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케케묵은, 그러나 아름다운…”

등록 2002-10-03 00:00 수정 2020-05-03 04:22

잠자고 있는 옛 시를 깨워 세상 한복판으로 끌어내는 ‘한글전용주의자’허경진 교수

그는 요즘 친구보다 옛날 친구가 더 많다. 요즘 친구들은 시간이 없어 만날 수 없지만 옛날 친구들은 날마다 만난다. 매월당·다산·교산·난설헌·석주·손곡…. 모두 그의 옛 친구들이다.

“요즘은 허균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데….” 연구실 가득 메운 자료집들을 가리키며 그가 웃어보인다. 을 펴낸 지 얼마 안 된 지금 그의 앞에 놓인 연구거리와 써야 할 책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허경진(50) 교수. 서점 한문학 코너에 가는 이들은 그의 이름을 피해서 서가를 훑을 수 없을 것이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서 한문학을 가르치는 그가 지금까지 엮어낸 한시집은 서가 한칸을 몽땅 메우고도 남는다.

한시를 현대시처럼!

사실 난 오래전부터 그를 ‘이름으로만’ 알아왔다. 한 20년 되었나? 그가 번역한 다산의 한시집을 읽으며 그를 알게 되었다. 참으로 자연스럽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번역한 시로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나도 모르게 그가 번역한 한시집을 찾아 읽었다. 그는 잠자고 있는 옛 시를 깨워 세상 한복판으로 끌어냈다.

“저는 학생들에게 말해요.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까닭이 학문을 위한 학문만을 고집하는 데서 나온다고요.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학도 세상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그 뜻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더불어 문학이 일종의 ‘사업성’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한쪽으로 깊이 들어가다 보면 사회와 동떨어진 공부가 되어 그런 책들은 써도 안 팔리고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져 악순환이 되풀이되지요. 사회기여뿐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 써야 할 부분도 있는데 이전 세대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대부분 논문으로만 학술활동을 한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그는 ‘현실성 있는’ 학문을 위해 기수를 돌린 사람이다.“석사까지 현대문학을 공부했어요. 당시 현대 시선들이 막 쏟아져나왔지요. 잘 팔리기도 했고요. 그런 것을 보며 문득 우리나라 한시는 왜 저렇게 안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한시는 읽기 어려운 것이었어요. 한문으로 되어 있으니 읽을 엄두가 안 나고 번역 자체도 어렵게 나왔지요. 당시 번역한 분들이 거의 일제시대 때 공부한 분들이라 우리 말로 옮기는 데 능숙하지 못한 게 사실이었지요.” 그는 어디 한번 우리 한시를 현대시처럼 번역 해볼까, 그래서 독자들에게 읽히는 한시가 되게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었다. “현실적인 공부를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출발한 거지요.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그가 이것을 처음 시도했을 때 출판사도 상당히 망설였다고 한다. 과연 케케묵은 한시를 번역해낸들 시장성은 있을지, 현상유지는 될지 싶었던 것이다. 처음엔 이름난 문장가들 중심으로 내면서 그 사이사이에 소개하고 싶은 보석들을 섞어서 내는 요령이 필요하기도 했다. “성공한 편이지요.” 당초 20권을 목표로 한 시선집은 이제 100권을 욕심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꼭 즐겁기만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이 분야에선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요.” 좀더 많은 이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매진했다면 한문학이 더 널리 소개되고 독자들도 골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을 게 아니냐는 말이다.

늘 한시를 지은 집안 분위기

막 개강을 해 학생들로 붐비는 교정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한적한 서당에서 글을 읽는 듯한 분위기로 이끈다. “가을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이 구슬처럼 반짝이는데/ 연꽃 둘린 깊숙한 곳에다 목란배를 매어 두었네./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꽃 따서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봐 한나절 부끄러웠었네.”(허난설헌의 )

그는 초기에 엮어낸 난설헌 초희의 시집을 이번에 다시 증보해서 엮었다. 조선시대 여성으로 너무나 걸출한 난설헌의 탁월한 시를 허 교수 덕에 훨씬 더 넉넉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문을 맛깔스런 한글로 풀어내는 그런 실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한문공부를 했을 거라고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특별히 한문 공부를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증조부께서 서당의 훈장을 지내셨고, 조부께서도 늘 한시를 지은 집안 분위기였을 뿐이라고 한다. “현대시를 하더라도 한문은 알아야겠다 싶은 생각에 학교에서 배울 때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마침내 제 전공이 된 거지요.” 그의 실력쯤 되면 모르는 한자가 없을 것 같다.

“아니오. 아직 모르는 거 많아요. 그런데 그건 문제가 아니지요. 모르면 사전 찾으면 되니까요. 중요한 것은 문리가 트인다는 거죠. 나름대로 문법의 체계를 익힐 줄 안다는 거예요.” 사실 그는 한글전용주의자다. “한시 번역에 심혈을 기울이는 까닭은 언젠가는 한문이 우리 생활에서 점차 멀어져 잊힐 텐데 그 전에 우리 조상들의 문학을 빨리 우리 말로 옮겨놓아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한문을 배운 사람이 많을수록 이 일은 더 빨리 진행이 될 거라며, 그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한문 작품들을 가능한 한 모두 한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글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한문에 매달리는 인생!

그의 연구실 사방을 둘러보며 나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나의 무지를 내심 한탄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온통 한자로만 된 자료 가운데 내가 읽을 수 있는 한자는 몇개 되지 않았다. 저 책 제목은 뭐지? 멀쩡히 보이는 글자를 실눈을 뜨고 보다가 마른기침을 하며 포기해버렸다. 대신 큰 소리로 질문했다. 요즘 연구하는 주제는 뭐예요?

“학술진흥원 지원금을 받아 연구원들과 학생들이 모두 함께하는 것인데 제목이, 잠깐만요….” 그는 저쪽으로 가더니 자료를 뒤적이며 말한다. ‘개항 전후 한국 전통사회의 변동과 근대화의 모색’. 그는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27년 연구생활이 몸에 밴 사람의 말투였다. 나는 자신 있게 한글로 또박또박 받아 적었다. 그가 진행하는 연구주제 가운데 또 하나는 고대소설 중 세책본에 관한 것이다. ‘세책본’이란 대여용으로 책을 빌려주기 위해 책에 재미를 더하고자 원전을 ‘변화시킨’ 책이다.

“을 두고 허균이 썼다 안 썼다 하는 것도 그래서 나온 말이에요. 19세기 이전까지는 문학을 돈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문학은 문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었잖아요. 각 문벌마다 한문집이 수천권이 있긴 하지만 상업성을 고려한 게 전혀 아니었지요. 그때 양반들은 벼슬보다는 문집이 있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양반도 장사를 하는 세상이 오게 되고, 문학을 돈으로 생각하는 장사꾼들이 등장하게 된 거지요. 사람들에게 돈 주고 책을 빌려주게 되면서 흥미를 더하려고 큰 줄거리만 놔두고 첨삭을 한 거지요. 그래서 이 원래와 다른 모습을 띠게 된 것입니다. 돈과 거리가 먼 문학이 바야흐로 세책본이 등장하면서 문학에 자본주의 개념이 들어간 거지요.”

한문학이 살아 숨쉰다

그는 한문학을 할수록 관심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오히려 고민이 된다고 말한다. 한문학이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낀다는 말로 들린다.

몇해 전 그는 안식년을 맞아 미국의 엔칭도서관에서 수많은 자료를 찾아내는 행복을 맛보았다. 옛 조선의 소설 자료가 한국보다 그곳에 더 많은 것 같았다. 국내외에서 캐내온 저 많은 자료를 그가 그냥 둘 리는 만무할 테고, 어느 시간에 저 걸 다시 그의 ‘한글’로 풀어낼까? 그가 학생들에게 부러운 점이 있다면 딱 한 가지. “시간이 많으니 하루에 열 시간도 넘게 공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지간한 욕심이다.

그는 단아하고 정확하다. 말투는 스타카토 식이고 어미도 늘 정확하게 같은 어조로 끝낸다. 걸음걸이도 아주 반듯하다. 저 사람의 안에서 풍요로운 한시가 곡선으로 흘러나오는 게 약간은 의아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옛 사람들의 문학세계에 몸을 담근 지 오래다. 그 호숫가에 이는 물이랑에 자신의 시심을 맛댄 이의 마음은 분명히 아름다운 곡선이다. 번잡한 현실을 피한 공부가 아니라 현실과 맞물려 가는 한학문. 우리 앞에 데려다주는 그의 옛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가 점점 커질 것 같다.

자유기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