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 위키미디어
이란-이라크 전쟁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던 어느 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솔직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보건장관 리야드 이브라힘은 정말로 솔직한 조언을 했습니다. 후세인에게 잠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가 평화협상이 주선되면 다시 대통령직에 돌아올 것을 고려해보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이브라힘의 아내는 남편의 토막 난 주검을 배달받았습니다.
20년 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은 이 나라의 허술한 군사적 방비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상군이 밀려오는 상황에서도 핵심 진격로의 다리들은 멀쩡했고 미군은 곧바로 바그다드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군의 기록적 승전의 배경에는 이라크군의 이해할 수 없는 무대응이 큰 몫을 했습니다. 걸프전 직전 장군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최첨단 무기체계가 있다며 후세인을 안심시켰습니다. 후세인은 개전 열흘 뒤에도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브라힘의 토막 난 주검은 20년이 지난 뒤에도 장관들의 머릿속을 따라다녔습니다. 늘 목이 잘릴까 두려움에 떨었던 후세인의 관료들은 거짓말을 생존전략으로 삼았던 겁니다.
이 일화에서 거짓말한 참모들의 윤리에 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그들이 거짓말하게 만든 조건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이언 레슬리 지음, 김옥진 옮김, 북로드 펴냄)은 거짓말을 줄이는 방법이 개인의 도덕적 각성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설계에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언 레슬리의 ‘타고난 거짓말쟁이들’ 표지. 북로드 펴냄
“거짓말을 할까 말까에 대한 대부분의 결정은 그 사람이 천사인가 악마인가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우리는 진실이 우리에게 맞으면 진실을 말하고, 거짓이 맞으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라는 유튜브 인기 시리즈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거짓말이 제거된 세상을 상상으로 그려낸 콩트입니다. 유세차에 오른 정치인이 “존경하지 않는 국민 여러분”이라 외치고, 구직 청년이 장래 희망을 묻는 면접관에게 “일은 하기 싫고 연봉은 높게 받고 싶다”고 말하는 식입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영상을 보며 알 수 있는 사실은 진실은 대체로 불쾌하다는 것입니다.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예절이 아닙니다. 예절은 우리가 실제로 느끼지 않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는 순간에 필요합니다.
‘곤란한 책’ 지난회에는 우리 삶을 ‘협동공연’에 비유한 어빙 고프먼의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거짓말에 대한 레슬리의 입장은 ‘공연’에 대한 고프먼의 입장과 유사합니다. 두 사람 모두 장식적 행동이 우리 세계를 지탱한다고 말합니다. 예절은 상대와 주고받는 협동공연이며 이 공연은 대체로 거짓말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행동들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는 인간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다양한 거짓말이 있습니다. 레슬리가 가장 집요하게 파고드는 거짓말은 타인을 속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입니다. 둘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타인을 성공적으로 속이려면 내가 먼저 스스로에게 속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사람이 말할 때, 우리는 지금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고의 거짓말쟁이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왜 이런 이상한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요? 인간의 자기기만은 결함이 아닌 생존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산이 더 높아 보입니다. 그 사람은 뇌가 현실을 왜곡한 덕분에 무리하게 산에 올랐다가 목숨 잃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보다 동전을 더 크게 지각한다는 실험 결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은 욕망과 필요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런 왜곡은 지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뇌가 만들어낸 믿음은 몸의 상태 자체를 바꾸기도 합니다. 빵 조각에 든 핀을 삼켜 고통받는다고 확신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의사가 구토제를 처방하고 토사물에 핀을 몰래 넣자, 그것을 본 여자는 곧바로 치유됐습니다. 플라세보효과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바로 이런 속임이 인류의 근면함을 일깨우고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기만 능력이야말로 경제성장과 인류발전의 엔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습관적으로 착각한다면, 그 착각은 다른 사람들과 더 쉽게 협력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인간은 현실을 정확히 보기 때문이 아니라, 견딜 수 있게 왜곡하기 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자기기만 능력이 남들보다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선함에 대해 과장되게 믿지 않으며 자신의 통제력을 과대평가하지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이들을 임상적으로 우울증에 빠졌다고 진단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울증 환자는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려면 적당한 자기기만의 쿠션이 필요합니다. 자기기만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 대기권 같은 구실을 합니다. 우울증 환자의 삶은 대기권 없는 지구의 삶입니다.
자기기만 능력은 개인의 생존전략이지만 공동체에는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후세인의 참모들은 거짓말로 각자의 삶을 구했지만 나라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 메커니즘은 독재체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도 성공한 정치인들은 대체로 남들보다 뛰어난 자기기만 능력을 가졌습니다. 강한 자기확신은 유권자를 설득하는 정치적 자산이 되지만, 이 확신이 외부의 교정 장치를 잃을 때 착각은 망상으로 변합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의 탁월한 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반대파의 비판과 자유언론의 감시는 지도자의 확신이 망상으로 굳어지는 것을 통제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문제는 이 장치가 무력화될 때입니다. 2024년 12월3일 전 대통령 윤석열은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사당에 군병력을 보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사건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총선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선거 패배의 이유를 중국 공산당과 야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연결된 음모 때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극우 유튜버들이 제공한 음모론은 대통령을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자기기만의 쿠션 구실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도자의 자기기만이 어떻게 미디어 환경과 결합해 ‘선거로 뽑힌 독재자’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전 대통령 윤석열. 연합뉴스 사진 재가공
거짓말에 관해 가장 많이 알려진 신화는 거짓말쟁이를 구별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거짓말쟁이에게 피노키오의 코와 같은 증거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통념에 매우 비관적인 연구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책에 소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거짓말쟁이들은 매력적이고 단호하며 진실을 말하는 보통 사람보다 더 일관됩니다. 정신과 의사와 판사, 세관원, 경찰관도 거짓말탐지 능력 시험에서 일반 대중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면 기계는 어떨까요? 거짓말탐지기가 개발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기계는 심문자에게 강압적인 보조수단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거짓말탐지기는 가짜기억과 허위자백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거짓말탐지기 개발은 우리 뇌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그것이 잘되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우리 뇌가 믿을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면 알수록 개인으로서 우리는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증인이며,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도 그렇습니다. 알고 보니 진실은 우리 몸 바깥 세상에 있다는 것, 다수의 견해를 공들여 모아야만 성립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거짓말탐지기 실패의 역사에서 배운 사실입니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속이는 행위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며 정직한 사람과 거짓말쟁이 사이의 표면적인 구분은 진실을 흐릴 뿐이라는 겁니다. 거짓말쟁이를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대단히 곤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정직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거짓말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면 정직 역시 그럴 겁니다. 이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분야가 정치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정치인을 정직하게 유지시키는 것과 정직한 정치인을 요구하는 것을 혼동한다고 지적합니다. 정직을 관계에서 유지되는 상태로서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형질로만 보려 한다는 겁니다. 매번 선거에서 거짓말쟁이들만 선출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한다면 정직한 사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직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4살 무렵부터 거짓말이 늘어나지만 학교에 들어간 뒤 몇 년 동안 거짓말 빈도가 크게 줄어듭니다. 대부분의 아이에게 거짓말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거짓말은 나쁘니까 그만두라고 배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언제 진실을 말하고 언제 거짓말을 하느냐에 대한 사회규칙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면 선생님과 친구들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인기가 없어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거짓말의 문제를 막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보상받는다는 것을 보증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책의 결론은 정직은 우리가 함께 해내는 것이라는 겁니다. 칸트는 구부러진 인간에게 반듯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협력을 통해 구부러진 우리의 자질을 그럭저럭 곧게 폈고 진실에 좀더 가까이 갔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보상을 주는 사회규범을 만들었고 법과 제도,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인간을 정직하게 만드는 것은 추상적인 도덕률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부러진 인간이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정주식 팟캐스트 ‘발굴독서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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