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걸렸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인한 코로나19 재유행 시기,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시작으로 나와 남편도 차례로 코로나19 진단을 받았다. 비교적 ‘착한’ 바이러스에 걸려서 다행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가족은 고열과 심한 인후통, 계속되는 기침 등으로 혹독하게 코로나19를 앓았다. 그러나 갖가지 증상이 채 낫기 전부터 묘한 안도감이 들었으니, 이전처럼 감염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미지의 병, 그것도 전염되는 호흡기질환의 등장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사스나 메르스 같은 이전의 무시무시한 유행병에 비해 감염력이 높지만 치명률은 훨씬 낮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한동안 사람들은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마스크를 쓰고 수시로 손을 씻으면서도 불안해했다. 과학이 말해주는 사실에 더해, 실제로 코로나19를 이겨낸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뒤에야 공포가 잦아들었다.
그러나 모두가 안심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만큼 ‘불공평한’ 바이러스가 또 있을까? 수시로 집계된 코로나19 데이터는 국가별·시기별로는 물론 연령대에 따라, 기저질환의 유무와 종류에 따라 중증화도와 사망률을 계산해서 보여줬다. 통계표 격자에서 내가 속한 위치에 따라, 내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달라졌다.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코로나19는 독한 감기쯤에 불과했지만, 노약자나 만성질환자에게는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병이었다. 아이들은 면역체계가 달라 코로나19에 걸려도 증상이 심하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된다고 추정되는 어린이 괴질에 대한 보도가 심장을 내려앉게 했다. 어린아이를, 그것도 친정엄마와 함께 키우는 내게 코로나19는 한참 동안 ‘절대 걸리면 안 되는 병’이었다.
감염 가능성을 ‘0’에 가깝게 만들자니 해야 할 일도 포기할 것도 많아졌다. 팬데믹 초기에는 확진자 동선을 파악해 가족의 외출을 제한했고, 마스크와 소독제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온라인으로 장 보고 집안 곳곳을 소독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가 됐다. 외출과 외식 횟수를 대폭 줄이자, 세끼 밥을 차리는 일과 심심해하는 아이를 달래는 일이 추가됐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인 뒤에도 우리 집의 방역 지침은 한동안 지속됐다. 위생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동안 내 경력은 자꾸 틀어지고, 아이와 친정엄마의 인간관계는 쪼그라들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코로나19를 지나치게 두려워했던 것 같아 후회되기도 하지만, 나의 과민과 과로에도 이유는 있었다. 나 역시 코로나19가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다는 점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이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를 궁금해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슬픈 사례를 접할 때마다, 그럴 확률이 낮더라도 작은 체구의 아이나 70대에 접어든 부모님이 독한 호흡기질환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같은 감염병을 이렇게나 다르게 겪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며 속상해했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19를 한 차례 겪고 난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코로나19가 여전히 두려울 수밖에 없는, 그래서 괴로운 병일 것이다.
장하원 과학기술학 연구자*과학기술학 연구자 장하원씨가 ‘노 땡큐!’의 새로운 필자로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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