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중증척추장애를 지닌 40대 여성이 세상에 고립된 모습을 그려달라’고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1926년 프랑스 하원의원 아돌프 피나르는 예비부부들에게 큰 강을 수영으로 건너게 하는 테스트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부부는 출산을 금지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유행했던 우생학적 출산 규제안 중 하나입니다. 우생학은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 폐기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요. 이치카와 사오의 소설 ‘헌치백’(양윤옥 옮김, 허블 펴냄, 2023)은 우리 시대에 은밀하게 살아남은 우생학적 시선을 폭로하며 독자의 신경을 곤두서게 합니다.
주인공 샤카는 근세관성 근병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40대 중증장애인입니다. 헌치백(곱사등이)이라는 말처럼 등이 활처럼 굽은 샤카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24시간 그룹홈 병동에서 돌봄을 받습니다. 아르바이트 삼아 인터넷 사이트에 성매매업소 체험담을 쓰고 아무도 보지 않는 트위터 계정에 낙서를 하는 게 샤카의 일상입니다.
샤카에게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평범한 여자 사람처럼 아이를 임신하고 중절해보는 것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는 샤카의 몸을 상세히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욕망을 이해하려면 몸을 관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보아야 합니다. 샤카는 종이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두통이 일어나고 서서히 등뼈가 찌부러지는 고통을 느낍니다. 샤카가 혐오하는 것은 종이책이 아닙니다. 그것의 특권을 깨닫지 못하는 무심한 서책 애호가들입니다.
“‘종이 냄새가 좋다'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좋다'라는 등의 말씀을 하시면서 전자서적을 깎아내리는 비장애인은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
종이책을 읽으면 휘어지는 몸을 가진 사람이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방법이 있을까요. 이는 단지 취미 향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샤카에게 종이책이란 반듯한 척추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 자체입니다.
그런데 샤카가 느끼는 삶의 고통은 평범한 장애인의 고통과는 조금 다릅니다. 한국에서 ‘장애인 인권’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이동권 시위나 탈시설 투쟁입니다. 이런 문제는 장애인이 불편한 세상과 마찰하며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샤카는 이런 평범한 장애인들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과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돈이 있고 건강이 없으면 매우 정결한 인생이 됩니다.”
샤카는 그룹홈의 소유자이자 수억 단위의 상속이 보장된 건물주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시설에서 24시간 간병인들의 돌봄을 받는 샤카는 세상과 마찰할 일이 없습니다. 샤카에게 정결함이란 마찰의 결핍이며 탈출해야 할 감옥입니다. 정결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가장 정결하지 못한 것을 꿈꿉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돈으로 마찰에서 멀어진 여자에서, 마찰로 돈을 버는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보통의 장애인들이 세상과의 마찰 때문에 힘겨워한다면, 샤카는 마찰 자체를 욕망합니다. 그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임신중절 계획입니다. 샤카는 재생산을 욕망하지 않습니다. 단지 생산과 죽임이라는 사이클의 경험을 원합니다. 이건 단순한 육체적 욕망이 아닌 몸으로 세상과 마찰하는 경험에 대한 갈망입니다.

‘헌치백’,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허블 펴냄, 2023.
지하철 시위에 나가는 장애인 집회자의 심정을 생각해봅니다. 저라면 전날 밤에 한숨도 못 잘 것 같습니다. 그 자리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자리입니다. 어떤 사람도 그런 자리에 서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나가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상 범주’에 사는 사람은 이해받기가 쉽습니다. 마찰이 별로 필요 없지요. 외면당한 존재가 이해받으려면 마찰이 필요합니다. 마찰이라도 해야 이해 가능성이 생겨나니까요. 욕먹고 상처받더라도 일단 부딪쳐야 합니다. 그런데, 샤카는 이해받는 것조차 기대하지 않습니다. 고급 창부가 되고 싶어 하는 것도, 태아를 임신하고 살해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를 포기한 자리에서조차 어떻게든 세계와 접촉하고 싶다는 욕망처럼 보입니다.
“장애인 살해는 결국 수많은 커플에게 캐주얼한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죽이기 위해 잉태하려고 하는 장애인이 있어도 괜찮은 거 아닌가? 그걸로 겨우 균형이 잡히잖아.”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낙태하는 세상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낙태함으로써 균형이 잡힙니다. 세계가 나를 증오하기에 나도 세계를 증오하겠다는 겁니다. 정상 세계를 향한 복수의 테러리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샤카의 욕망을 단순한 복수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는 1974년 장애인 차별에 항의해 벌어진 ‘도쿄 미술관 모나리자 사건’(장애인 관람객이 모나리자 그림에 스프레이를 뿌린 사건)과 일본에 실재했던 우생보호법을 소설 속 사건으로 끌어들여 이야기의 해상도를 높입니다.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1948년 제정된 우생보호법을 근거로 일본에서는 반세기 동안 2만5천여 건의 장애인 불임수술이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에 우생보호법이 있다면 한국에는 모자보건법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은 1996년 폐지됐지만 한국의 모자보건법은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겁니다. 1973년 제정된 이 법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를 강제 임신중절수술 대상으로 명시했고 이 법을 근거로 1988년까지 장애인을 대상으로 불임수술이 시행됐습니다. 국가 강제 조항은 1999년에 폐지됐지만 ‘우생학’을 불임수술의 근거로 삼는 조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법조문이 낡은 걸까요?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는 비장애인 70%가 ‘양육이 어려운 장애인 부부는 출산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런 인식과 의료기술 발달이 만나 오늘날의 태아 살해는 더욱 ‘캐주얼하게' 이루어집니다. 강제하지 않아도 작동한다면 강제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식적으로는 우생학이 폐기된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밀하게 우생학적 시선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재생산 부적격자로 인식하는 이유는 장애인의 삶은 불행하다고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불행을 기준으로 출산 여부를 판정한다면, 비장애인에게는 왜 그러한 법이 적용되지 않는 걸까요?
샤카와 정자 제공을 거래한 간병인 다나카는 샤카가 소유한 그룹홈에 고용된 직원입니다. 키 155㎝의 다나카는 고용주 샤카를 올려다보며 시중을 듭니다. 그는 장애가 없다는 점 말고는 모든 조건이 주인공보다 열악한 남성 약자입니다. 일반적으로 약자로 간주되는 중증장애인 샤카는 이 거래를 통해 금전으로 약자의 몸을 도구화하는 강자의 위치에 섭니다. 그러나 사회는 경제력을 이유로, 작은 키를 이유로 다나카에게 불임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건물주 장애인과 가난한 비장애인의 처지를 은연중에 비교하게 됩니다. 누가 더 열등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우생학의 시선을 발견합니다. 우생학 역사에서 반복된 것은 언제나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누가 태어나는 것이 더 나은가?’
비장애인에게 수영 실력으로 출산 자격을 판단한다는 생각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장애인의 몸에는 우생학의 시선이 새겨져 있습니다. 태아의 장애 가능성과 양육자의 부양 능력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더 어려운 것은 ‘더 나음’을 누가 정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우생학은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의 삶의 가치를 판정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열등한 유전자'의 기준은 시대와 권력에 따라 장애인, 유대인, 빈민, 성소수자를 넘나들었습니다. ‘더 나음'의 기준이란 결국 권력의 언어였습니다.
샤카의 욕망은 윤리적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샤카를 비판하는 일은 쉽지만 샤카와 함께 사는 길은 어렵습니다. 샤카의 일그러짐을 비난하기 전에, 그러면 일그러지지 않을 방법은 있는가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샤카가 고통받는 이유의 많은 부분은 몸이 아니라 몸을 둘러싼 구조에 있었습니다. 휘어진 몸보다 그 몸을 더 휘게 하는 종이책처럼요. 인간 사회의 목표는 더 나은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몸을 가진 인간도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미 태어난 인간을 잘 돌보지 못하는 사회가 앞으로 태어날 인간을 잘 품을 수 있을까요?
정주식 팟캐스트 ‘발굴독서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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