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만 얼굴 보는 사이지만 작은엄마를 참 좋아한다. 결혼하고 처음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나와 동생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잊히지 않는 상냥함이 있다.
7급 공무원으로 경기도 소재의 세무서에서 20년 넘게 일한 작은엄마. 작은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법무사 시험을 4년간 준비할 땐 외벌이를 하며 두 아이를 길렀다. 육아는 해보지 않았지만 전남편이 공시생이던 적이 있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어릴 땐 보지 못했던 작은엄마의 대단함이, 인생 경험이 쌓일수록 더 많이 보인다. 왠지 이번 설에는 나의 존경을 표현하고 싶었다.
“작은엄마, 정말 대단해요. 일하면서 육아도 하시고 결혼생활도 유지하셨어.”
“결혼생활? 나도 위기가 있었단다.” 그릇을 정리하다가 마주 보고 웃었다. 엄마는 설거지하고 있었다.
“이혼한 네가 비정상이지.” 엄마가 울컥한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깨뜨리는 높은 목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일일이 상처받기엔 평생을 엄마 딸로 살았다. 지적하지 않고, 사과받으려 하지 않고, 그저 ‘내 이혼이 엄마에겐 상처가 됐구나'라고 입장을 이해하면 혼자서도 나름대로 소화가 된다. 자식에게도 예외 없이 칼 같은 기준을 휘두르며 정상·비정상을 나누는 당신에게 나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비혼·비출산·비건, 비주류 삼종세트.
내게 중요한 것은 엄마가 나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점이 아니라, 비정상의 길만 골라 가는 딸로 여겨짐에도 어쨌든 사랑한다는 점이다. 사랑의 증거로 어마무시한 크기의 시금치 더미를 받았다. 엄마가 직접 농사지었다.
“지혜야, 다른 집들은 시금치에 농약을 얼마나 많이 치는지 아니? 엄마는 하나도 안 쳤어. 왜냐면 귀찮으니까. 그래서 우리 집 시금치는 진짜 무농약이지.” 엄마는 우리 몸집보다 큰 비닐에 시금치를 가득 담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1인가구인 걸 깜빡한 거 같은데….”
“데쳐서 소분해 냉동실에 넣으면 돼.”
“나도 엄마 닮아서 귀찮은 건 안 한다고. 데친 시금치를 식힌 다음 하나하나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느니 내내 시금치 요리를 해 먹는 쪽을 택한다고.”
“그럼 그렇게 먹으면 되겠네!”
일주일 내내 시금치를 먹었다. 가장 맛있게 먹은 건 손질한 시금치를 데쳐서 소금과 들기름, 들깻가루에 무친 다음 깨소금에 버무린 밥 위에 올려 만든 김밥이다. 오직 시금치만 들어간, 정상에서 벗어난 이 김밥이 너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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