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와 폭행에서 해방된 탈 성매매 여성 미나씨가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미나씨는 미용 수업을 하다 말고 왔다.
“파마머리 마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종일 서서 하는 일이라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 완전히 중노동이에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배우는 재미가 얼굴에 그린 듯 나타나 있다. 미나씨는 탈성매매 피해여성 보호시설인 이곳 쉼터에서 생활한 지 1년이 넘었다.
“사소한 것뿐만 아니라 제 생활 전체가 바뀌었어요. 바뀌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부터 다 바뀌었어요.” 미나씨는 18살 때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5년여 정도 일했다.
열여섯에 집을 나오다
“일을 열심히 했는데 빚이 산더미같이 늘어났어요. 제가 갚을 상황이 도저히 안되니까 주인이 저를 사창가로 팔아넘기려고 해서요 너무 겁이 났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 상황까지 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도대체 사람들은 제대로 알려고나 하는가 이들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성단체들이 있지만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조차 성매매 여성을 웃음거리로 삼을 만큼 한심한 정도다.
탈성매매 여성으로 씩씩하게 생활하는 미나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나까지 씩씩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좀 긴장되기도 했다. 멍청한 이 사회의 잣대를 나도 혹시 가지고 있지 않은지 몇번이나 확인했다. 밝은 표정과 태도로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해주는 미나씨는 참으로 똑똑한 여성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데 아직 상황이 끝난 게 아니에요. 업주가 저를 사기죄로 고소해놓은 상태라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거든요.” 미나씨가 일하던 업소의 주인은 미나씨가 선불금을 떼먹고 도망쳤다고 고소했다. 그러나 얼마 전 한 지방법원에서 선불금은 갚을 의무가 없는 돈이라고 한 판례가 있어 미나씨는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
올해 스물세살인 미나씨는 열여섯살에 집을 나왔다. “엄마·아빠가 이혼을 하셨거든요. 저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엄마를 찾는 편이어서 엄마가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얼마 안 있어 새엄마가 들어왔는데 저하고 너무 안 맞았어요.” 새엄마는 결벽증이 있는데다 성격이 워낙 깐깐했다. 게다가 미나가 책상에 앉아 있을라치면 불러서 일을 시키곤 하는 바람에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새엄마가 너무 그러니까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었어요. 집에 있기가 너무 싫었어요.” 무작정 집을 나온 게 중3 겨울방학 전이다.
“처음 1, 2년은 식당이나 레스토랑 같은 데서 일했어요. 아무리 집을 나왔어도 절대로 엉뚱한 데로 빠지진 않겠다고 다짐하면서요.” 나이가 어린 게 탄로나면 집에 연락할까봐 “미성년이 풀릴 때”까지는 일터를 자주 옮겨다녀야 했다. 한번은 숯불갈비집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내 사정도 알고 이해해주었어요. 종일 고기를 만지고 나면 손이 누래졌어요. 불판 석쇠를 양잿물 같은 데 담가놓았다가 브러시로 닦아내는데, 얼마나 힘든지 남자들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했어요.”
고생스러운 생활이었지만 집이 아니어서 너무 좋았다. 그렇게 집이 싫었느냐고 물으니 미나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그때는 그랬어요. 지금 같으면 절대 집을 나오지 않았겠지만요. 절대.” 미나씨는 입술을 앙다문다. 한 2년 그렇게 지나다가 돈을 더 벌어야 했다.
“혼자 살아도 방값에 저축·보험·찻삯 등등 계산이 안 맞아서요. 벼룩시장 광고 보고 술집 같은 곳으로 찾아갔어요. 처음엔 식당일도 하면서 나갔어요. 아르바이트로 했는데 얼마 안 가서 그쪽으로만 나갔지요. 첫 번째 주인은 빚 지우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돈을 좀 벌 수 있었어요.”
처음엔 하룻저녁에 고기집에서 한달 월급으로 받던 돈을 손에 쥐기도 했다. “술집에서 일한다는 게 대충 어떤 데라는 정도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그리고 2차 같은 건 내가 안 하겠다면 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술집에서 근무시간은 저녁 7시에 시작해서 대충 다음날 새벽 5∼6시가 되어야 끝난다. 매일 술을 마셔야 했다. 몸이 아파도 지각도, 결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결근비는 하루에 30만원이었어요. 그걸 영업비라고 하는데 자기가 빠지면 영업을 못하니 그 대신 돈을 내야 한다는 말이거든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거꾸로 갔다.
“정말 2차 나가는 게 싫었어요”
“일을 시작하게 되면 바로 빚이 생겨요. 친구 따라 두 번째 집에 갔을 땐데, 예를 들면 영업비는 기본이고 같이 일하는 친구가 생일이 되면 30만원씩 걷어주고, 주인이 생일이면 50만원씩이에요. 전부 그런 식이에요. 돈 단위도 높아지고 현실적이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빚이 안 늘어날 수 있나요. 그때는 월급 80만원에 2차 나가도 십몇만원 받았는데…. 돈은 무조건 주인이 맡아놓고 장부로 다 쓰게 하니까 현실감도 없고. 살수록 빚은 늘어가고…. 열몇살 어린 나이에 빚이 400만, 500만원 정도면 무지하게 큰 돈이지요. 그 돈을 안 갚으면 죽는 줄로 알고 꼼짝없이 매달려 일을 했지요.”
세월이 지날수록 빚은 수천만원대로 커졌다. 커지는 빚더미와 함께 미나는 스스로 너무나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사람들 보는 데서 일삼아 매를 맞으며 자신에 대한 존중감, 그런 것은 옛날에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 일이 싫으면 도망치지 왜 거기 있었느냐
“도망요 그거 소용없어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요. 꼭 잡아서 데리고 와요. 찾아다니는 동안 든 경비를 빚더미에 더 얹어주지요.” 그래서 대부분 아가씨들은 차라리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냥 이렇게 살자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사실 생각해보면 집 나올 때부터 자포자기한 것 같아요. 지금이야 생각할 시간도 있고 공간도 있으니 반성도 할 수 있지만 그동안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그 대신 매일 술 마시고 나가 어울려 놀고 그러면서 살았지요.” 미나씨가 말을 잇는다.
“그런데요, 전 정말 2차 나가는 게 싫었어요. 그런 데서 일하면서 그런 것을 싫어한다면 웃겠지만요, 전 정말 싫었거든요.” 그가 우물거리듯 말했다. “돈 때문에 항상 2차 가면 진짜 너무 부끄럽고 싫었어요. 아무나 집적거리고…. 매일 하긴 싫었지만 빚이 많았어요.”
성매매가 인신매매로 거의 자동적으로 연결돼가는 이 무시무시한 동굴로 여전히 “돈을 벌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미나씨는 너무나 안타깝다. “심지어 대학생들도 돈 벌겠다고 와요. 멋도 모르고 다들 오는데 그게 아니지요. 보면 몰라요 돈을 벌면 아직까지 왜 그러고 있겠어요”
그러나 그런 유혹은 지천에 널려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주위를 둘러보라. 혹은 인터넷 사이트를 클릭해보라. 보도방·단란주점·룸살롱·유리방…. “이곳은 정말 다른 곳, 우리는 한달 일하면 천몇백만원을 그냥 쥔다. 제일 못 버는 언니가 700만, 800만원 손에 쥔다. 돈 벌고 못 벌고는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광고한다. 어떤 룸살롱은 실제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돈이 일하는 당사자 손에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은 아버지의 손에 끌려…
집을 나온 지 8년이 지날 때까지 미나씨는 맨정신으로 집에 전화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술의 힘을 빌려 새벽에 전화해서 난리를 피운 적은 드물게 있다. 그런 딸을 냉정하게 대한 적도 있지만 이곳 쉼터로 딸을 데리고 온 것도 결국은 아버지의 힘이었다.
그녀는 가정의 행복은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믿는다. 만약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또 그렇더라도 집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수만번 되물었을 것이다. “부모가 제일 중요해요. 집이 온전해야 애들이 안전하잖아요. 여기 온 애들이 다 그래요. 부모가 이혼했거나 엄마가 구타를 당하거나…. 우리 같은 경우는 집에서 상처받고 사회에서 상처받고…. 가정이 제일 중요해요.”
미나씨는 대입 검정고시를 마쳤다. “중학교 졸업장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줬던가 봐요. 아빠가 갖다주셨어요. 저, 그래도 학교 다닐 때 모범생에 공부도 꽤 했어요. 하하하….” 그가 밝고 시원하게 웃는다. “여기 와서 컴퓨터그래픽·워드·한문 시험 치고, 미용시험 칠 거고, 내년에는 대학 가요. 방통대 가려고요.” 미나씨가 머뭇거리며 희망을 말했다.
“법무사 공부해서 사람들 도와주고 싶어요. 어려울까요 그래도 해볼래요.” 꿈을 말하는 미나씨. 얼마나 예쁜지! 그가 품은 꿈이야말로 이제까지 봐온 그 어떤 꿈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나씨의 등 너머로 지는 세모의 저녁 어스름이 동 트는 새해를 기약해주고 있었다.
자유기고가
‘권은정의 휴먼 포엠’을 마치며
그동안 ‘이름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많은 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부풀림 없이 한발 한발 인생을 걸어가는 분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어가는 재미가 더없이 컸다. 그 재미를 지속하게끔 여태 밀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행복하세염!
(다음부터는 영화배우 오지혜씨가 쓰는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가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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