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을 적은 전기(傳記)를 즐겨 읽는다. 먼저 산 사람의 삶은 큰 가르침이 된다. 사랑하는 시인들의 연보를 외며 내 나이와 견줘보곤 했다. 이른 나이에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훌쩍 떠난 천재들을 시샘했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함께 문학을 하던 친구 가운데 한두 명은 우스갯소리로 서른 전에 명작을 남기고 요절하겠다고 말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세 번째 시집을 준비하는 동안 죽은 시인들의 시집을 자주 읽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은 시인은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시를 썼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삶이 버거웠을 것이다. 연월순(年月順)으로 적힌 간략한 기록의 행간을 어루만진다.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다른 삶의 궤적을 되짚으며 자문한다.
예술가는 이전보다 나은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실제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해보다 올해가 나아야 하고, 올해보다 내년이 나아야 하는 식이다. 뒷걸음질하면 수명이 다하는 것처럼 여긴다. 내가 기준이기 때문에 ‘나’를 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인류는 정말 진보했는가.
할머니는 고관절 수술을 하고 외출이 줄었다. 남의 밭에서 일하며 부지런히 지내시던 분이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잠이 늘었다. 종일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인다고 했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시인과 같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 시인은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살았다. 칠 남매를 낳아 기르며 자식한테 손 벌리지 않고 살았다. 구순을 지나 정신을 잃지 않고 상수에 가깝게 살았다.
나는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새 시집을 묶으며 할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 전쟁에 관해 물으면 그 끝엔 항상 할머니가 있었다. 당신 몸에 깃든 기억을 내가 이어받았다.
조용필의 미니앨범 《로드 투 트웬티-프렐류드 투》(Road to 20-Prelude 2)는 스무 번째 정규앨범으로 향하는 전주곡이다. 그는 55년 동안 열아홉 장의 정규앨범을 냈다. 형식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타이틀곡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는 입고출신(入古出新·고전으로 들어가 새것으로 나옴)의 모범이다. 음악가의 삶이 내용이 돼 듣는 이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떠나고 나서 보면 별게 없었어”라고 노래하는 그는 계속해서 “나는 어디에?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많은 이가 “오늘을 위해 살아가야지” 하고 말하지만, 오늘을, 지금을 사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그 무게에 억눌려 세상을 비관하곤 했다. 모두에게 각자의 삶이 있다. 그 삶을 잘 꾸리려면 부단히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에 균열이 인다. 먼저 산 사람의 말은 단단하다. 할머니는 다 괜찮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한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음악세계를 변주하고 넓혀나가는 음악가의 음악은 귀한 유산이다. 우리는 삶의 지난한 여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지나치고 놓치며 포기하게 된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해도 잠시 쉬었다가 “맨 처음의 그 용기”(<세렝게티처럼>)를 되뇌며 되돌아가면 된다. 그래도 된다. “어떤 밤은 내게 시작”(<라>)이다.
최지인 시인*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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