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만 넣은 김밥 맛에 속다거의 20년 동안 혼자 사는 집에 티브이(TV)를 두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외부 자극에 몹시 예민한 사람이다. 집만큼은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다. 세상의 소음을 차단한 채, 침묵 속에서 쉬는 순간에야 비로소 내 몸의 모든 세포가 해방되는 듯...2025-03-08 20:01
‘나는 솔로’ 빌런, 남 일 같을 땐 웃었지10년 넘게 티브이(TV) 없이 살아왔다. 생방송을 볼 수 없기에 실제 방영일보다 하루 늦은 목요일 저녁마다 푸짐한 음식을 차려놓고 ‘나는 솔로’ 프로그램을 챙겨 본다. 피 흘리지 않은 재료로 만든 채식 요리를 먹으며 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이 ...2025-02-08 20:56
논비건이 비건에게 비건을 가르치는 일새해에는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수영은 쉽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영이 어렵다고 한 적은 없는데 무슨 동문서답인가 싶어 잠자코 들어보니 자랑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본인은 유튜브를 보며 자유형을 독학했다면서 갑자기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조금 어리둥절한 기분이 ...2025-01-11 18:04
‘밀린 월세 입금해주세요’ 어떻게 버무려야 생채기 덜 낼까‘밀린 월세 입금해주세요.’어떻게 말해도 불편한 감정을 유발할 이 말을 어떻게 하면 덜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을까. 임차인의 두 번째 월세 미납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2022년, 전국적인 부동산 하락을 앞두고 전 재산을 털어 인천에 작은 연립주택을 하나 샀다. 기가 막...2024-12-09 16:06
캐슈너트 빠진 감자수프, 오히려 좋아6년째 비건 레시피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고 있지만 쿠킹클래스 제안이 들어오면 정중히 거절했다. 아니, 했었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니까.하지만 들어오는 일이 채식 요리 클래스밖에 없는 시기라면어떨까? 선택해야 한다. 대출 상환을 제때 ...2024-11-09 21:12
무화과의 과육은 폭죽을 닮았다지추석 연휴가 지나도록 이어지던 무더위가 드디어 물러갔다. 사계절 내내 미지근한 물을 고집하는 내가 얼음물을 들이켜게 한, 길고 뜨거운 여름이었다. 폭우 이후 갑자기 찾아온 가을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축제의 달이다. 4년째 사는 중인 경남 진주에서는 매년 10월이면 ‘진...2024-10-12 18:17
무사히 노인 되어 열무비빔밥 먹고파불볕더위에 입맛을 잃었다가 템플스테이에 다녀온 뒤로 입이 터졌다. 여름 끝자락, 대한민국 3대 사찰 중 하나인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2박3일을 머물렀다. 평일에만 신청 가능한 휴식형 템플스테이로 2인실 기준 하루 7만원이면 삼시 세끼 먹여주고 재워준다. 그림 같은 가야...2024-09-14 17:37
내 장례식엔 고통받은 동물이 없기를늘어가는 주름처럼 가야 할 장례식이 늘어난다. 결혼 소식보다 부고를 더 자주 듣는 시기가 왔다. 생애 주기가 이렇게 짧았던가. 아쉽게도 이번 생에 번식은 실패했지만 익어갈 열매가 없어도 나이테는 늘어나는 법이다. 차가운 편육과 홍어무침, 떡과 과일이 밥과 함께 빠르게 ...2024-08-17 20:27
물까치 가족 위해 에어컨은 쉽니다봄에 산 곤약의 유통기한이 끝나간다. 흔하지만 독특한 식재료인 곤약, 뿌옇고 탄력 있는 덩어리를 잘라 무알코올 맥주에 곁들일 술안주를 만든다.‘칼로리가 낮으니 밤에 먹어도 괜찮지.’비와 계절로 끈적한 밤, 더운 공기를 씻어줄 시원한 맛을 조립한다.이번 여름 아직 에어컨...2024-07-20 22:48
싱그러운 여름 오이 탕! 탕!애인의 2차 항암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진료를 앞두고 의사 집단휴진 뉴스가 들려온다. 예약된 날짜에 진료받을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생명의 가치, 사회적 약속이 깨어지는 한복판에서 시스템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불안감에 무너지지 않으려 더욱 건강한 식재료로 밥을 짓...2024-06-22 17:34
동물 착취 없어도 맛있는 ‘단짠’ 앙버터“곧 마감이라 그냥 드세요.”다정한 사장님이 서비스로 내어준 시나몬롤을 거절하지 못하고 앙, 물었다. 함께 있던 논비건 친구는 맛있다고 감탄한다. 한입 베어 문 순간 입안 가득 비릿한 우유 향이, 코팅된 계란물이 찌릿하게 퍼진다. 최대한 맛이 닿지 않도록 크게 꿀꺽 삼...2024-05-11 16:43
봄향 가득한 두릅튀김 먹을 시간, 바로 지금! 꽃은 당장 봐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피고 지는 벚꽃을 미루다간 비를 만나거나 만개하는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지금’을 놓치지 말라고 알려주는 꽃답다. 폭발적으로 지천을 수놓는 여린 꽃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지금 당장 신발을 신고 나간다.벚꽃은 온몸으로 피...2024-04-13 15:42
삼일절보다 ‘삼삼데이’? 하늘을 가리는 마케팅3월을 앞두고 마트에 가면 삼겹살데이를 맞아 삼겹살을 할인한다는 광고를 늘 보게 된다. 무게로 따졌을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는 돼지다.(목숨 수로 따지면 닭이 가장 많이 죽는다.) 국가별 소비량으로 따져도 중국, 베트남 등과 근소한 차이로 1, 2위를...2024-03-09 18:35
키오스크야, 달걀 빼는 메뉴는 어딨니머리칼을 빗어 넘기며 손으로 쥐어보았다. 사춘기 적보다 적게 잡히는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에서 곧 다가올 40년의 궤적을 본다. 이미 오래전 세는 의미가 사라진 하얗게 센 머리가 뻣뻣하게 섞여 있다. 흰머리 아래 드러난 건조한 피부 위 자잘한 주름과 늘어진 모공이 눈을...2024-02-10 12:03
지구가 ‘당면’한 위기, 끼니마다 희망을 불붙이며새 마음으로 맞이하기 어려운 새해다. 2024년 첫날부터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규모 7.6 지진이 발생했다. 2022년 11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에서 묘사된 ‘미미즈’(극중 지진을 일으키는 가상의 존재)처럼, 자연은 어떤 의도 없이 그냥 재앙을 일으키곤 했다. 과거형으로...2024-01-07 14:09