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당과 유생의 대결> 한승훈 지음, 사우 펴냄
“광화문광장을 조선시대 인물이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우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3년 9월12일, 보수 성향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결성한 ‘문화자유행동’ 창립기념행사에서 최범 공동대표는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을 문제 삼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는 <경향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종이랑 이순신은 조선시대 사람이고 대한민국 사람은 아니지 않냐”며, 두 인물이 근대 공화국의 상징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해프닝이 최근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흉상 철거 움직임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심증’은 일단 걷어내고, 최대한 ‘선의’에 의거해 최 대표의 발언을 이해해보자. 화폐부터 광장까지 대한민국의 ‘얼굴’을 온통 조선시대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푸념은 진보 진영에서도 나왔던 만큼, 그의 문제의식 자체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합리적인 것과 실현 가능한 것은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대한민국 국민주의자’들의 행보가 이들이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해 마지않는 조선시대 유자들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이다. 한승훈의 <무당과 유생의 대결>은 유럽의 종교개혁에 버금갈 유자들의 “성상파괴운동”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근대 공화국에 걸맞지 않은 ‘전근대적’ 상징물을 모두 치워버리려 드는 일부 보수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유학자들 역시 합리적인 신유교와 어울리지 않는 ‘미신적인’ 상징과 의례를 뜯어고치고자 했다. 고려시대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섬김을 받던 수많은 토착 신들은 이름과 형상을 뺏겼고, 제사 역시 표준화됐다. 심지어 유교의 큰 스승인 공자의 성상조차 신성함이라고 느낄 수 없는 신주로 교체됐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간 착실히 진행된 유자들의 종교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은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 종교’의 영역에서 무속을 몰아냈지만, 그 바깥 ‘민속 종교’의 영역에선 무당이나 술사와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전래동화에서 귀신과 요괴를 무찌르는 주인공은 항상 ‘지나가던’ 선비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유자들은 무당의 주술적 세계관을 깨부수기보다 자신이야말로 주술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증명하려 했다.
퇴마사가 되어버린 선비라는 결말은 자칫 조선은 겉은 유교인데 속은 무속이라는 뻔한, 다분히 멸시적인 의도가 엿보이는 이야기로의 회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합리적인’ 유생이 ‘미신적인’ 무당을 끝끝내 정복하지 못한 실패담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무당과 유생은 일상에 리듬과 질서를 부여하고, 신과 망자를 관장할 권리를 두고 대등하게 경쟁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시민종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근대 공화국은 공동체를 통합하고 개인에게 의미를 제시할 의례와 상징체계를 필요로 한다. 문화자유행동이 불을 지핀 ‘역사전쟁’ 역시 국민주의를 신봉하는 근대적 우파와 종족주의를 숭배하는 전근대적 좌파의 대결이 아니다. ‘우리’의 기원과 범위를 놓고 벌어진, 서로 다른 시민종교 사이의 투쟁이다.
어느 쪽이 더 정의로운지, 더 다양한 기억을 포용할 수 있는지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근대를 물신화하며 일체의 전근대적 요소를 지워버리려는 시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근대교’를 신봉하는 21세기 유자들의 성상파괴운동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
유찬근 대학원생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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