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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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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프라이탁보다 오래 입은 헌 옷

5년째 ‘옷구매 제로웨이스트’ 저자의 기만적 패션산업 고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록 2023-11-04 09:51 수정 2023-11-10 14:23

패션 커머스 앱을 켠다. 여러 스포츠 브랜드 제품을 묶은 기획전, 계절별 신상 옷 할인, 특정 연예인의 착장 아이템 단독 할인 등 첫 화면엔 언제나 할인 소식이 제일 먼저 보인다. 장바구니에 들어가면 몇몇 물건은 처음 담았을 때보다 가격이 더 내려갔음을 알리는 문구가 뜬다. 사지 않는 게 손해인 듯하다. 결국 주문하고 말았지만 이런 식으로 주문한 몇몇 옷은 도통 옷장에서 나올 일이 없다. 몇 번 입지도 않은 채 헌옷수거함으로 가거나, 쓰레기로 버려진다. 어차피 몇 번 안 입더라도 싸게 샀으니 그리 큰 손해는 아니라고 여기기 쉽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돌고래 펴냄)에서 이소연은 이런 ‘합리적 소비’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빠르게 옷을 만들고 버리는 패션산업은 기후위기를 앞당긴다. 전세계 섬유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면을 만들려면 목화를 재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막대한 양의 살충제가 남용된다. 또 면에 색을 입히려면 각종 염료와 표백제, 물이 필요하다. 끝이 아니다. 합성섬유로 이뤄진 옷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5㎜ 이하의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배출된다. 먹이사슬 정점에 있는 인간의 몸에 쌓이는 미세플라스틱은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무게(5g)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곳곳에 창고형 매장이 생기는 빈티지숍도 패스트패션과 다름없다. 아무리 중고 옷을 거래한다고 해도 이 악순환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폐플라스틱이나 환경친화적 소재 등을 활용했다는 홍보 문구도 자세히 뜯어보면 눈속임에 가깝다. 폐플라스틱의 경우, 기존에도 폐페트병 재활용률은 80%가량이었다. 패션기업들이 굳이 재가공해 섬유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친환경’ 라벨을 붙인 제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훨씬 더 비싼 가격에 판다.

20대 내내 ‘중독'이라 할 만큼 쇼핑을 좋아했던 저자는 어느 날 다른 나라의 패스트패션 매장을 방문했다가 1.5달러짜리 패딩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이후 5년째 ‘옷구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했다. 책은 기만적인 패션산업의 구조와 모순, 그리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을 담았다.

무엇보다 저자는 옷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파타고니아의 유기농 목화 플리스도, 프라이탁에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도 아니다. 내가 가진 옷을 최대한 오래 입는 게 가장 친환경적이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21이 찜한 책 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 펴냄, 1만8천원

인권기록센터 활동가, 변호사, 작가가 이태원 참사를 함께 썼다. 유가족, 생존자, 목격자라는 명명을 기꺼이 짊어지기로 한 사람들이다. ‘왜 갔느냐’가 아니라 ‘왜 못 돌아왔는지’ 기억해달라는 김혜인씨, 생존자 박진성씨, 이태원에 있을 때 가장 나답다는 이태원 주민 윤보영씨, 희생자의 친구 누리씨 등의 이야기와 함께 이태원 참사 타임라인을 실었다.

결핍으로 달콤하게

에밀리 디킨슨 지음, 박서영 옮김, 민음사 펴냄, 1만7천원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서간집. 디킨슨이 사망한 뒤 시집을 발간하고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편집자는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려면 서간집 발간이 필수임을 깨닫고, 서간을 주고받은 친척과 지인을 수소문해 시인의 편지들을 취합한다. 디킨슨의 시가 다뤘던 불멸, 죽음, 고통, 예술, 영혼, 신성이란 주제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

녹색연합·금창영 등 지음, 목수책방 펴냄, 1만7천원

농민은 기후위기의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해결사인가? 녹색연합 활동가와 농부가 농민 17명을 만나 기후위기 시대의 농사에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책에 담았다. 농민이 탄소배출 농사 방식을 유지하는 건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농민의 목소리로 듣는 기후위기 시대 농업과 농촌의 현실. 더 나은 농민의 삶과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

김병연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2만6천원

문화재청에서 국외 문화재 환수 업무를 맡은 저자가 쓴 문화유산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의 세계사. <모나리자>가 왜 이탈리아가 아니라 프랑스에 있는지, 프랑스혁명은 왜 문화유산 보호 관점에서 오히려 퇴보라고 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원상회복’ ‘반환’ ‘본국 귀환’ 등 환수 용어를 구분하고 유명한 미술품 협상의 뒷이야기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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