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 구두 장인 임태화씨가 구두를 만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4주에 한 번 한겨레21에 ‘곤란한 책’ 원고를 씁니다. 저는 빨리 읽지도 못하고 빨리 쓰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감이 돌아올 때마다 책을 붙잡고 쩔쩔맵니다. 써질 때까지 읽고 쓰고 실패하고 고치고를 반복합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괜찮은 글을 쓰고 싶으니까요. 특별한 장인의식을 갖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일 앞에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겁니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저서 ‘장인’에서 누구에게나 장인의 마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장인의식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일 자체를 잘해내려는 마음은 인간의 근원적 충동입니다. 오늘 일하며 조금 더 나아질 방법을 궁리했다면, 당신 안에도 장인이 들어 있습니다.
장인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결과물만이 아닙니다. 장인의식은 잘되지 않는 것을 다시 해보고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결과에 다가가는 과정 자체에 있습니다. 원고를 쓰다보면 며칠 동안 붙잡았지만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쓰니 술술 풀립니다. 결과물만 보면 며칠을 허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패의 과정에서 몸에 남은 것이 있습니다. 다음번엔 더 나은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읽고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주제에 깊숙이 몰입하게 됩니다. 쓸 만한 생각은 이런 반복되는 과정의 순환 속에 등장합니다. 누군가 이 과정을 대신 해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피곤한 과정은 생략하고 눈앞에 답이 짠 하고 나타났으면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답은 내가 체득한 것이 아닙니다. 인공지능(AI)이란 도구가 갖는 곤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물리학자 빅토어 바이스코프는 컴퓨터 실험만으로 작업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가져온 실험 결과를 보면, 컴퓨터는 답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자네들은 모르는 것 같아.” 이 일화가 보여주는 것은 답을 얻는 것과 답을 아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AI는 과정을 건너뛸 수 있게 도와주지만 이 과정의 순환성을 끊어내 사용자가 체득지식을 쌓는 것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좋은 도구를 버리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AI는 체득을 대신 하는 도구가 아니라, 체득을 돕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직접 문장을 지어내고, 음악가라면 직접 연주해보고, 프로그래머라면 직접 코드를 짜보는 식으로요. 답을 먼저 내놓게 하기보다 내가 먼저 해본 것을 비춰보고 다음에 무엇을 시도할지 묻는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오히려 더 나은 자신을 창조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넷은 우리가 도구를 통해 더욱 인간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도구를 사용해 우리가 무엇이 되느냐입니다.
얼마 전 김애란 작가가 한 방송에 출연해 “인간한테는 있고 AI한테는 없는 것은 망설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존재가 망설인다/안 망설인다는 건 잘라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AI를 사용하다보면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는 (망설이는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기계의 버퍼링과 인간의 망설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게 진짜 망설임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타인의 내면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주제보다 흥미로운 것은 자꾸만 그걸 찾아내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왔습니다. 인쇄기가 나왔을 때 필경사들은 “기계는 영혼이 없다”고 했고, 사진기가 나왔을 때 화가들은 “기계는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세넷은 이런 기계장치들을 ‘거울도구’라고 정의합니다. 거울도구란 인간의 모방과 확장을 통해 자신에 대해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장치를 말합니다. AI와 대화하는 사람은 자신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AI가 인간의 언어, 그림, 음악, 망설임을 흉내 내는 동안 오히려 우리에게 인간에 관해 되묻게 하는 것입니다.

‘장인’, 리처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아르테 펴냄, 2021년
인간은 재미있는 존재입니다. 자기의 모방물을 만들어놓고는 그것이 모방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묻습니다. 인간성을 능력을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더 나은 능력이 등장하는 순간 인간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간다움을 모방물과의 비교 우위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인간성을 능력의 문제로 환원시킵니다. 인간성을 확보하려는 질문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흔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전 시대의 거울도구들이 인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면, AI는 인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거울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AI가 못하는 일을 찾는 대신, AI가 비추는 인간의 모습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이 장치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기계가 아닌,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수정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김애란 작가의 말로 돌아가, 저는 이 말을 ‘인간은 그러하다’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그러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이해합니다. 인간이라면 응당 타인의 고통 앞에서 망설이고 감응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바람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인간다움이란 어떤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인간됨을 부단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AI에 망설임이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망설일 줄 아는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가 됩니다. 세넷은 그 답을 ‘만드는 일’에서 찾습니다. 장인의식을 가진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배우고 돌아보고 수정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AI의 가장 큰 위험은 인간의 일을 빼앗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일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빼앗는 데 있습니다.
이 수행의 과정은 개인의 실천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장인의 윤리를 시민의 윤리로 확장하는 저자의 관점입니다. 세넷은 훌륭한 일이 곧 훌륭한 시민을 만든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장인은 자기 일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일을 배워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다스릴 줄도 알 것이니 훌륭한 시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겁니다.
모두가 장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논쟁적입니다. 타고난 재능은 같지 않으니까요. 세넷도 타고난 재능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사실을 너무 많이 생각하면 사회는 스스로 독약을 먹는 격이라는 세넷의 경고는 주의 깊게 들을 만합니다. 그는 차이가 만들어내는 운명에 대해 판단하지 말고, 인간이란 유기체를 최대한 고무하는 길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의 특별함은 장인의식을 개인의 자기계발을 넘어 사회가 인간의 가능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의 문제로 확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중세 장인의 명예는 그 사람의 윤리와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장인의 평판은 물건의 함량을 속이지 않는 정직과 신뢰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상호부조 조합인 길드의 명예는 이처럼 거짓 없는 정의를 지킨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금세공 장인은 가짜 주화를 가려내 진실을 밝히는 일을 맡았습니다. 정직을 자기 근거로 삼는 사람은 속임수를 경멸합니다. 말하자면, 장인은 숨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구체적인 물건을 만드는 과정이 우리 자신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주는가? 우리가 물건을 다루며 배우는 행위는 직물의 질을 판별하거나 물고기를 제대로 잡는 방법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질 좋은 천이나 잘 만든 요리에서 우리는 좋고 훌륭하다는 것, 즉 ‘선’(good)의 폭넓은 범주들을 탐색할 수 있다.”
그러나 ‘잘 만든다’는 말의 의미는 경쟁사회에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세넷은 현대사회의 경쟁주의가 심화하는 과정에서 장인의식이 퇴보했다고 진단합니다. 장인은 자신의 작업을 향해 관심을 갖지만, 경쟁하는 인간은 타인을 향해 시선을 돌립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잘할까’ 하는 장인의 고민이 경쟁사회에선 ‘어떻게 하면 저 사람보다 잘할까’ 하는 고민으로 바뀝니다. 경쟁주의 시대에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하려는 장인의 정서는 별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무시당합니다.
세넷의 제안은 단순히 노동을 신성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가 던진 화두는 ‘우리에게서 무엇이 실종되고 있는가’입니다. 그는 그 답을 사회적 조건에서 찾습니다. 장인의식은 타고난 재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그 마음을 얼마나 존중하고 시간을 내어주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장인의 충동을 억제하는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잠재된 장인의식이 발현된다면 우리 사회가 좀더 윤리적인 모습을 갖추리라는 기대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인’은 세넷의 ‘호모파베르 3부작’의 첫 작품입니다. 이 책을 읽다가 저자가 책 제목과 꼭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고시대부터 유유히 이어진 인간의 장인의식을 섬세하면서도 우직하게 풀어내는 세넷의 솜씨는 가히 장인의 그것입니다. 이 책이 장인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저자 스스로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정주식 팟캐스트 ‘발굴독서단’ 진행자

50년 구두 장인 임태화씨가 구두를 만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베테랑 수리장인 이승근씨가 고객이 고치러 온 오래된 앰프의 부속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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