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고모 숙모가 캔 쑥 취나물, 씀바귀에 이장댁에서 얻은 개두릅 오가피 명이를 보탰다. 김송은 대표 제공
지난 가을, 길 문제로 이웃과 다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이 짜게 식어버렸다. 마침 가을걷이가 끝난 시점이라 겨울을 나는 동안 진부에 걸음한 건 두 번쯤인가 그랬다. 확 땅을 팔아버릴까 싶기도 하고, 봄이 와도 농사 생각에 마음이 부풀지 않았다. 게다가 뒤늦게 벤 옥수숫대 때문에 밭을 갈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근본 문제에 부딪히고 나니 에라 나도 모르겠다 싶었다.
지난주, 이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자기 트럭에 부착한 비료 살포기를 떼기 전에 필요하면 얼른 가져다 쓰라는 거였다. 지난해에도 이장님 트럭을 빌려 비료를 뿌렸던 터라 올해도 상황이 되면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밭을 아직 못 갈았고, 앞으로 갈 수 있을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고 하니 비료 먼저 치고 나중에 갈아도 되니 주말에 얼른 내려오란다.
하루 차이로 아랫집 아주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왜 안 내려와유? 우리 아저씨가 바쁜 거 끝나서 로터리(밭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것)를 쳤어. 비료 치고 나면 골 캐줄게.”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갑자기 모든 일이 풀렸다.
금요일에 진부에 갔다. 마침 나물을 뜯으러 가고 싶어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던 엄마가 고모 숙모를 다 불러, 차가 만석이 되었다. 저녁부터 비 소식이 있어 점심에 도착해 어른들을 밭에 내려드리고 바로 이장님 댁으로 갔다. 이장님이 농협에 신청해둔 비료가 많이 남았으니 자기 이름으로 사면 할인을 더 받을 수 있다며, 경제사무소에 같이 가주셨다. 그것만도 고마운데 밭까지 같이 와 비료 뿌리는 걸 도와주셨다.
비료 살포기는 트럭 끝에 매달아 자동차 구동장치에 연결해, 차를 움직이면서 통 바닥에 있는 회전장치를 가동해 비료를 골고루 뿌려준다. 보통 2인 1조로 하는데, 먼저 비료 통을 가득 채운 다음 한 사람이 운전을 하고, 한 사람은 트럭 뒤에 타서 통이 비어가면 비료를 보충해준다. 지난해엔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내가 트럭 뒤에 타서 20킬로짜리 비료 포대를 뜯어 채우는 역할을 했는데, 올해는 툇마루에 앉아서 구경만 했다. 저 멀리 밭둑에 엄마 고모 숙모가 나란히 앉아 쑥을 뜯는 풍경이 한가로웠다.
숙련된 장정 둘이 하니 일은 금세 끝났다. 남편이 이장님 트럭에 살포기 내리는 걸 도와주러 같이 간다고 이따가 데리러 오란다. 한 시간쯤 후에 슬슬 가보니 뭐가 잘 안 풀리는지 둘이 낑낑대며 트럭 아래에서 시루고 있었다. 차 트렁크에서 연장을 꺼내다주고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했다. 그래도 안 끝나 묶여 있는 이장님네 개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니 남편이 두릅 채취권을 획득했다며 신나게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비료 살포기를 내리고 약 치는 데 필요한 물탱크를 설치하는 것까지 끝내니 이장님이 수고했다며 두릅을 따가라고 했단다. 똑똑 따는 손맛이 좋아 가시를 조심하며 한 보따리 땄다. 이장님 사모님이 개두릅에 오가피에 명이까지 장 가방이 가득 차게 주셨다.
농막에 돌아가니 툇마루에 엄마 고모 숙모가 나란히 앉아 쑥이랑 취나물이랑 씀바귀 자루를 쏟아놓고 다듬고 계셨다. 얻어온 두릅과 나물 가방을 쏟아놓으니 흥분의 도가니. 곧장 삶아 고추장 된장 꺼내놓고 나물 파티를 벌였다. 다 같이 파란 풀인데 저마다 맛이 다르다. 고기 한 점 없이 쌉싸래하고 풋풋한 풀을 한 근씩은 먹은 것 같다.
이웃에 질려 떠날까 싶었는데 이웃 덕에 먹고산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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