는 “상을 받을 수 있는 코드를 좀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장담했다. 그 비법을 내게 전수해주면 안 될까요? 주부 백일장에서 내거는 에어컨 또는 김치냉장고와 유럽여행권. 게다가 시인으로 데뷔까지! 대답 대신 현민씨는 내게 딱한 눈빛을 던지더니 말꼬리를 돌렸다. “군대 갔다오니 시 쓰던 선배들이 시의 시대는 갔다면서 길을 바꾸라더군요.” 운동의 주변에 있으면서 사회현실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던 현민씨. 그는 또 다른 표현방법이 있으리라 믿으며 시를 유보하고 신영복 교수가 있는 대학으로 가서 사회학을 공부하기로 작심했다. 은 그 전에 고2 때 만났다.

‘망하려면 서른 전에 망하라’

“담배 피우다가 하루 만에 연속으로 세번 걸린 적이 있었어요. 아침에 교실에서 피우다가 걸려서 맞고, 점심 때 화장실에서 걸려서 맞고, 야간자습 땡땡이치고 피우다가 걸려 또 끌려가 맞고. 국어 선생님한테 열나게 맞고 훈화말씀을 듣고 서 있는데 시선을 둘 데가 참 마땅찮더라고요.” 마침 선생님 뒤쪽 책꽂이에 이 있었다. 야, 학교가 감옥이지, 딴 데가 감옥이냐, 당장 저 책부터 읽어야지. 그날 밤 물론 그 책을 사봤다.

들국화의 전인권씨를 비롯해 많은 가수들은 아직도 그를 탁간사라고 부른다. 참여연대 문화사업국에서 간사로 일한 경력 때문이다. 학교졸업 뒤 국내 굴지의 기획사에 들어갈 뻔했지만 스스로 기수를 돌려 참여연대로 갔다. 처음에 그는 고장난 전화기 고치고 형광등 갈아끼우고 남의 컴퓨터 고치고 그랬다. 후원회의 밤이나, 재정사업이라야 고작 1년에 한두번이었고 시민운동과 대중문화를 접목하는 방법에서 아직은 초기단계였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대중음악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인터넷을 통한 의견조사를 해보았다. 시민들의 성향을 파악한 콘서트 기획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었다. 그 이후 다른 단체에서도 공연기획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익단체나 재정홍보가 목적인 단체들은 분명히 공연이 필요한데 그쪽을 맡아줄 사람이 없는 형편”이라서 탁간사는 자신이 그 일을 맡을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대중음악과의 좀더 폭넓은 만남을 위해 그는 참여연대라는 후광을 벗기로 했다. 기획자로 독립하리란 결심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혼 2년 차인 아내가 지침을 정해주었다. ‘망하려면 서른 전에 망하라’. 앞으로 그는 돈을 벌게 되더라도 개인재산으로 하지 않고 사단법인으로 할 계획이다.

기획자로서 자신을 성공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가? “올 3월부터 지금까지 한 일로 보면 고무적이지요. 다섯달 동안 열개의 공연을 유치했거든요. 작은 이벤트까지 합하면 더 많아요. 전보다 폭넓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하니 점점 더 사업 욕심이 생기고 어떻게 하면 공익적인 것으로 하나 하는 욕심도 생기고 그렇습니다.”

스스로 어떤 면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고 믿는가? “전에나 지금이나 저는 제 안위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명분 있는 공연으로 연예계 사람들을 만나죠. 당신의 참여로 누가 행복해지고 누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지 이야기하면 상대방도 좋은 일 한번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제게 있는 강점이죠. 이로써 공익문화사업의 가능성이 열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섯달 동안 열개의 공연 유치

그가 꿈꾸는 공연은 어떤 모습인가? “저는 돈으로 표를 사오는 사람들의 공연이 아니라 초청받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공연을 하고 싶어요. 미국의 디바 공연은 아동들에게 악기를 사주는 재단에 기부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공연이지요. 옴니버스 공연은 절대 안 하는 셀린 디옹, 브리티니 같은 세계 정상의 가수들이 한자리에 나와요. 그러니 이 공연을 보려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기부를 하거든요.” 지난해 국내 여성 가수들이 서는 음악회를 열었는데 누가 후원해주면 해마다 열고 싶은 공연이란다. 외국 그룹 가운데 공연을 기획해주고 싶은 그룹은? “U2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정확히 내거든요. 음악인이 음악성도 뛰어나야 하지만 그 음악을 듣는 대상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음악은 시보다, 말보다 더 직접적인 수단인데 그 안에 메시지가 없다면 바람직하지 않죠.” 대중음악의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도 열을 올려 얘기했다.

“지금 대중음악 전반의 문제가 불거져나오는데도 가수들은 자기 목소리를 못 내요. 다른 문제가 있지만 가수들의 작가주의적 성향 탓도 있지요. 음악만으로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는 이도 있고요. 특히 정상에 있는 가수들이 대중음악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아직 안 하고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현재로선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곧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저버리지 않아요.”

그는 훌륭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대중음악과 공익을 서로 손잡게 해주는 일을 해서 그렇게 되고 싶다. ‘바꿀 것보다 지킬 것이 더 많은 세상’을 맞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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