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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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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슬픈 모습만 보여주긴 싫어요”

세월호 아이들의 못다한 재능을 엄마들이 이어가는 이야기, 영화 <장기자랑> 개봉
등록 2023-04-07 22:06 수정 2023-04-14 10:21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떠난 사람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법은 여럿이다. 어떤 이는 홀로 침잠한다. 또 어떤 이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한다. 이미경씨는 후자다. 그는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로 아들 영만을 잃었다. “울고, 분노하고, 모든 것이 원망스러운” 날들이었다.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운명처럼 연극이 다가왔다. 2015년 이씨처럼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들이 심리 치유의 일환으로 바리스타 수업을 받던 때였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연극을 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엄마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하는 게 필요한 때였다. 누군가 지나가듯 “재밌겠다”고도 했다. 안산을 기반으로 한 극단 ‘걸판’ 출신 김태현 감독이 연극수업 제안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세월호 엄마들이 ‘합법적으로’ 웃을 수 있게

시작은 코미디 극본 읽기였다. 엄마들이 조금이라도 웃었으면 하는 바람에 김 감독이 준비한 것이다. “연극이 가진 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엄마들에게) 합법적으로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연극을 통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김태현 감독, 2023년 3월24일 기자간담회) 엄마 4∼5명이 모여 꾸준히 대본을 읽어나갔다. 생전 연극무대에 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다시 만나 마치 책을 읽어주는 듯한 기분도 느꼈다.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노란리본)의 시작이다. 이후 극단 ‘노란리본’은 2016년 <그와 그녀의 옷장>을 처음 무대에 올린 것을 시작으로 2017년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2019년 <장기자랑>, 2021년 <기억여행>까지 전국에서 200회 이상 공연을 올린 베테랑 극단이 됐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둔 4월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이소현 감독)은 극단 ‘노란리본’의 첫 번째 창작극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연극은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극이다. 영만 엄마 이미경씨를 포함해 수인 엄마 김명임, 동수 엄마 김도현, 예진 엄마 박유신, 순범 엄마 최지영, 윤민 엄마 박혜영씨가 각자 맡은 배역은 생전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낸다. 생존자 가족인 애진 엄마 김순덕씨도 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 무대에 선다.

박유신씨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던 예진이와 꼭 닮은 ‘조가연’ 역을 맡았다. 김도현씨는 아들 동수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루피’로 분했고, 최지영씨는 모델이 꿈이었던 아들 순범처럼 모델을 꿈꾸는 학생 ‘방미라’ 역을 맡았다. 이미경씨는 랩을 좋아했던 영만을 따라 랩에 도전했다. 아이와 똑같은 교복도 입었다. 그래서 연극 <장기자랑>을 만드는 건 곧 자신만의 꿈을 키우던 아이들을 다시 기억하고 재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연극 속에선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해 장기자랑을 성공적으로 선보인다. 아이들의 꿈을 무대 위에서 대신 실현하며 엄마들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피해자다움’ 편견 뛰어넘고 온전한 존재로

연극이 무대 위에서 7명의 아이를 기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 <장기자랑>은 무대 뒤에서 7명의 엄마를 비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란 꺼풀을 벗겨내고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 이들은 서로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존재다. 극단 대표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김명임씨는 기자간담회에서 “서로를 보며 위로를 많이 받는다. 극단 단원이다 보니 저희끼리는 더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극단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박혜영씨는 “참사 피해자가 모여 공연하고 (연극을 통해)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기존에 없던 문화라 생각한다”며 “이분들이 동료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느 인간관계가 그렇듯 7명 엄마들의 관계도 늘 순탄할 리 없다. 웃고 노래하며 연습하다가도, 섭섭함이 쌓여 토라지고 갈등을 겪는 순간도 있다. 대사도 많고 주목도 받는 주인공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서로 질투하고 다툰다. 맡고 싶은 배역에서 탈락해 크게 낙담하며 ‘잠수’를 타기도 하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연습에 나오지 않는 이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는 때도 있다. 동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느 동년배 여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소현 영화감독이 주목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참사 피해자가 아니라 이웃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로 어머니들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슬픔을 가진 사람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 불경스러운 일인지 고민도 많았지만 이런 것들이 감춰질수록 ‘유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편견이 공고해질 뿐이다. 이번에는 그 편견을 넘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 영화 속 이미경씨의 말 역시 유가족이 ‘피해자다움’에 갇히지 않고도 계속 아이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박유신씨는 연극 연습과 다큐멘터리 촬영 등을 하면서 예진이 이야기를 할 때면 웃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을 아프게만 기억하지 말고 맑고 깨끗하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킨 존재로 봐주시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상영하는 동안 관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밝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영화 <장기자랑>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장기자랑>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

이미경씨에게 연극은 아들을 기억하며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동력이다. 연극배우로서 새 삶을 시작한 그는 최근 아들 이름을 딴 ‘이영만 연극상’을 만들기도 했다. 2023년부터 영만의 생일인 매년 2월19일마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녹여낸 작품과 연극인에게 시상한다.

영화 개봉을 앞둔 4월4일, 이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많은 분이 영화를 보러 왔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다 잘못돼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예전의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하지만 (연극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힘을 찾은 것 같아요. 아이를 아픔과 슬픔으로만 기억하고, 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진 않아요. 예쁘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연극·영화처럼 사람들과 좀더 친숙하고 편안하게 만나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죠.”

4월11일 안산 단원고등학교는 영화 <장기자랑> 공동체 상영회를 연다. 7명의 엄마는 이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단원고 학생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박다해 <한겨레>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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